웹진 카페人  
커피 볶는 마을
커피향미를 찾아서 ⑮

검은 커피와 하얀 카페인, 그리고 괴테

카페인(caffeine)의 존재가 꼬리를 밟힌 것은 색(color) 때문이다. 먼 옛날 에티오피아 카파(Kaffa)에서 목동 칼디의 염소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밤새 울어 대며 각성효과를 발휘한 덕분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13세기쯤 예멘 우사브 산으로 쫓겨나 사경을 헤매던 이슬람 수도승 오마르가 커피를 먹고 기운을 차린 사연이 전해진 때문도 아니다. 카페인은 이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독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악마처럼 검게 보이는 커피의 진한 색깔이 단초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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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곧 맛이다. 생두의 무색무취 성분들은 로스팅을 통해 색이 바뀌면서 향미를 발산한다.

괴테의 직관 ‘이 속에 분명 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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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그린 괴테(그림 유사랑)

1819년 어느 날 바이마르, 칠순에 접어든 괴테는 한 카페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지 어느 덧 45년. 샤르로테 부프에 대한 실연의 아픔을 추억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파우스트는 떨칠 수 없는 업보와 같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11년 전 탈고한 <파우스트>를 이어갈 이야기들로 꽉 차 있었다. 특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를 지옥 불에서 구해낼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괴테는 결국 신을 섬기지 않는 파우스트를 벌주기보다 구원의 손을 내밀었다. ‘악마의 유혹’이란 도처에 깔려 있는 것. 그것을 이겨내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쪽으로 역작 파우스트를 마무리하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그 순간, 지옥처럼 시커먼 커피가 달리 보였다. 쉴 새 없이 커피를 들이키는 젊은이들이 그 속에 들어 있는 악마의 유혹에 빠진 듯 보였다.

검은색이 주는 정서적 두려움과 영악한 기운이 괴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의 젊은 화학자 프리드리히 페르난드 룽게에게 편지를 보냈다. 한 걸음에 달려온 룽게에게 아라비안 모카(Arabian Mocha) 커피를 대접하면서 괴테가 말했다. “왜 젊은이들이 검은 음료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속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을 밝혀주시오.” 커피에 인간의 정신에 작용하는 존재가 있음을 괴테는 직관했던 것이다.

당대 최고의 지성 괴테에게 이런 부탁을 받은 룽게는 만사를 제쳐 두고 연구에 매달려 수개월 만에 커피에서 흰색 물질을 추출했다. 세계 최초로 순수한 카페인 결정체가 검출된 순간이다. 괴테의 관점에서 카페인은 검은 커피 속의 ‘흰색 악마’였다.

카페인은 메틸크산틴(methylxanthine) 계열에 속하는 알칼로이드로서 한 분자에 질소 원자를 4개나 가지고 있는 흰색 결정체이다. 카페인이 검은 색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커피의 고유한 색상 때문이다.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검은 빛깔을 내는 멜라노이딘(melanoidine)이 생성된다. 간장이 커피와 비슷한 색상을 띄는 것 역시 숙성되는 과정에서 이 색소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카페인은 커피에 들어 있는 알칼로이드(alkaloid)라는 의미이다. 차에서 같은 성분이 추출되는데, 차에서 검출됐다고 해서 ‘테인(Theine)’이라고 따로 부른다.

카페인은 메틸크산틴(methylxanthine)카페인이 인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괴테의 시대에는 알 수 없었다. 괴테의 직관에 따라, 카페인이 인간의 정신에 작용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을 뿐이다. 카페인이 발견된 뒤 65년이 지난 1884년에 독일의 헤르만 에밀 피셔에 의해 카페인의 화학구조가 밝혀지고, 카페인이 신경전달물질인 아데노신과 모양이 비슷한 덕분에 뇌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카페인을 빼도 커피의 색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디카페인 커피가 일반 커피와 똑같이 보인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뛰거나 잠을 잘 수 없다고 호소하면서도 커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한 잔의 디카페인 커피를 앞에 두고 색을 통해 본질을 꿰뚫은 괴테를 떠올린다. 진실이란, 때론 이성을 앞세운 논리보다 순간적인 직관(intuition)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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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Caffeine)의 화학구조

1686년 레겐스부르크에 독일 최초 커피하우스

멀리 카메룬에서 출발해 에티오피아, 예멘, 터키, 합스부르크를 거친 커피가 독일에 도착한 것은 17세기 후반이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시기와 장소는 1686년 바이에른 주에 있는 레겐스부르크로 지목된다. 상호명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시 카페는 주인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어 1694년에는 작센 주의 최대 도시인 라이프치히에 커피하우스가 생기고, 1721년 독일의 북쪽인 브란덴부르크 지역에 있는 베를린에도 카페가 들어섰다.

이즈음 커피는 수도승이나 귀족 등 일부 계층만이 아니라 대중이 즐기는 음료로 빠르게 확산됐다. 레겐스부르크와 라이프치히, 바이마르에 상대적으로 커피의 전파가 빨랐던 것은 오스트리아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17세기 합스부르크의 신성로마제국에 커피가 전해지는 결정적인 사건이 1683년 발발한 ‘비엔나 전투’였다.

