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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손인수
에디터 오형석 조경숙 김정현
디자인 이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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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0.07 | Vol.8
월간 카페人  /  제6호  /  커피 볶는 마을
커피 볶는 마을
커피향미를 찾아서 6

왜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걸까?

잘 익은 커피체리에서는 단향과 특유의 매콤한 생동감이 피어난다. 콜롬비아 안티오키아에서 수확한 커피체리의 향을 맡고 있는 콜롬비아 청년.

‘인간은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는 명제는 우리를 뿌듯하게 만든다. 사색과 명상이야말로 인류 진화를 이끈 동력이겠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 자체를 사유(思惟) 하는 것이 인문학(Humanities)이라면, 그것은 결코 교실에 갇힌 학문일 순 없다.

한 잔의 좋은 커피를 마주하는 어느 곳에서라도 인문의 바다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은, 커피가 주는 또 하나의 축복이다. 카페인의 뇌기능 활성화, 클로로겐산의 항산화 효과, 트리고넬린의 뇌세포 재생 촉진 등 주요 성분들의 작용을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좋은 커피는 향기만으로도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한다.

바람에 실려 오는 커피의 향기는 뱃사람들을 홀린 사이렌의 노래보다도 떨칠 수 없는 유혹이다.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를 볶은 뒤 분쇄하는 순간 피어나는 향기는 지그시 눈을 감기게 한다. 왜 우리의 관능은 커피의 향기 앞에서 어린양처럼 사분사분해지는 것일까?
누군가 ‘커피의 향미를 즐기는 것이냐, 아니면 향미를 감상하는 행위를 누리는 것이냐’를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힘들다. 왜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걸까?

지나온 삶속에 사부작 스며든 커피

커피를 처음 만난 것은 6살쯤으로 기억된다. 1972년도쯤이겠다. 선친이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던 터라 집에는 손님이 잦았다. 어머니는 접대용 음료로 홍차와 커피를 주로 내놓으셨다. 어머니는 이들 음료를 식혜와 수정과보다 귀하게 여기신 것 같다.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는 장면은 마술과 같았다. 어머니는 병에서 2스푼 정도 진한 커피가루를 꺼내 잔에 담고 그 위에 각설탕을 2개 올리셨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잔의 4분의 3가량이 차도록 붓고 휘휘 저으며 커피와 설탕을 녹였다.

마술은 지금부터다. 커피 자리에는 항상 간장종지만한 작은 그릇에 모락모락 데운 우유가 담겨 있었다. 하얀 우유가 검은색 커피용액에 섞여 들어가는 모습은 악마가 하얀색 스카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즈음 커피의 향기는 그윽하게 바뀌었다.

병에 담긴 커피가루의 냄새는 어린 나에게는 유쾌하지 않았다. 흙이 묻은 칡뿌리와 할아버지 곰방대, 그리고 뒷집 철봉이네가 키우던 소의 마른 여물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찌르는 듯했다. 이런 커피가 우유를 만나는 순간, 부드러워지는 모양도 모양이거니와 향기가 완전히 다르게 바뀌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면 악마가 천사가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우유는 종종 홍차가 담긴 잔에도 부어졌지만, 그 잔에는 악마가 없었기 때문인지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지 않았다. 해질녘 뒤뜰에 내걸린 여동생의 기저귀에 비치는 노을처럼 경계가 밋밋하다는 인상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고는 했다.

커피체리를 따고 있는 필자.

그리고 커피와 추억을 만든 것은 10여년이 지난 대학교 도서관이었다. 오후 1시쯤이면 휴게실의 커피자판기 앞은 4~5명이 줄을 설 정도로 붐볐다. 도시락을 까먹고, 특히 날이 추워 컵라면에 밥이라도 말아 먹은 날이면 달달한 커피 한 잔이 더욱 그리웠다. 김치나 장아찌 등 반찬 냄새를 없애기 위해 식후에 커피를 마시는 것은 당시 85학번 아이들로서는 멋쩍은 호사(豪奢)이기도 했다.

군대에 가선 커피를 취향에 맞춰 다르게 즐기는 세계를 경험했다. 제법 악명 높은 조교로 이름 떨치던 나는 점심시간에는 종종 부드러운 바리스타로 변신해 ‘특임’을 수행했다. 많은 조교들 가운데 “박 일병이 타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유쾌하기까지 했다. 단장 부속실의 커피 캐비닛은 점심때면 중령 이하 장교들에게도 개방됐다.

내 커피가 맛있던 비결은 간단했다. ‘정 중령은 2-0-2, 나 소령은 2-2-3, 문 소령은 2-2-2, 이 대위는 2-1-0.’ 마시는 사람에 따라 커피-설탕-크림의 비율을 달리해 기호를 맞춘 게 전부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다면 인스턴트커피일지언정 최고의 커피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이 그때부터 생긴 듯하다.

좋은 커피에는 이름을 불러주자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고 묘사하는 커피테이스터(Coffee Taster)로서 행복을 누리기까지는 그 후 적잖은 과정을 거쳤다. 와인, 위스키, 차, 맥주, 사케 등 식음료 분야를 취재하고 공부하면서 커피를 다시 만난 것은 2009년이었다. 와인 탐구를 통해 식음료의 맛은 재료가 자란 땅과 기후, 재배자의 열정에 달렸다는 ‘테루아(Terroir)의 진실’을 경험한 뒤 다시 만난 커피는 단숨에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커피는 더 이상 달달함만을 주는 음료가 아니었다.

한 잔의 좋은 커피를 대하는 것은 고매한 인품을 만났을 때만큼이나 반갑다. 좋은 커피는 나의 관능을 괴롭히지 않는다. 과일과 같은 산미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단맛과 동글동글 기분 좋은 질감은 나의 정신과 태도를 어느 한 구석 모나지 않도록 매만져준다. 목을 넘긴 뒤 떠오르는 다크 초콜릿의 뉘앙스와 홍차를 연상케 하는 개운함은 매사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한다는 선비의 가르침을 닮았다.

이런 행복을 선사하는 커피를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좋은 친구를 잃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커피를 만나면 반드시 이름을 불러 줘야 한다. 커피를 부르는 이름이란, 곧 그 커피가 자란 땅을 의미한다. 커피가 자란 곳을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 거대한 단위의 국가 명이 아니라 동네나 농장 이름까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할수록 좋다. 커피를 재배한 사람들과 그 집안의 내력과 커피에 대한 열정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관능의 행복’을 위하여

품종과 수확한 날짜, 가공방법을 아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성장과정을 통해 가늠할 수 있는 ‘됨됨이’ 같은 것이다. 소비자들이 커피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이런 정보를 요구하며 커피를 가려 마셔야 한다. 이런 노력은 사회의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운동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관능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좋은 커피가 주는 축복 중 하나는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소중해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목을 타고 들어와 곧 나의 일부가 되는 커피는 나를 명상으로 이끈다.
“행복이란 자기의 영혼을 훌륭하다고 느끼는 데 있다”는 조제프 주베르(Joseph Joubert)의 명상은 끝없이 커피의 향미를 추구하는 테이스터들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잘 익은 커피체리만을 수확해야 쓴맛이나 떫은맛 없이 향미가 좋은 커피를 만들 수 있다.
글 | 박영순
사진 | 커피비평가협회(CCA, www.ccacoffee.co.kr)
박영순 님은 21년간 신문기자로서 와인, 위스키, 사케, 차, 맥주, 커피 등 식음료를 취재하면서 향미에 몰입했습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에서 향미 관련한 자격증 30여종을 비롯해 미국요리대학(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플레이버 마스터를 취득한 뒤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과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년 <커피인문학>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