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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스토리텔링
어느 날 티 카페의 오후

홍차의 맛과 향, 아는 만큼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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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덖을 때가 가장 조심스럽고 정성이 한 곳으로 모이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중년을 넘긴 가게 주인의 중저음 목소리에 은은한 차 향이 배어나오는 듯하다. 오후의 햇살이 가게 안을 환하게 비춘다. 직접 차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는 이곳의 차 메뉴에 대한 설명을 듣다 내친김에 그동안 궁금했던 홍차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주인은 ‘다즐링’ 홍차처럼 향긋하게, 때로는 쌉싸름하게 홍차의 매력을 일러준다. 

“보통 찻잎이 85% 이상 완전 발효된 것을 홍차라고 불러요. 보통 색깔은 홍색이고 떫은맛이 강한 편이죠. 찻잎에는 폴리페놀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떫은맛이 나는 거죠.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차의 75%정도가 홍자 종류라고 보시면 됩니다. 찻잎의 수분이 반 정도 날아갈 정도로 서늘한 곳에서 말려요. 이걸 ‘시들리기’라고 하는데 그걸 손으로 비벼 이파리의 조직을 부수어주면 발효가 촉진되기도 하고 찻잎의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이 과정이 차의 색과 향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한 찻잎을 5cm 정도 쌓아 25℃의 서늘한 곳에서 90% 정도의 습도로 말리면 이파리가 빨갛게 산화 발효되죠. 이걸 열풍에 빨리 말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면 홍차가 되는 거예요.”

‘홍차 나무’가 따로 있나?

다른 차나무처럼 홍차가 자라는 나무가 따로 있는지 궁금했다. 사실 차나무도 실제 제대로 본 적이 없어 그런지 차나무 자체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광주나 보성의 차 재배지가 제일 많이 알려져 있을 겁니다. 경남 화개나 창원도 차 재배로 유명하고, 경기 용인에서도 차를 재배하고 있어요. 주로 남쪽이 많은 이유는 연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의 온난하고 강우량이 1,500mm 이상의 다습한 지역에서 나무가 잘 자라기 때문이에요. 모든 이파리를 차로 쓰는 건 아니고 찻잎으로 쓰는 건 어린 잎이나 순을 따서 가공한 걸 보통 찻잎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다 자란 차나무를 보면 끝이 뾰족하고 잎 둘레에 톱니가 달려 있어요. 다 자란 잎은 두텁고 질기죠. 그래서 봄에 나는 어린 이파리나 새순을 따서 차에 쓰는 거죠.”

홍차 나무는 없는 셈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좀 더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이어간다. 홍차는 어떻게 마시게 됐는가, 누가 만들었는가. 가게 문 앞에 달아놓은 풍경 소리가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 종소리처럼 땡땡거린다.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죠. 중국에서 차를 처음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아실 겁니다. 중국인들이 예부터 무역이나 장사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중국에서 녹차를 배에 싣고 유럽을 향해 가는데 적도의 뜨거운 태양열을 통과해야 할 것 아닙니까. 유럽에 와서 차 상자를 열어보니 찻잎 색깔이 변해 있었더래요. 그걸 버리기 아까워서 마셔 봤더니 녹차와는 색다른 맛이 나더라는 거죠. 이 일을 계기로 홍차를 마시게 됐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전 세계 차 무역량의 75%를 차지하는 홍차가 적도의 태양이 만든 우연의 산물이라는 거지요. 찻잎에는 산화효소가 있어서 그대로 놓아두면 자연 발효가 일어납니다. 중국에서는 잎을 딴 즉시 가열하여 효소를 불활성화시켜 녹차를 만들었습니다. 제조 과정 중 우연히 잘못되어 발효된 차가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명한 ‘우롱차’라고 부르는 오룡차(烏龍茶) 등 반발효차와 완전발효차인 홍차가 태어난 거지요. 이 시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17세기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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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꽃피운 홍차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농씨(神農氏)가 녹차를 처음 만들어 마셨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신농씨의 이야기라면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의 전설이다. 녹차가 인류에게 반만 년의 음료라면 홍차는 우리에게 400년 전쯤 다가온 새로운 음료인 셈이다. 그런데 17세기의 중국과 유럽의 무역에 홍차가 연관되어 있다면, 유럽인들은 언제 홍차를 마셨는지 궁금했다.  

