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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in 가요] 함중아 <풍문으로 들었소>

뜨겁게 살다간 혼혈 아닌 혼혈가수

가요계에 ‘11월 괴담(怪談)’이란 게 있습니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가수 배호(1971.11.7), <하얀 나비>의 주인공 김정호(1985.11.29), <내 사랑 내 곁에>의 김현식(1990.11.1), <사랑하기 때문에>의 유재하(1987.11.1)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젊고 재능 있는 가수들이 유독 11월에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전해오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죠. 오십대 이상의 장년 팬들에게 아련한 추억의 애창곡으로 남아 있는 <난 정말 몰랐었네>의 최병걸 역시 1988년 11월 7일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이들처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건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가수 함중아도 2019년 11월 1일 별세했습니다. 혼혈 가수에 대한 편견이 만연하던 시절,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밤무대 그룹사운드 멤버로 시작해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그의 음악 인생 자체가 한 시대의 종막을 고하는 것 같아 왠지 더 가슴 한구석이 짠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밤무대 공연이 끝난 후 습관처럼 마셔온 술 때문에 간경화로 고생하던 고인은 지난해 간암 판정을 받고 투병해 오던 중 지난 11월 1일 병상에서 오랜 음악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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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와의 전쟁>으로 유명해진 노래

본명이 함종규인 가수 함중아는 1978년 혜성처럼 등장해 8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던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입니다. ‘아줌마 파마’를 연상시키는 심한 곱슬머리, 외국인처럼 짙은 쌍꺼풀의 젊은 남자 가수가 가슴이 살짝 드러나는 무대의상을 입고 흥겨운 율동과 함께 노래를 열창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을 겁니다. 전성기였던 80년대 초중반 그는 지금의 아이돌 가수가 부럽지 않을 만큼 강력한 팬덤을 가진 인기스타였습니다. 

함중아의 전성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팬들에겐 ‘2012년 개봉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배경 음악인 <풍문으로 들었소>의 오리지널 가수’라고 소개하면 조금 더 이해가 빠를 겁니다. 트로트도 아니고 정통 록 음악도 아닌 이 노래의 독특한 리듬은 훗날 ‘고고 록’이란 독창적인 장르로 불릴 만큼 대단한 사랑을 받았었죠. 아쉽게도 영화에 삽입된 것은 후배 가수 장기하의 리메이크 곡이지만 검은 선글라스를 낀 건달들이 백주 대낮에 떼 지어 도로를 활보하는 장면 위로 겹쳐지던 이 노래는 뭔가 어수선하고 불온했던 80년대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대 없는 나날들이 그 얼마나 외로웠나
멀리 있는 그대 생각 이 밤 따라 길어지네
하얀 얼굴 그리울 때 내 마음에 그려보며
우리다시 만날 날을 손꼽으며 기다렸네
우우, 풍문으로 들었소
그대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그 말을
우우, 풍문으로 들었소
내 마음은 서러워 하루 울고 말았네

_ <풍문으로 들었소> 1절 (1980년 ‘함중아와 양키스’ 골든디스크 수록곡)

 

함중아의 최대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이 노래는 그전에도 김건모 등의 후배가수가 리메이크해 여러 번 다시 불렀고, 드라마나 영화의 삽입곡으로도 자주 등장하며 사랑받던 곡입니다. 함중아 개인에게도 선의의 라이벌이었던 혼혈가수 윤수일(65)과의 ‘히트곡 전쟁’에서 주거니 받거니 자신의 인기를 입증할 수 있게 해준 노래라 각별한 애정이 깃든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극심한 가난이 운명처럼 인도한 음악인의 길

함중아는 한국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1952년 지금의 경북 포항시 연일읍 생지리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재밌는 것은 그의 부모 어느 쪽도 외국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는 대중에게 알려진 것처럼 혼혈 가수가 아니라 가요 활동을 위해 다소 이국적인 자신의 외모를 혼혈로 포장했던 ‘무늬만 혼혈’ 가수였습니다.  

그 이면에는 중학교조차 갈 수 없을 만큼 극심한 가난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굶기를 밥 먹듯 하던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윗형인 함정필과 함께 파주에서 이발소를 하고 있던 둘째 형을 찾아 무작정 가출을 감행하게 됩니다. 파주로 올라온 형제가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취직한 곳은 기지촌 근처에 있는 중국집이었습니다. 배고픔의 설움이 얼마나 지독했던지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던 그 시절을 함중아는 “먹고 자는 게 해결되니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었다. 평생 먹을 짜장면을 그때 다 먹었다”고 회고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짜장면 배달을 갔던 홀트아동보육원 원장의 배려로 보육원 안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된 형제는 그곳에서 만난 혼혈 친구들과 음악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형제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옵니다. 함께 음악을 하던 혼혈 친구 김영길이 쓴 <잃어버린 세대들>이란 시나리오의 영화화를 위해 유명 배우들을 찾아다니던 중 우연한 기회에 가수 겸 프로듀서 신중현의 휘하에서 체계적으로 음악 공부를 할 기회를 잡게 된 것이었죠. 혼혈이라는 이유로 정상적인 사회 진출의 길이 제한돼 있던 혼혈아 친구들, 그리고 함중아 형제에겐 다시 만나기 힘든 기회였습니다. 

