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아틀리에
[드로잉 에세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쓱쓱 열리는 신세계

“제 취미가 드로잉입니다”

“오늘은 또 뭘 그리나?”

드로잉을 시작하고 맘 맞는 그림 친구 몇 명이서 매일 그리기를 해보기로 했지만 뭘 그려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도무지 늘지 않는 실력이 연습 부족이라는 것엔 이견이 없었다. 결국 우리끼리 간단한 사물이라도 매일 그려서 올리자는 규칙을 정했다.

주제도, 크기나 형식도 필요 없이 단 하나 지켜야하는 규칙은 매일 그려서 SNS에 올리는 것이다. 주중엔 4시간 가까이를 길에서 허비하는 고난의 출퇴근을 하고 집에 가면 식사 준비하기도 빠듯한 내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면 그대로 기절, 주말은 주말대로 바쁘다. ‘그림은 언제 그린담!’ 하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띵동! 매일 저녁 친구들이 SNS에 올리는 소리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 정 바쁘면 선이라도 그려서 올리자고 했지? 자주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 초보가 어떻게 잘 그리기만 하겠어.’

그렇게 매일 컵이나 의자 등 자잘한 소품부터 가족을 간단하게 스케치한다. 주제도 뭣도 없다. 그저 눈에 띄는 것을 그릴 뿐.

1.드로잉에세이_핸드밀.jpg

2.드로잉에세이_컵.jpg

이젠 그림의 소재를 찾는 게 일이다. 되도록 복잡하지 않고 쉽게 그릴 수 있을 것, 움직이지 않을 것, 부피가 크지 않을 것. 나름 몇 가지 원칙을 정했지만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농작물이 그림 소재가 될 때가 많다.

봄에 심어서 여름내 고구마순 김치로 식구들 입맛을 돋웠던 고구마. 올해도 서리 내리기 전에 순을 걷어내고 고구마를 캤다. 심은 면적에 비해 수확이 형편없었지만 사진 한 장 찍어서 남기기에는 아쉬워 그림 소재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기의 첫째는 자세히 보기. 크기도 작고 볼품없어 못내 서운했지만 스케치를 위해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구마 하나하나가 너무 귀엽고 예쁘다.

3.드로잉에세이_고구마.jpg


집에 몇 개 되지 않은 화분도 즐겨 그리는 소재다. 그림 소재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내 눈에 띈 냉장고 위 화분. 이름이 뭔지도 모른 채 20년째 냉장고 위에서 줄기를 뻗어 내리고 있는 식물을 그려서 밴드에 올렸다. 식물을 유독 좋아하는 그림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스킨답서스는 부엌의 유해물질을 가장 잘 흡수하는 아이에요. 조리하면서 나오는 미세물질들에 최적이라고 하네요. 조금씩 잘라서 흙에 꽂아두면 뿌리 나고 잘 번져요. 여기저기 두고 보세요. 저는 여러 포트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줬어요. 어지간해서는 못 죽이는 식물입니다. 나뭇잎 하나 그리는 것도 버거워서 덩굴을 거들떠도 안 봤는데 이젠 정말 쓱쓱 그리게 되었어요.”
 

4.드로잉에세이_스킨답서스.jpg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는 우리 가족들도 내겐 제일 만만한 그림 소재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은 움직임이 적어 모델로 제격이다. 하지만 이제는 스케치하기 위해 펜을 꺼내드는 순간, 각자 황급히 방으로 몸을 피한다. 이유는 ‘엄마가 너무 이상하게 그려서’란다. ‘쳇, 본인이 이상하게 생긴 건 생각 안 하구?’

5.드로잉에세이_인물.jpg

그림은 이야기가 되고 생각을 주고받으며 공감하는 매개가 된다. SNS에 누군가 그림을 올리면 모두들 댓글로 의견을 빙자한 칭찬의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하곤 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스케치를 해보려 노력한다. 실력과는 상관없이 이제 드로잉이 내 취미가 되었다. 좋아하고, 하고 싶으니까. 친구 말마따나 언제라도 쓱쓱 그릴 수 있으니까.

오늘도 난 꿋꿋이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오늘은 또 뭘 그리나?

글·그림 | 조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