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커피 볶는 마을
[커피테이스터] 커피향미를 찾아서 13

포스트 코로나의 카페를 생각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인류의 경쟁력으로 손꼽히던 ‘콘택트(contact)의 미덕’이 순식간에 금기사항이 됐다. 그러나 언택트(untact)마저 코로나19의 공기감염 위험성이 고조되면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공포가 세상을 짓누르고 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언택트에 이어 셀렉트(select; 골라내기)가 생활패턴을 지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셀렉트가 위험요소를 가려내는 지적(知的) 행동이 된다면 인류를 구할 새로운 가치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특정인을 차별하고, 나아가 분리하고 고립시키는 빌미로 작동한다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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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커피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1668년경 커피하우스의 모습을 그린 작자 미상의 작품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의 모습은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사진출처 : 《커피인문학(인물과사상사》)

“코로나 사태의 비극은 큰 사건들이 아니라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바꿔 놓은 것”이라는 프랑스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지적은 우리를 보다 깊은 사유로 이끈다. 늘 만지던 물건조차 손대기 두려운 존재가 된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희망을 피워낼 실마리는 소소한 일상에서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그 일상이라는 게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와 같은 게 아니다. 코로나19 재난은 소위 ‘경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인류를 예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회복불능이라는 암울한 관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 문명비평가인 레베카 솔닛은 “재난은 파괴와 죽음의 절정인 동시에 시작이요 개방이다”라고 역설했다. 거대한 재난이 낡은 사회질서를 제거하고, 인간은 그 속에서 패배자가 되는 대신 오히려 새로운 사회를 실현해내는 본성이 있음을 간파했다. 1755년 최대 9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리스본 대지진은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눈뜨게 하면서 계몽주의를 싹 틔웠다.

포스트 코로나의 삶은 지금 펼쳐지고 있는 낯선 세상을 인식하는 틀을 바꾸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인류는 각자의 자리에서 급변한 세상에 대한 자각을 요구받고 있다. 언택트 세상에서 생계를 위해 수작업을 해야만 하고 고객을 대면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소상공인들이 많이 몰려 있는 카페에서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속에서 카페의 모습이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 탓이다.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예견한대로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일단 받아들이고 대비해야 한다.

골목카페의 뉴노멀 생존법 7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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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에서 작은 카페들은 스페셜티 커피의 정신을 올바로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생존의 길임을 자각하고 사용하는 커피의 출처와 수확일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사진은 콜롬비아 킨디오 라 모렐리아 농장에서 커피체리를 따고 있는 필자.

코로나19 이후 카페는 어떤 모습이 될까? 세계적 석학들이 하나같이 코로나19가 기존 질서를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상황에서 카페도 예외일 수 없다. WHO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 지난 1월 30일 이후 거의 반년이 되도록 세계가 코로나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뉴 노멀(new normal)’이 카페뿐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 분명하다. 골목길 서민카페, 혼자 운영하는 ‘원맨카페(One man café)’들을 위해 일곱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건강식품으로서 커피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카페가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을 소통케 할 뿐만 아니라 마시는 당사자의 건강을 위한 공간임을 체감할 수 있도록 서비스의 개념을 보완해야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가장 우선 갖춰야 할 것이 사용하는 커피에 대한 명확한 정보공개이다. 커피가 생산된 곳에 대한 표기가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등 국가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그것은 쌀로 치면 정부미에 그칠 뿐이다. 농장이나 협동조합 또는 마을 단위까지 추적이 돼야 하고 품종과 가공법, 체리 수확일까지 카페를 찾은 고객이 눈으로 확인하고 맛으로 확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제공하는 커피가 진정한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이다. 에르나 크누젠이 1978년 “산지의 지정학적인 미세한 기후 조건이 커피에 특별한 향미를 부여한다(Special geographic microclimates produce beans with unique flavor profiles)”고 일갈하면서 커피의 패러다임이 음료에서 문화로 바뀌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언택트와 셀렉트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커피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월간지를 구독하듯 일정액을 미리 내고 집이나 직장으로 커피 원두나 액상 커피를 받아 소비하는 방식이 포스트 코르나에서 각광받을 것임을 내다보기는 어렵지 않다. 규모가 작은 카페라고 해서 지레 포기할 서비스가 아니다. 공간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 속에서 골목카페가 살아갈 길은 소위 ‘동네사람들을 상대로 한 네트워크 비즈니스’를 강화하는 것이다. 일정액을 내고 출퇴근길 아메리카노를 받아가게 하는 것도 커피구독 서비스의 한 패턴이다. 고객으로서는 구입 단가를 줄일 수 있고, 카페로서는 일정 규모를 유지하고 재료준비와 관리에 유익하다. 커피구독은 카페가 판매하는 메뉴에만 국한할 필요가 없다. 고객에 맞는 커피원두를 골라주고 대신 구입해 카페를 배포기지로 활용하는 것도 좋다. 골목카페는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하나의 거점이 돼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판매량이 급증하는 편의점의 액상커피를 카페에서 판매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스튜디오 카페’로의 전환, 언택트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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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마시는 음료이기에 앞서 추출하는 과정 전체가 하나의 의식으로서 문화를 형성했다. 포스트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격리로 인해 ‘커피를 하다’라는 새로운 문화가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사진은 에티오피아 분나 세리머니를 재연하는 모습.

