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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볶는 마을
로스팅의 기원과 역사

커피 생두는 왜 불에 볶는 걸까?

커피가 지금처럼 세계적인 기호식품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일단 커피나무는 생육환경이 어느 정도 갖춰진 지역이라면 다른 작물에 비해 잘 자라고, 수확한 후의 보관 방법도 어렵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커피가 지금처럼 널리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생두를 불에 볶는 방법(Roast)이 개발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검게 볶을까, 연하게 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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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열매가 처음 발견된 초기에는 커피열매와 잎을 통째로 냄비에 넣어 끓인 물을 마시거나, 이를 조금 더 펄펄 끓였다가 식히는 과정에서 바닥에 응고된 진액을 물에 타 마시는 것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이후 아라비아 반도로 커피가 보급되면서 누군가에 의해 지금처럼 생두를 불에 볶는 방법이 발견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12∼13세기경 터키와 시리아인들은 이미 점토나 돌로 만든 그릇에 생두를 담아 불에 볶은 후 이를 절구에 찧어 잘게 부순 후 뜨거운 물에 타 마셨다고 하는데, 최초의 로스팅은 그 이전부터 시작돼 왔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로스팅을 굳이 우리말로 풀어쓰면 ‘커피콩 볶기’ 정도로 번역되는데,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로스팅(Roasting)이나 배전(焙煎)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 로스팅은 기호에 따라 연하게 또는 진하게 조절할 수 있는데 초기 아라비아인이 비교적 연한 갈색의 로스팅을 선호했던 데 비해 터키, 시리아 등에서는 매우 검은색이 날 만큼 진하게 로스팅하는 게 유행이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일체의 향신료를 넣지 않고 검게 볶은 커피를 분쇄한 후 물과 함께 끓여 여과하지 않은 채로 작은 잔에 따라 마셨는데, 이를 터키시 커피(Turkish Coffee)라고 부르며 지금도 널리 애용된다. 이 터키시 커피는 중세시대 유럽 일부와 중동지역을 석권했던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이탈리아 북부지방과 발칸반도를 거쳐 유럽의 중심이던 비엔나 등으로 전파되었다. 이후 유럽에 설탕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터키시 커피에 설탕을 첨가해 마시는 것이 한 동안 커피 시음의 교본처럼 불리기도 했다.

비약적인 커피 소비의 확산과 달리 로스팅 기술은 18세기 무렵까지도 그 근본적인 틀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량의 로스팅에는 여전히 철제 팬이 주로 사용되었고, 커피하우스처럼 커피 소비가 많은 일부 업소에서만 원통형이나 구형의 철제용기를 불 위에 매달아 놓고 돌리며 볶는 초기 로스터가 사용되었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로스팅의 정도, 즉 원두의 색상에 대한 기호도가 지금도 각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리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17세기 무렵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터키시 커피처럼 검은 원두를 선호한 반면 영국이나 독일,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이 보다 연하게 볶은 커피를 좋아했는데 현재 북미지역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약한 로스팅을 선호하는 것도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남유럽 국가의 식민지가 많았던 남미국가들은 지금도 짙고 검은 로스팅이 환영을 받는다. 또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에서는 여전히 초기 방식대로 연한 로스팅을 선호하고 있으며, 설탕을 넣지 않는 대신 각종 향신료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즐기는 커피문화가 정착되어 왔다.

1,500여 개 성분들이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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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로스팅은 커피의 전파과정에서 무척 획기적인 일대 사건이었다. 별다른 맛이나 향이 없는 생두를 불에 볶으면 그 속에 함유된 1,500여 개의 성분들이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온갖 종류의 커피맛과 향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참깨를 볶아 고소한 참기름을 만들어내는 원리와 비슷한데, 열에 의해 가열된 생두는 수분이 증발해 무게가 줄어들고 단백질과 카페인 함량이 약 10∼15% 정도 줄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생두 속에 함유된 당분이 캐러멜화되면서 연한 초록색의 생두가 점차 갈색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이론적으로 로스팅은 생두에 열을 가해 볶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철제 용기에 생두를 넣고 열을 가하며 볶는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색이 나타났을 때 가열을 중단하고 식히는 단순한 공정인 것이다. 하지만 생두가 타거나 눌어붙지 않도록 고루 저어주면서 모든 생두가 자신이 원하는 색깔을 내도록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복잡한 일이다. 또한 볶는 방법이나 생두의 종류에 따라서도 원하는 색과 풍미를 내는 시점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어지간히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라면 ‘원하는 맛’이 나는 시점을 제대로 짚어내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충분히 볶아지지 않은 생두는 기름기가 제대로 빠져나오지 않아 생나무나 빵과 같은 냄새가 나고, 반대로 너무 오래 볶으면 특유의 쓴맛과 탄내가 나게 된다.

생두에 서서히 열을 가하면 먼저 그 속에 함유되었던 수분이 증발하면서 생두가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때 생두의 표면이 풍선처럼 부풀다가 결국 터지면서 마치 팝콘을 튀기는 듯한 파열음이 난다. 생두의 온도가 약 188℃가 되면 그 속의 유기성분들이 분해되어 기름기가 만들어지는데 보통 이를 ‘열분해’라고 하고 색상이 검어지기 시작한다. 로스팅할 때는 열분해가 시작된 후, 즉 타기 바로 직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며 이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 원하는 시점에 불에서 내리는 것이 로스터의 숙련도를 말해주는 일종의 ‘노하우’인 셈이다.

불을 끄더라도 로스팅한 원두를 자연상태에서 그대로 두면 남은 잔열에 의해 계속 화학반응이 이어지므로 이 때는 가능한 빨리 열을 식혀주어야 한다. 소규모 로스팅업체나 가정에서는 주로 선풍기를 이용해 열을 식혀주고, 이 보다 규모가 큰 대형 로스팅공장에서는 공기 대신 잠깐 동안 물을 분무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두에 스며들지 않을 정도로 적당량의 물을 뿌려 식힌 커피는 맛과 향에 거의 영향이 없으며 오히려 공기로 식힌 원두보다 품질 면에서 우수하다고 하지만, 여기서부터 비전문가들은 쉽게 시도해볼 수 없는 그야말로 ‘전문가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셈이다.

글 | 상상공감 <카페人> 이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