“언제부터 유럽인들이 홍차를 마시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다음과 같이 생각됩니다. 처음에 유럽인은 차에 설탕이나 우유를 타서 마셨습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차는 대부분 녹차였지만 반발효차인 오룡차(烏龍茶)도 조금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름기 많은 중국요리를 먹은 후에 오룡차를 마시면 입안이 개운하듯이 고기를 많이 먹는 유럽인에게는 발효된 차가 입맛에 더 맞았던 것입니다. 이 흐름에 맞춰 중국이 오룡차를 더 많이 수출하면서 점점 더 발효시켜서 홍차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이는 18세기 후반 중국차의 대표격인 기문(Keemun, 祁門)차가 영국 문헌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순이 되자 당시 유럽을 대표하던 영국의 차는 거의 홍차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홍차에는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주인의 친절한 답변이 이어진다. 오후 햇살이 테이블 위에 낮잠이라도 자고 가려는지 찻잔의 그림자를 깔고 한가롭게 늘어진다.

“우선 차는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나눌 수 있어요. 봄 차로는 양력 4월 20일경(곡우)에서 5월 상순경에 나는 ‘첫물차’가 있고, 양력 5월 하순부터 6월 상순경의 ‘두물차’가 있죠. 이 시기가 지나면 여름에 만드는 ‘세물차’가 있는데, 양력 6월 하순에서 7월까지 주로 작업을 합니다. 독특한 향이 나는 ‘끝물차’가 가을 무렵 처서와 백로 절기를 거쳐 주로 나오고 있죠. 찻잎을 따는 시기도 중요합니다마는 이파리를 얼마나 발효시키느냐도 차를 구분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이유가 되죠. 발효 정도에 따라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눕니다.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에서 주로 생산되는 녹차는 불발효차라고 해서 발효되지 않은 것을 덖거나 찌는 형태로 만듭니다. 어느 정도 발효시킨 반발효차는 주로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오룡차, 백차, 포종차가 있어요. 지금 마시고 있는 홍차는 90% 정도로 거의 발효시킨 것으로 발효차라고 합니다. 이 홍차는 인도, 스리랑카, 아프리카, 중국이 생산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생산하는 황차나 흑차는 전 처리 후 발효시킨 차이죠.”

차 한 잔이 새롭게 보인다

홍차가 무엇인지 시작된 궁금증은 홍차 특유의 색과 은은히 번져가는 향을 따라 차 전반으로 넓어진다. 그런데 정작 지금 마시고 있는 ‘다즐링’은 무엇일까. 궁금하던 차에 주인은 말을 바로 잇는다.  

“홍차를 이해하려면 원산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본래의 차 빛깔과 독특한 향을 음미하면서 마시기에 좋은 ‘스트레이트 티(Straight Tea)’로는 중국의 기문, 랩상소우총(Lapsang Souchong) 등이 있어요. 인도의 홍차로는 아쌈, 그리고 지금 마시고 있는 ‘홍차의 샴페인’으로 부르는 다즐링, 닐기리 등이 있죠. 또한 스리랑카에서 생산되는 실론과 우바가 대표적인 홍차들입니다. 원산지가 다른 차를 섞어 만드는 ‘블랜드 티(Blended Tea)’는 실론티와 인도차를 혼합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인도의 아삼을 주재료로 하는 아이리시 브렉퍼스트가 있어요. 러시안 캐러반이라고 부르는, 랩상소우총이나 기문 등의 중국차와 인도차를 블랜딩한 차도 있고요. 그 외에 오렌지 페코, 로얄브렌드, 애프터눈 등이 주로 판매되는 홍차들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차 한 잔이 새롭게 보인다. 홍차라는 음료가 만들어지고 전파되는 과정이 어쩌면 인류의 역사와 궤도를 같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찻잔 속이 넓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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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