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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에세이] 참외가 익어가는 시간

기른다는 것, 그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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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가 열리기까지

 

 

 

‘장마끝물의 참외는 거저 줘도 안 먹는다’고 하는데 장마끝물인 지금 우리 농장 참외는 이제 노릇노릇 익기 시작한다. 올해는 마른장마라 흙이 펄펄 날릴 정도로 가물어 한창 수확철인 오이는 이미 말라 죽은 지 오래. 참외는 이제 어느 정도 자라 익기 시작했다. 모종 직후에 비가 많이 내리고 이 때쯤에는 오히려 햇볕이 쨍쨍 내리 쪼여야 단맛이 들 텐데….

 

주말농장을 한 이후 올해 처음으로 참외 모종을 심었다. 지난해 바로 옆 텃밭 아저씨가 커다랗고 노란 참외 두 개를 건네주었다. 작은 텃밭에서도 참외를 기를 수 있다니. 고추 모종 사이에 참외 모종을 심었다고 했다. 고춧잎이 무성해 잘 보이지가 않았는데 그 속에서 그리 탐스럽게 자랐나보다. 모종을 서너 개 심었는데 많이 열렸다며 맛이나 보라며 건네 준 것이다. 바로 딴 싱싱한 참외가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우린 왜 한 번도 참외 심을 생각을 못했을까. 조바심이 났다. 어서 봄이 오기를, 그래서 참외를 심을 수 있기를…. 그렇게 기다리던 올해 봄, 모종을 심을 때부터 순탄치 않았다. 각종 모종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 도통 참외 모종은 보이지를 않았다. 단 몇 주씩이지만 오이, 호박, 가지, 토마토, 고추 등 매년 심는 모종들을 심으면서도 내내 관심은 참외 모종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또다시 모종 가게에 들렀다. 참외 모종을 물어보는 주인은 모종이 이미 끝났다고 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모종 판매가 금방 끝나버린단다. 시기를 잘 맞춰야하는데 내가 놓쳐버린 것인가 자책하며 인근 꽃집이며 모종 가게들을 돌아다녔다. 서너 군데를 다니고 마지막 꽃가게에서 모종을 발견했다. 너무 작아 밭에 심으면 살 수나 있을지 걱정되는 모종 여섯 개. 못내 아쉬웠지만 이마저도 놓치면 아예 올해 참외농사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아 모종을 몽땅 달라고 했다. 모종가게 주인도 상태가 별로인데 정말 사갈 거냐고 재차 물어봤다. 모종 두 개는 그마저도 시들시들, 부랴부랴 밭에 가져가 심었다. 역시나 잎이 누런 모종 한 개는 뿌리가 없고 한 개는 실처럼 가늘다. 잎과 줄기만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 뿌리는 녹아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모종 다섯 개를 심었다. 그래 너희들이라도 잘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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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가 열리기까지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일찍 농장에 가서 물을 주곤 했다. 기대와 달리 참외 모종은 더디 자랐다. 고추 모종 사이에 심은 세 개는 조금씩 순을 뻗는데 감자 고랑 사이에 심은 두 개는 비실비실. 그나마 한 개는 손톱만한 잎사귀 서너 개를 달고 있을 뿐 크지도 않고 그 상태로 몇 주일을 버텨냈다. 그 어린잎이 어찌 견디나, 농장에 갈 때마다 가장 작은 모종에 눈이 갔다. 물을 흠뻑 주고 퇴비도 조금 뿌려주었다. 그렇게 5월, 6월이 지나가자 그렇게 애태웠던 참외순이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순이 뻗어나가기 시작하면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아들순과 손자순을 정리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열매가 잘 열린단다. 하지만 힘들게 자라기 시작하는 순을 잘라내기가 아까워 그냥 둔다. 아직은 순 구분을 못한다는 핑계로.

곧 노랗고 앙증맞은 꽃이 피고 꽃 끝에 손톱만한 열매도 맺히기 시작했다. 열매가 맺히자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아직은 초록빛을 띠고 주먹보다도 작지만 내 눈에는 어떤 참외보다 탐스럽고 예쁘다. 땅에 닿는 부분이 썩지 않게 하기 위해 과일 씌우는 싸개도 구해놓았다. 이번 주말에 가서 하나하나 씌워주면 끝. 이제 뜨거운 태양 아래서 노랗게 익어갈 것이다. 달착지근한 참외향이 코끝을 스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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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