1694년 라이프치히에서 문을 연 ‘카페바움(Kaffee baum)’은 ‘아라비아의 커피나무’라는 뜻으로 괴테(1749~1832)를 비롯해 슈만(1810~1856), 바그너(1813~1883) 등 명사들이 정신적 휴식을 취하는 둥지의 역할을 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이 카페는 ‘블루 보틀’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커피하우스라는 기록을 가졌다. 괴테는 소문난 와인애호가로서, 처음엔 커피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지만 점차 커피에 빠져 하루에 20~30잔을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괴테가 검은색을 통해 카페인을 직관한 사연은 커피애호가들에게 색과 맛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사실 색을 감지하는 시각이나 맛을 느끼는 미각은 모두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를 자극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색다른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언어적 습관이 아니라 색과 맛을 동시에 자극 받는 인간 본성의 발로이다. 괴테는 82년 인생 가운데 20년을 색채연구에 몰두했다. 41세부터 ‘색채론’을 쓰기 시작해 61세에 완성했다. 괴테는 마음의 눈으로 색을 봤다. 그는 1777년에 하르츠 산악지대의 브로켄 산을 오르다가 멀리 눈 덮인 산의 색깔이 시시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색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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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게가 커피에서 카페인을 분리하는데 성공한 뒤 80여 년이 지난 1903년 루드빅 로셀리우스(Ludwig Roselius)가 디카페인 커피 제조 과정을 발명했다. 커피 생두(왼쪽 사진)가 물로 처리하는 과정을 거쳐 카페인이 제거되면 색깔이 갈색으로 바뀐 디카페인 커피 생두(오른쪽 사진)가 된다.

뉴턴과의 ‘색체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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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테이스터가 스푼으로 떠 입안으로 역분사하면서 향미를 평가하는 모습. 좋은 커피를 마시면 향미와 관련한 이미지와 색상이 떠오른다.

빛에서 색을 꺼낸 최초의 인물은 뉴턴(1642~1727)이다. 그는 1704년 발간한 ‘옵틱스(Optics)’에서 ‘백색광 안에 여러 가지 색깔의 빛이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색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명쾌하게 풀어낼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색의 변화무쌍함을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은 인류에게 수많은 상상력을 키워낼 여지를 주었다. 데모크리토스는 빛의 자극뿐 아니라 인간 내부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물질이 자극과 버무려지면서 색이 감지된다고 봤다. 플라톤에게 색채는 참된 쾌락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색은 물, 불, 공기, 토양 등 자연의 어우러짐이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금색은 태양, 녹색은 자연, 파란색은 하늘을 보고 벽화를 그렸다. 그들에게 색채는 의미를 담아내는 상징이었다.

이런 흐름에서 “색은 단지 특정 파장의 빛이 반사된 데 따른 물리적 현상”이라는 뉴턴의 설명은 큰 실망감을 던지는 것이었다. 빛에 대해 인류가 품어온 신비로움과 상상력이 한순간 수그러들었기 때문이다.

100여 년이 지난 1810년 괴테는 색채론을 출간하고 ‘색채가 백색광에 존재한다”는 뉴턴의 이론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괴테에게 색채는 밝음과 어두움의 만남에서 생겨난다. 예를 들어 밝은 면이 어두운 쪽으로 다가가면 청색이 나타나고, 반대로 어두운 면이 밝은 쪽으로 다가가면 노랑이 나타난다. 뉴턴은 파장과 반사 등 과학적 이론을 통해 색의 원리를 풀어낸 반면, 괴테는 심상의 색(color association)을 발견했다. “색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괴테의 견해는 당장 미술에서 인상주의의 태동을 자극했다. 아울러 인간의 감성을 이성과 같은 반열의 주체로 세움으로써 과학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을 메워주었다.

뉴턴의 광학 이론에서 인간은 단지 반사되는 빛의 파장을 받아들여 색을 감각하는 존재일 뿐이다. 반면 괴테는 인간 감각의 능동적인 면을 중시해 감각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색채를 부정했다. 괴테는 인간 정신과 자연은 감각을 매개로 연결돼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커피를 마실 때 향미에 따라 서로 다른 색과 이미지가 떠오르는 현상을 뉴턴의 광학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에티오피아 내추럴 커피에서 진한 장미향과 함께 붉은 색이 떠오르고, 콜롬비아 워시드 커피에서 투명하다시피 한 주홍빛과 패션 푸르츠의 이미지가 형성되는 이유는 괴테의 색채론으로 실마리를 풀 수 있다. 토마토 꼭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생동감과 함께 다크 그린(dark green)의 색상이 떠오를 때 케냐 커피가 그려지는 것은 결코 미스터리한 현상이 아니다. 우리가 커피 향미를 감각하고 지각함으로써 기억을 이끌어 내고, 그 과정을 통해 감성과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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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커피열매를 수확한 농부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은 색을 보고 커피의 향미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색은 맛에 대한 분명한 정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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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가들이 향미공부에 활용하는 플레이버휠은 다양한 향미 속성마다 고유의 색을 갖고 있다. 색과 맛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플레이버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색으로 보는 커피 맛

인간이 색을 보고 아무런 감성을 키워내지 못한다면 새우만도 못한 존재이다. 인간은 적색, 녹색, 청색 등 3개의 광수용체만 있어 가시광선만을 볼 수 있는 반면 새우는 16개 광수용체를 지니고 있어 자외선과 편광까지 볼 수 있다. 새우가 보는 세상이 인간이 보는 세상보다 다채롭다.

색이란 인간에게 무엇인가? 커피를 통해 답을 할 수 있다. 커피 전문가들은 110칸으로 구성된 색상환을 가지고 향미를 공부한다. 커피를 마시면 과일, 견과류, 꽃, 캐러멜, 흙과 같은 향들과 함께 특정 색이 떠오른다. 후각과 미각뿐 아니라 시각까지 자극돼 더 풍성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본질은 되도록 많은 감각을 동원할 때 더 잘 드러나는 것이라 믿는다. 커피의 맛을 색으로 볼 수 있는 자에게 진실은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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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모습. 바리스타들은 색상을 보면서 추출시간을 조절한다. 색이 곧 맛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