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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중심을 잡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두 바퀴로 만난 길 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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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세워두기만 했던 자전거를 꺼내 모처럼 아이와 자전거를 타봅니다.

아직 보조바퀴를 떼지 못한 아이가 어딘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더군요. 옆으로 초등학교 오륙 학년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 서너 명이 두발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려갑니다.

“두발 자전거 타고 싶니?

“나도 저렇게 달려보고 싶어. 보조바퀴 떼면 안돼요?”

“아직은 이 자전거로 연습을 좀 더하자. 당장은 못 탈거야.”

중심을 제대로 잡게 되면 보조바퀴를 떼주겠다고 딸에게 약속을 합니다.

무심코 내뱉은 ‘중심’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중심을 잡는다는 게 그냥 편안히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탄다는 게 생각해 보니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해 보이네요. 얼핏 생각하면 균형만 잡아도 될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앞으로 나가는 힘을 통제해야 하고, 그렇다고 앞으로만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앞바퀴와 뒷바퀴의 회전 궤적의 균형이 무너지면 안 되니까요. 그렇다고 바퀴의 균형만 잡아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안장에 실린 몸의 균형도 잘 잡아야 하니까요.

암만 생각해봐도 두발 자전거를 배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디 자전거뿐이겠습니까? 세상에서 균형 있게 중심을 잡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런 걸 아이에게는 손쉬운 일인 것처럼 내뱉었으니 픽, 하고 웃음이 나네요.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은 세상을 새로 배우는 건 아닐까요?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도 누군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들이 될 수 있죠.

이런 일들은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아이가 자전거를 배우는 일 또한 그렇겠지요. 한 번, 두 번, 그렇게 넘어지면서 배워가는 일들이란 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는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 걸음마를 가르칠 때가 생각납니다. 삼천 번쯤 넘어지면 아이가 걸음마를 익힌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있었지요. 삼천 번을 넘어진 끝에 배운 아이의 걸음마라니. 근육이 생기고 허리의 힘이 갖춰지면서 조금씩 성장한 이 아이가 어느새 두발 자전거를 배울 나이가 됐군요.

당신에게 편지 한 번 쓰는 일이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지요. 자전거를 타는 원리를 익히면 몸이 먼저 반응하듯이, 당신에게 다가가는 이치도 미리 알았더라면 담담하게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요. 왜 모든 후회는 지나고 나서야 사람을 철들게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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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자전거를 타던 생각이 납니다.

옛 사진을 들춰보듯이 그 시간을 다시 꺼내봅니다. 홍제동 옛길은 참 좋았습니다. 홍지문을 건너서 작은 하천이 이어진 길을 따라 가다보면 그곳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사람이 있었고, 그들이 걸어가는 시간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 당신과 내가 만들어 갈 시간도 있어보였습니다.

먼지가 홍지문 돌 틈에서 폴폴 날리는 것을 보면서 “먼지도 살아있나 봐요, 쟤들끼리 손잡고 나들이가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던 당신의 미소가 있었고, 강아지풀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미끄러지듯 다른 풀꽃으로 몸을 옮기던 늦은 봄의 나른한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자전거 뒤를 쫓아가던, 오래오래 머물러 있을 것 같던 제 스무 살들의 시간이 있었고, 조용히 불러보면 공기방울이 펴져나가는 소리가 나던 당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뒤돌아보던 당신의 향기가 거기에는 있었습니다.

차로만 다니던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속도가 지워버렸던 세상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지요. 흔히 말하듯이 꽃들과 나무들만 지나쳐 온 건 아닙니다. 생각해봤더니 그 기억의 중심에는 길이 있었습니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 다리 근육은 팽팽해지지만 마음은 편안해 집니다.

힘으로 올라야 할 때는 굳이 다른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그때 페달은 사람의 다리만큼이나 잔뜩 힘이 들어갑니다. 바큇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바람과 햇살도 그때는 여유가 없지요. 목표가 생겼으니 이제 힘껏 페달을 밟아 오릅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오르다 보면 어느새 평평해진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런데 길이 오르막길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번에는 내리막길을 달려야 합니다. 다리의 힘은 더 이상 필요 없어집니다. 두 손으로 방향만 잘 잡아주면 큰 무리 없이 내려가게 됩니다. 그때는 바큇살도 여유가 있지요. 바람이 쓱 다가와 바큇살을 만져주면 바퀴는 신이 난 꼬마들처럼 가벼운 탄성을 지르며 굴러가곤 합니다. 햇살에게 악수라고 건네듯 어떤 때에는 반짝이는 햇살을 반사시키며 광택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근육이 편안할수록 마음은 더욱 더 긴장하게 됩니다. 넘어지는 순간에 깨질 균형을 잡기 위해 마음은 부산해지고 바짝 경직됩니다. 혹시 돌멩이가 있는지, 물웅덩이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게 조심히 내려오는 동안 붙었던 가속은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오르막길에서 가속을 얻기 위해 애썼던 일을 생각하면 반대의 상황이 됩니다. 지나치게 빨라진 가속은 내리막길에서는 오히려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다는 게 실감나는 순간이죠.

한숨을 돌리면 이번에는 포장된 길이 한참 펼쳐집니다.

포장도로가 좋은 이유는 길이 매끈하고 다니기가 편안해서가 아닙니다. 갑자기 생기는 돌발 상황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거의 생기지 않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여유로워지고 한결 가벼워지는 거지요. 페달만 천천히 밟아주면 나가는 그 순탄한 길. 때로는 예상치 못했던 가속이 행운처럼 따라붙어서 남보다 앞서가는 짜릿함을 경험하는 길. 누구나 꿈꾸는 안정된 삶이 바로 이런 것이겠죠.

바람은 적당히 불어주고, 따스한 햇살이 스미듯 마음을 편안히 적셔주는 순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비로소 두 손을 자전거에서 떼보기도 합니다. 예정된 길이 있고 아무런 무리가 없으며,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앞길이 훤히 보이는 삶. 핸들을 놓은 여유로운 손가락 사이로 시간은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고, 그 다음 시간은 변함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기에 지나쳐버린 그 시간을 주워 담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여유로운 한 때. 포장도로는 자전거가 경험하는 최고의 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때 당신이 저에게 들려준 시가 한 편 생각납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연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글이었죠. 그때는 몰랐던 길을 저는 이렇게 걷고 있고, 당신도 제가 모르는 어느 낯선 길을 걷고 있겠죠. 그 길이 평탄하고 순조로워서 이제는 당신의 삶에 더 이상 더 힘든 장애물이 없기를 바라봅니다. 당신이 가는 길이 최소한 비포장도로가 아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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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무렵에 읽었던 그 시를 오늘 다시 읽어보니 참 느낌이 다릅니다. 시간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겠지요. 삶이라는 게 언제나 되돌아보았을 때에야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이더군요. 당신이 그때 보내주었던 시를 오늘은 제가 당신에게 다시 돌려드립니다. 기억은 영원할 수는 없지만, 추억은 좀 더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_ 로버트 리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1874-1963), <가지 않은 길>

글.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