셋째, ‘커피를 마시다’에서 ‘커피를 하다’로 문화를 견인하는 ‘스튜디오 카페’의 면모를 갖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집에서 커피를 추출해 마시는 ‘홈카페족’을 거대한 그룹으로 키워냈다. ‘달고나 커피’를 만드는 영상이 500만 개를 훌쩍 넘겨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런 욕구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집에 자그마한 스튜디오를 만들어 놓고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보여주고 이를 소비하는 행위가 이미 커피 문화에 깊숙하게 뿌리 내렸다. 이는 인문학적으로는 ‘커피 르네상스’라 부를 만하다.

커피가 인류의 문화가 된 초기에 커피를 만들고 나눠 마시는 과정 전체가 하나의 의식이었다. 에티오피아 커피세레모니와 터키시 커피는 유네스코가 인류가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지정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네카페의 한 켠을 고객들이 직접 커피를 추출하고 동영상을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하는 것도 포스트 코로나에 경쟁력을 갖추는 요인이겠다.

넷째, 손님들이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공간을 연출해야 한다. 테이블과 의자의 숫자를 20~30% 가량 줄이는 동시에 바리스타가 움직이는 바의 공간을 늘려 잔뜩 쌓여 있는 집기와 도구를 보다 여유 있게 재배치한다. 창문과 문은 언제든 활짝 열어 둘 수 있도록 개선하고, 밖에서 카페 내부가 훤히 보이도록 하는 게 좋다. 이를 위해 유리창에 불투명한 필름을 하거나 화분을 즐비하게 늘어놓아 장벽을 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갈수록 보이지 않는 공간, 따라서 예측할 수 없는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행동이 두드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계산대에서 언택트가 이루어지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손님과 말을 하지 않고도 주문을 받고, 또 계산한 뒤 거스름돈까지 내줄 수 있다면 최상이다. 관련 장비와 도구들은 나와 있다. 이 부분에 대한 투자 여부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카드나 지폐를 만진 손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카페는 코로나 속에서 급속하게 사라질 것이다. 아울러 작은 카페라도 주문과 음료가 나가는 곳을 되도록 멀리 떨어뜨려 고객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여섯째, 개별포장을 통한 언택트를 준비한다. 바에서 음료를 받아 손님들이 취향에 맞게 시럽을 넣거나 빨대와 냅킨을 가져가는 이른바 ‘셀프 바’를 없애는 게 좋다. 셀프 바는 인건비를 줄이는 데 요긴하지만 포스트 코로나의 풍경 속에서는 지탄받기 쉬운 대상이다. 여러 사람의 손이 닿는 빨대와 냅킨은 오염의 주된 통로가 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카페는 손님이 먹는 것은 오직 자신의 손만이 닿은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개별 포장된 빨대, 설탕, 냅킨이 자원낭비라는 눈총을 이겨내고 일상에 더욱 깊이 파고들 것이다. 

끝으로, 개인용 컵이나 텀블러를 가져오는 소비자에게 할인 등 보다 많은 혜택을 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1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컵 퇴출시기가 안타깝게도 늦춰졌다. 일회용품을 마구 사용해 자연이 훼손되면 어떤 재앙이 내려질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코로나19 사태이다. 위생을 위해 개인컵 사용에 대한 욕구가 일고 있는 대목을 적극 파고들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보증금을 내고 사용하는 ‘마트 가방’처럼 카페가 텀블러를 운용하는 것이다. 일정 회수 이상 구매하면 텀블러를 교체하거나 수여하는 섬세한 기획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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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에 대처하기 위해 짚어 본 일곱 가지가 사실 크게 새롭지 않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를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발터 벤야민의 철학에서 발견된다. “유토피아란 미래의 어떤 이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위기의 순간 섬광처럼 번쩍이는 과거의 기억 속에 있다”는 그의 직관은 우리에게 포스트 코로나를 살아갈 용기를 심어준다.

글 | 박영순
사진 | 커피비평가협회(CCA, www.ccacoff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