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아틀리에
[시 갈피]

첫눈처럼

GettyImages-1024298914.jpg


누군가 긴 가뭄과 긴 무더위 끝에 내리는 단비를 첫눈처럼, 첫눈처럼, 비가 오고 있다고 했다. 그래,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를 만난 것도 첫눈처럼 설레는 것이었다. 새하얀 원피스에 무늬로 피어있던 꽃잎을 꺼내주던 그 순간이 첫눈처럼, 잊었던 기억을 지펴낸다. 담벼락의 개나리를 보고 첫눈처럼, 꽃이 핀다고 생각했고, 여우비 내리던 어느 날에는 첫눈처럼 혹여 우리의 만남이 잠깐 왔다가 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만날 때마다 첫눈처럼, 내가 젖었던 것. 혹은 그대를 적실 수 있었다는 것. 그 추억들이 첫눈처럼 쌓여,  

나도 어느 덧 첫눈처럼, 정수리 희끗희끗해지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구나 하는 생각도 첫눈처럼, 소복소복 쌓여간다. 그래도 참 고마운 일 아닌가. 내가 나에게 첫눈처럼, 내 삶의 바탕색을 물어볼 수 있으니, 세상을 아름답게 색칠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으니, 그렇게 첫눈처럼, 나의 계절이 즐겁기도 하지만. 아, 가끔씩, 소식을 끊어버린 너를 첫눈처럼, 첫눈처럼, 보고 싶을 때가 많구나. 그리울 때 부지기수다. 어디 있느냐. 사랑아, 사랑아, 첫눈처럼 찾아오면 안 될까. 첫눈처럼, 첫눈처럼,

시. 오석륜(吳錫崙)
시인, 번역가, 칼럼니스트. 2009년 《문학나무》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시인 등단했습니다.
시집 《파문의 그늘》, 저서 및 역서로 《일본어 번역 실무 연습》 《일본 하이쿠 선집》 《풀 베개》 등 30여권을 출간했습니다. 현재 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