2년여 ‘신중현과 골든그레이프스’ 멤버로 활동하는 사이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했습니다. 신중현 몰래 출전했던 1974년 ‘주간경향컵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였죠. 2년 후 신중현에게서 독립한 그는 ‘골든그레이프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밤무대에서 독자적인 연주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자신의 스승인 신중현처럼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되기를 꿈꾸던 그는 이때 ‘아시아에서만이라도 최고로 묵직한 기타리스트가 되겠다’는 뜻에서 자신의 예명을 중아(重亞)로 지을 정도로 기타 연주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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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에 감동받고 보컬로 전향, 윤수일과 선의의 경쟁

그 무렵 그는 어릴 적부터 함께 해온 형 함정필과 음악적 견해 차이로 갈라서게 됩니다. 리듬앤 블루스를 선호하던 형 함정필은 기타리스트를 새로 구해 자신의 팀을 만들었고, 하드락을 추구한 함중아는 보육원에서부터 함께 해온 혼혈 친구들과 ‘함중아와 양키스’란 이름의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죠. 이때부터 함중아는 ‘혼혈가수’로 알려지게 됩니다. 팀 이름이 양키스(yankees)였기 누구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함중아 본인도 굳이 혼혈이 아니란 사실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게 편했다고 회고합니다.  

서울, 대구 등의 호텔 나이트클럽 무대를 위주로 활동하던 그는 이 무렵부터 돌연 연주보다 보컬에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가 갑자기 기타리스트의 꿈을 포기하고 보컬에 더 욕심을 내게 된 것은 우연히 같은 밤무대에 서게 된 조용필의 노래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라고 하죠. 생전에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조용필 선배 공연을 보게 됐는데 ‘노래라는 게 저런 거구나! 사람 목소리가 저렇게 훌륭한 악기로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회고하며 “한번은 무대에서 내려오는 조용필 씨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하자 ‘함형도 노래 잘 하잖아요’라고 얘기해줘 보컬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 와중에 함중아는 엉뚱한 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형 함정필이 이끌던 ‘솜사탕’이란 밴드에 기타리스트로 영입됐던 신예 윤수일이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의 히트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 때문이었죠. 평소 자신의 실력이 더 낫다고 자부하던 함중아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대구 수성호텔에서 일하던 함중아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당장 서울로 올라와 자신의 데뷔 음반 준비를 서두르게 됩니다. 이듬해 나온 함중아와 양키스의 데뷔음반은 다행히 ‘솜사탕’ 못지않은 대성공으로 함중아의 자심감을 회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때 크게 히트한 곡이 <눈 감으면>과 <안개 속의 두 그림자>입니다. 

언론과 팬들은 한 해 차이로 등장한 두 혼혈가수(?)의 경쟁구도를 꽤 흥미롭게 다뤘습니다. 이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함중아와 윤수일은 주거니 받거니 히트곡을 쏟아내며 80년대 중반까지 선의의 경쟁자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죠. 함중아의 히트곡 <풍문으로 들었소> <내게도 사랑이> <카스바의 여인>과 윤수일의 히트곡 <아파트> <아름다워> <제2의 고향> 등이 이때 나온 노래들입니다. 함중아의 최대 히트곡인 <내게도 사랑이>는 특히 1981년엔 가요 프로그램인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제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함중아는 그 행복했던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아마 자신에게도 그토록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음을 그리워하며 하늘나라에서 나지막이 콧노래를 부르고 있진 않을까요? 함중아의 목소리로 듣던 그 추억의 노래가 자꾸 그리워집니다.  

긴 세월 흘러서 가면 그 시절 생각이 나면
못 잊어 그리워지면 내 마음 서글퍼지네
시간이 흘러서 가면 아픔은 잊어진다고
남들은 말을 하지만 그 말은 믿을 수 없어  

내게도 사랑이 사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뿐이라오
내게도 사랑이 사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뿐이라오

_ <내게도 사랑이>(1980년 ‘함중아와 양키스’ 골든디스크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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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현
[커피 in 가요] 함중아 <풍문으로 들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