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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카페] 옥탑방의 추억

‘지상의 방 한 칸’ 찾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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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 줄 쓰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던 어느 날 저녁입니다. 답답해 옥상을 올랐더니 주변 집들이 노란 풍선 같은 물탱크를 하나씩 옥상에 이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물탱크가 있는 집은 공교롭게도 옥탑방 하나씩을 들어앉혀놓고 있더군요. 제 스무 살 무렵이 떠올랐죠.

옥탑방에서 청춘의 일부를 보낸 제게 집은 곧 방이었고, 방이 곧 집이었습니다. 요즘의 원룸 형식과 같이 완비된 시설은 없었지요. 가난한 청춘이 혼자 살기에도 조금 좁고 불편했던 방, 아니 집이었습니다. 어설프고 누추했지만 무엇보다 하늘을 볼 수 있어 좋았고 겨울 새벽에 내린, 아무도 만지지 않은 숫눈을 욕심껏 밟아볼 수 있어서 나름대로 행복했던 곳이었지요.

이십 대 시절이 대부분의 이들에게 시간으로 기억되는 데 비해 저는 이십 대를 공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동아리방, 친구들의 자취방, 당시 잠깐 유행했던 소주방 등 방에서 방으로 청춘의 시절을 건너온 것 같으니까요.

그런 이유에서인지 삶의 공간에 대해 처음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제게는 집이 아니라 방이 떠올랐습니다. 스무 살 무렵에 ‘지상의 방 한 칸’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었지요. 당시에 제게 집이라는 인식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방이었죠. 자취를 시작하면서 시작된 공간에 대한 탐색은 내 한 몸 눕힐 수 있는 공간이면 족했고, 그 ‘지상의 방 한 칸’ 마련하는 것도 저에게는 참 버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겨울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그 방에서, 해서는 안 되는 끔찍한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읽었던 어느 시집의 시는 이렇습니다.

당신들은 틀림없이 방이 비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같지만, / 거기엔 등받이가 튼튼한 의자 세 개. / 거기 어둠을 밝히는 전등. / 책상, 책상 위엔 지갑, 신문. / 아니 고뇌하는 부처, 고뇌에 빠진 예수. / 행운의 일곱 코끼리, 그리고 서랍 속엔 공책이. / 당신들은 거기에 우리들의 주소가 없었다고 생각하죠? // … (중략) … // 당신들은 생각한다, 적어도 편지가 뭔가를 밝혀 줄 거라고. / 만일 내가 당신들에게 말한다면, 편지는 없었다 - / 우리들 중 많은 이들, 그의 친구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 컵에 기대진 빈 봉투 속에 들어갔다면.

- 쉼보르스카, <자살한 사람의 방>(폴란드, 1996, 노벨문학상 수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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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대한 전통적 가치 무너져…방이 곧 집인 시대

국립국어원이 제공한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방(房)은 이렇게 뜻풀이가 돼 있습니다.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기 위하여 벽 따위로 막아 만든 칸.’ 요즘 청춘들의 방은 어떨까요. 무엇보다 궁금한 건 ‘집과 방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자생적일까’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방이 살거나 일을 하기 위해 벽을 막아둔 것이 아니라 청춘의 열정을 가둬둔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비관적인 것이겠죠. 지나치게 올라버린 방값, 집값, 땅값 앞에서 우리 시대의 청춘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현실적으로 자기 공간을 가지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지, 쓸쓸하게 가늠하고 있을 그들의 뒷모습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성세대들의 욕망이 부풀려 놓은, 공간에 대한 탐욕에 가까운 무모함 뒤에서 그들의 신음이 이끼처럼 자라고 있지는 않을까요. 굳이 자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대학 졸업 후 집을 마련하는데 몇 년이 걸린다거나 결혼 비용이 얼마라는 등의 얘기는 사실 그들의 관심 밖일 지도 모릅니다. 당장 숙식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 ‘오늘’이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더욱이 대학을 다니지 못한 이십대들의 상황은 더 절박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고시원의 수요는 결국 우리 시대 청춘들의 신음이 내는 아우성일 테니까요.

