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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0.11 | Vol.12
월간 카페人  /  제11호  /  지상의 쉼표
지상의 쉼표
[지상의 쉼표] 하르방 커피

언제 저랑 커피 한 잔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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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다녀와 숙제를 마칠 시간이면 할아버지는 텔레비전도 그대로 켜둔 채 어둑한 방에 누워 혼곤한 낮잠에 빠져 계셨다. 그럴 때면 소리조차 사라져서 완전한 고요만이 찾아온다. 나른해진 공기 속에서 때로는 나만이 움직이고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들던 그때, 나는 무엇을 했었나.

놀아줄 상대가 없어 무료해진 나는 할아버지 머리맡에 드러누워 주변 사물을 이것저것 관찰한다. 그러다 보면 바둑판 위에 놓인 빈 커피 잔에 시선이 멈춘다. 하르방 커피.

나는 슬쩍 다시 일어나 커피 잔을 들여다보고, 바닥에 남아 있는 몇 방울의 커피를 보며 입맛을 다신다. 냄새도 맡는다. 고여 있는 몇 방울의 커피가 나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양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한두 방울이나 될지. 뒤집어서 입을 벌리고 있노라면 머그잔을 따라 느릿느릿 내려오다 똑, 떨어지는 그 맛은 참 중독성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당신의 댁에서 보냈다. 청화백자 밑 서랍에 들어있는 것은 뭐든 다 알고 있었는데, 짤랑짤랑 소리 내는 동전들도 날 반겼다. 할아버지의 서랍 속에는 늘 군것질거리가 넘쳐났다. 그래선지 딱히 무얼 꺼내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신 할아버지께서 마시고 남긴 하얀 머그컵의 커피는 왠지 그렇게 탐이 났다. 그나마도 하르방 커피, 그 몇 방울의 커피로 맛을 알 수 있겠나 싶지만 단 것 좋아하는 나는 차마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몇 방울 남지 않은 커피를 전부 마시려고 혼자서 안간힘을 써본다. 그러다 지쳐서 씩씩대며 숨을 고르고 있노라면 커피는 어느 새 전부 말라붙어 아쉬움만 커질 뿐이었다. 아껴 먹으려고 잠시 놔두었다가 나중에서야 다 말라붙은 커피를 보면서 울상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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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은 날엔 할아버지가 커피 잔을 내밀며 너도 한 모금 마셔볼래? 하고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물론 많이 주시지는 않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정말 맛있게도 받아마셨다. 하르방 커피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었나? 지금 와서는 그리 즐기지도 않는 커피가 왜 그 때는 그리도 맛있었는지.

그러다 이사를 했고 당신의 댁은 더 멀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던가. 친구처럼 지내던 할아버지를 자주 뵙지 못하게 된 사이에, 누군가 중간의 기억을 툭 끊어놓은 것 마냥 당신은 더 빨리 늙으셨고 약해지셨다. 그만큼 낯설어진 당신을 보는 요즘도 나는 여전히 당신이 커피를 마시지는 않나, 지켜보곤 한다.

건강 때문인지 당신은 커피를 많이 줄이셨다. 예전처럼 커피를 즐기시는 것 같지도 않다. 물론 건강이 최고지만 아직도 나는 당신께 커피를 받아먹으며 친해질 수는 없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다른 곳에서 마시는 커피는 왠지 하르방 커피의 맛이 나질 않는다. 이제 내게 하르방 커피는 추억 속에만 존재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지금도 당신께 말하고 싶다.
하르방, 우리 하르방. 언제 저랑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글 | 지효정
지효정 님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하고,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대학생입니다. 이런 과정을 스스로 일컬어 ‘창조작업’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