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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0.11 | Vol.12
월간 카페人  /  제12호  /  지상의 쉼표
지상의 쉼표
[수리수리 정가이버] 전자 엔지니어의 집수리

완전몰입, 유레카!…비새는 집을 고치다

수리수리정가이버1.JPG

몇 해 전에 갑자기 집을 비워 달라는 집주인의 요구로 급하게 이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아보니 불과 2년 사이에 전세금이 엄청나게 올라 있었다. 전세금이 매매가의 90% 가까이 되었을 때였다. 그나마 전세 물건도 별로 없었고 아이들이 개학하기 전에 얼른 이사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몇 집 둘러보지도 못하고 시세보다 싼 급매물이 나왔기에 덜컥 매매 계약을 해버렸다. 작은 마당이 딸린 2층짜리 단독 주택이었다.

주변 시세에 비해서 많이 저렴했는데 살다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름이 되어 큰 비가 오니 베란다 쪽의 벽에서 물이 흐르다시피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이리 저리 살펴보니 수리하려고 했던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전 주인은 원인을 못 찾았는지 벽지가 들떠서 곰팡이가 난 채로 포기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기술자들을 불러 보았지만 역시나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원인을 찾고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

분야는 다르지만 나 역시 기술자(전자 회로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엔지니어)인지라 원인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 분명한 것은 비가 올 때 누수가 발생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지붕을 통해 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붕 기와 사이사이에 의심이 가는 곳마다 실리콘 작업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가장 의심이 가는 것은 두 평정도 되는 옥상 슬라브의 배수구였다. 그래서 물을 떠다가 배수구에 물을 흘려 보니 벽 틈으로 물이 새어 나왔다. 빙고!

엔지니어가 문제를 해결할 때 정확한 원인을 찾으면 문제의 절반은 해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인을 찾고도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큰 문제였는데 옥상의 배수관이 벽 속에 숨겨 있어서 수리하려면 벽을 다 뜯어야 하는데 집의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배수관이 벽 바깥쪽 보이는 곳에 설치되어 있다면 쉽게 교체할 수 있을 텐데 미관을 위해 벽 속으로 숨겨 놓은 것이다. 보기 좋게 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언젠가 수리할 경우를 대비했다면 좋은 설계는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문제는 해결해야 하니 이리 저리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모두 다 일이 너무 커지고 공사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전 주인도 원인은 찾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자 회로를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다가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때 온종일 한 문제에 집중하면 자면서도 생각하게 되고 때로는 꿈속에서 해결책을 찾게 되기도 한다. 완전한 몰입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인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머리엔 열이 나서 진짜로 스팀이 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해결책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유레카!

옥상 배수관에 호수 넣으니 말끔 해결

가능하다면 특허라도 내고 싶은 방법이었다. 본래 있었던 배수관은 지름 100mm의 PVC 파이프였다. 그런 파이프가 2층 옥상에서 지상까지 벽 속으로 10m 넘게 지나가며 3번이나 굽어 있고, 파이프 연결 부위는 접착제로 붙였지만 오래 되어 연결 부위에서 물이 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파이프 속에 쌓인 이물질을 청소하고 그 속에 싱크대 배수관으로 사용하는 굵은 호스를 집어넣기로 했다. 본래 있던 PVC파이프는 통로 역할만 하고 실제 빗물은 호스를 통해 배출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배수관의 지름이 좁아지기는 하지만 옥상에서 모인 빗물을 배수하기에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작업이 쉽지는 않았지만 철물점에서 호스를 사다가 수도 없이 옥상을 오르내리며 작업을 끝냈다. 욕실 바닥에 사용하는 배수구 부속을 사다가 배수구 입구도 말끔하게 마무리 했다.

다시 물을 부어 보았다. 성공이다! 물이 한 방울도 새지 않았다. 불과 몇 만원으로 기술자들도 해결 못하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건축을 전공한 친구들에게 얘기를 하니 자기들도 놀랍단다. 전자공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모두 납땜을 잘 하고 가전제품을 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건축을 전공했다고 해서 집수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막상 집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도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을 가진 분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수리를 마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아무런 문제없이 배수가 잘 되고 있다.

내친김에 도배도 하고 조명도 바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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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고 1년 정도는 빗물이 새는 채로 살았다. 수리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찾지 못하니 할 수가 없었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도 얼마나 답답했을까. 누수가 있는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을 테니 울며 겨자 먹기로 싼값에 집을 팔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손수 수리를 마치고 나니 급하게 이사하느라 속아서 산 듯해 애물 단지 같았던 집이 오히려 애착이 생기고 진짜 내 집이 된 느낌이었다.

직접 수리하는 것에 자신감이 생기자 곰팡이가 나 있던 벽지도 직접 뜯어내고 친환경 페인트를 사다가 아이들과 함께 칠했다. 벽을 말끔하게 칠하고 나니 낡아서 어울리지 않는 조명 기구도 전기를 절약할 수 있는 LED제품으로 교체했다.

이사 왔을 때 마당에는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딱 한 그루씩 있었는데 집이 오래된 만큼 감나무도 아주 커서 가을이면 맛있는 단감을 몇 상자씩 따서 이웃과 나누어 먹고도 남았다. 오래된 만큼 좋은 것도 있으니 오래된 것이 반드시 낡았음을 뜻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제 마당의 빈 자리에는 매화나무, 벚나무, 모과나무, 복숭아나무, 소나무, 꽃사과, 라일락, 진달래, 오죽과 장미를 심어 뿌리를 내렸고 봄이 되면 마당엔 꽃향기로 가득하다. 어린 모과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를 맺으면 딸아이가 좋아하는 모과차를 담을 생각이다.

글 | 정한섭
1994년부터 통신과 방송 관련 장비를 개발하는 전자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며 아빠로서 두 아이의 육아를 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수학과 코딩을 가르치는 일을 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