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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시 갈피]
세족식(洗足式)
마음먹은 대로 나름 살아왔다고 여겨온 내게
오랜만에 담가 본 대야 속의 따뜻한 발은
다른 얘기를 들려주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이 길로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다면
마음은 다른 곳으로 나를 이끌었을 것 아닌가
절뚝이며 살아오지 않은 건 내가 반듯해서가 아니다
수줍은 듯 서서히 붉게 변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너는
내 버팀목이었고 나의 이력이었다
길과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나는 늘 머뭇거렸고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는 곳에서 나는 늘 비틀거렸다
그 설렘이나 아쉬움이 아름다운 발자국이라 믿었지만
내 오랜 고집을 지켜주느라
항상 한 쪽으로만 닳는 신발 밑창이 내는 신음을
왜 미처 듣지 못했는가
너도 한 번은 바닥에서 벗어나
날아오르고 싶지 않았을까
내가 발을 끌고온 것이라 헤아리지 말아라
여기까지라도 무사히 온 건 내 몫이 아니었으므로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위로의 손길을 건네자
갈라진 발꿈치의 깊이 파인 흉터가
불현듯 나를 다독이며 눈자위를 닦아준다
시 | 오형석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공동시집으로 <백악이 기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