앞으로 1인 가구 수가 계속 증가하면 언젠가는 집이 곧 방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남은 방 한 칸은 어떻게든 혼자 ‘이겨내야’ 할 숙명의 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비단 청춘들에게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일부 소외계층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도 상황은 낙관적은 아닌 듯합니다. 청춘이 소외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고드름이 중력을 이겨내고 물방울들끼리 응집할 수 있음으로 해서 고드름의 아름다움은 존재하는 거지요. 그 날카로운 고드름의 끝을 부러뜨리는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다운 청춘을 만나볼 수 없지 않을까요.

안식과 머무름의 쾌적함이 있어야 할 방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느 도시, 어느 구(區)에 사느냐만 가지고도 계층이 드러나는 이른바 ‘주거의 사회학’이 기승을 부리는 이런 사회에서 일부 계층을 제외한 대다수는 스스로를 반목 속에 가두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집은커녕 방 한 칸 편안히 마련할 수 없는 현실에서 창춘들이 가질법한 박탈감과 자괴감은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설사 머무를 집과 방이 있다 하더라도 파편화된 가족 구조에서 방은 심지어 가족마저도 분리하게 하는 벽이 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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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0년대 문학에서 그린 방

몇몇 문학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방을 살펴보는 것은 각 세대가 지닌 방의 의미를 음미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금의 세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방이 지니는 공간의 상징성은 한 개인의 내면일 수도 있고 한 사회와 시대의 축소판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에 각각 발표된 소설에 드러나는 ‘방’은 각 시대가 가지는 상징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우선 1972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최인호의 ‘타인의 방’은 아파트 주거문화가 막 시작하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통해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지만 아내는 쪽지에다 거짓말을 남기고 집을 비운 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지요. 아내의 거짓말을 알아차린 주인공은 자신의 방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고독해합니다. 끝내 주인공의 불안감과 소외감은 무의식으로 팽창해 자신의 방 내부의 모든 사물들에 투영되어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는데 까지 이르죠. 익숙한 듯 느꼈던 방안의 사물은 이제 낯설고 불편한 존재들이 되어 방을 떠돕니다.

이 알레고리가 담고 있는 문제의식은 가장 가까운 아내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부터 인간이 소외된다는 점입니다. 작품 말미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의 아내는 ‘새로운 물건’을 발견합니다만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남편일 수도 있고 낯선 물건일 수도 있는 이 상징은 가장 은밀하고 진솔할 수 있는 방에서 우리들이 인간적인 관계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낯설고 불안한 관계일 뿐이라는 점을 환기시키지요. 카프카의 ‘변신’이나 사회학자인 부르디외의 ‘관계’에 대한 탐구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분리와 소외는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더 끔찍한 것은 그때부터 이어져 온 아파트 주거문화에서 이런 일들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방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1985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강석경의 중편소설 <숲 속의 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를 배경으로 ‘소양’이라는 여대생의 정신적 방황을 통해 진실한 삶의 방식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는 이 작품은 주변의 어떤 인물의 삶과도 동조할 수 없었던 주인공의 회의주의적인 태도가 결국 그녀를 자살로 몰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치열했던 학생운동의 현장에서 한 걸음 비껴나 스스로 삶의 진실을 찾아 나선 자의식 강한 주인공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데 앞장 서는 친구의 삶과도 동조하지 못한 채 인간과 시대와의 불화를 겪게 됩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방’은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할 뿐 아니라 자아찾기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소양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호스티스 일을 하면서 종로 거리에 나가 방황하기도 하는 인물이지요. 이 같은 주인공 ‘소양’의 행동은 스스로의 자아를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으며 작품 속의 ‘방’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에 발표된 신경숙의 장편 《외딴 방》에서의 ’방‘은 표면적으로는 주인공 남매가 서울에서 생활하던 구로동 공단의 단칸방을 의미합니다. 이면적으로는 구로공단의 방은 주인공의 가난했던 과거의 공간인 동시에 그 가난으로 인해 위축된 내면의 슬픔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죠. 다시 말해 ’외딴 방‘이 가지는 의미는 물리적인 거리의 단절감뿐만 아니라 한 여성 노동자의 꿈과 좌절이 함께 기거하는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겁니다.

2000년대 이후의 문학에서는 과연 ’방‘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요. 아마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방‘이 그려지고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그 곳에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