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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볶는 마을
[브루잉의 세계] 핸드드립(Hand drip) ②

일관성과 재현성으로 즐기는 커피감상법

[브루잉의 세계] 핸드드립(Hand drip) ②.

지난호에는 핸드드립으로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한 3가지 원칙을 살펴봤습니다. 이번호에는 좀더 자세히 핸드드립 팁을 소개합니다. 더불어 잘못 알고 있던 상식도 바로잡아 봅니다.

(편집자 주) 

‘핸드드립은 손맛?’

커피를 추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관성(Consistency)과 재현성(Reproducibility)이다. 이 덕목은 추출할 때마다 무게와 시간, 온도 등 모든 요인을 측정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추출할 때마다 측정하는 습관을 지니면 횟수가 늘어날수록 측정 도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측정하지 않고 커피를 추출해 마시는 것을 긍정적으로는 ‘손맛을 즐긴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핸드드립으로 대표되는 커피추출은 결코 ‘손맛’을 즐기는 게 아니다. 추출 조건을 똑같게 해서 사용하는 커피가 어떻게 맛이 차이 나는지를 감상하는 것이 진정한 가치이다. 커피의 맛은 손맛이 아니라 어떤 커피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제아무리 손놀림이 뛰어나다고 해도 품질이 좋지 않은 커피를 맛이 좋게 만들 순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기만이다.) 

같은 커피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는 미세한 맛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추출 방법을 항상 같게 유지해야 한다. 이런 방식에 익숙해 지고 난 뒤, 추출법에 변화를 주면서 같은 커피 원두를 사용하더라도 다양한 면모를 즐길 수 있다. 아래의 내용들은 추출에 영향을 끼치는 사소한(?) 변수들이다. 굳이 ‘손맛’을 즐기고자 한다면 이런 요인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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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드립은 손 기술과 감에 의존하지 말고 측정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커피가루 분쇄도

에스프레소는 추출 시간이 25~30초인 반면 핸드드립은 3분 정도가 필요하다. 가늘게 분쇄한 커피가루는 자칫 추출 시간이 길어져 쓴맛이 강한 텁텁한 커피가 될 수 있다. 커피 가루의 굵기가 고를수록 가용성 성분이 고르게 추출돼 떫고 쓴맛을 줄일 수 있다. 입자의 크기가 너무 가늘거나 고르지 않으면 물이 커피 층을 통과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추출 속도가 늦어지고 쓴맛이 두드러진다. 원두를 미리 갈아놓으면 향기 성분이 날아가기 때에 추출하기 직전에 커피를 분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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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퍼와 물 빠짐 속도

멜리타, 칼리타, 고노, 하리오 등 드리퍼는 저마다 리브(Rib)형태가 다르다. 리브는 종이필터와 드리퍼 내부의 벽면 사이로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리브의 수가 많고 높이가 높을수록 커피 층을 통과하는 물의 속도가 빨라진다. 리브가 없으면, 커피가 추출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진다.

아랫면에 있는 추출구, 개수, 크기 등도 물 빠짐 속도에 영향을 준다. 미세하지만 드리퍼의 재질에 따라서도 보통 도기-금속-플라스틱 순으로 물 빠짐이 빠르다. 여타 추출조건이 같은 상황에서 물 빠지는 속도가 빠를수록 연하고 가벼운 커피, 느릴수록 진하고 묵직한 커피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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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퍼 종류별 리브 형태. 왼쪽부터 멜리타, 칼리타, 하리오, 고노 드리퍼

드리퍼에 상관없이 추출은 똑같이

드리퍼의 물리적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물 붓기나 커피가루 굵기를 다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런 노력은 조금 과장한다면 ‘헛수고’이다. 드러퍼의 모양에 맞춰 추출 조건을 달리하는 것은 한마디로 드리퍼의 구조에서 비롯되는 개성을 없애는 무모한 행동이다. 가루의 굵기, 물의 온도, 물 붓는 방식을 똑같게 해야 드리퍼의 물리적인 구조가 빚어내는 맛의 개성을 즐길 수 있다. 드리퍼와 상관없이 커피가루의 분쇄도를 똑같게 하고 가루와 물의 비율도 1대 15로 맞춘다. 추출시간도 3분~3분 30초로 맞춰 드리퍼에 따라 맛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아는 것이 핸드드립의 첫걸음이 돼야 한다.

생김새가 다른 드리퍼의 쓰임새는 따로 있다. 예를 들어, 많은 분량을 추출해야 할 경우에는 멜리타보다는 물빠짐이 좋은 하리오를 선택하는 것이 편리하다. 또 품종과 로스팅 정도를 고려할 때 산미가 두드러진 원두만 있는 상황에서 산미를 차분하게 만들어 마시고 싶다면 고노보다는 칼리타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일본식 물 붓기와 서구식 푸어오버(Pour Over)

흔히 일본식 물 붓기는 ‘중력만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을 조심스레 자유낙하를 시켜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줄기가 뻗어 나가면서 커피 가루에 중력 이외의 힘을 작용시켜 추출이 왜곡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푸어오버 방식은 절대 해선 안 되는 행동이 된다.

반면, 물줄기가 뻗어 나가도 개의치 않고 편하게 붓는 푸어오버 방식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물줄기가 뻗어나가는 힘이 커피 추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본다. 커피가루와 물의 비율(Brewing Ratio), 가루의 굵기(유속), 온도, 추출시간을 기준에 맞추면 물 붓기는 일부러 과하게 하지 않는 이상 큰 변수가 안 된다는 입장인 것이다.

다만, 일본식 물 붓기를 하든 푸어오버를 하든 주전자를 너무 높이 올려 커피가루 층이 깊게 패이거나 가루가 종이필터 윗부분까지 튀어 말라붙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일본식은 ‘묵직한 맛’, 푸어오버는 ‘가벼운 맛’이라는 착각

일본식으로 물을 부으면 ‘묵직한 맛’이 나고, 푸어오버 방식으로 부으면 ‘가벼운 맛’이 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수정이 필요한 관점이다. 다른 추출 조건들을 같게 하면, 물 붓는 방식만을 달리 한다고 해도 이렇게 맛이 차이 나지 않는다. 묵직함과 가벼움은 상대적인 비교이다. 원두를 분쇄한 뒤 둘로 나눠 추출하면, 다시 말해 똑같은 원두를 같은 굵기로 분쇄해 추출하면 묵직함은 물과 가루가 더 오래 접촉하는 경우에 우세해진다. 추출수의 온도와 추출시간을 같게 할 경우, 맛의 묵직함과 가벼움에 끼치는 영향은 물 붓는 방식보다는 물이 커피가루 층을 빠져 나온 속도에 좌우된다. 결국 커피가루의 굵기가 한 잔 커피의 향미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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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붓는 모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과민함

일본식 물 붓기를 나선형으로 하는지, 8자 형으로 하는 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거나 과민함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 붓는 모양이 중요한 것은, 그에 따라 맛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일관성을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내릴 때마다 물 붓는 모양을 달리하면 추출하는 커피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는다. 커피의 면모를 알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추출하는 방법이 똑같아야 추출하는 원두를 구별할 수 있다. (다음호 계속)

제공 및 출처 | 커피비평가협회(www.ccacoffee.co.kr), 《이유있는 바리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