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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갈피]

마당에 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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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 큰물 빠지고 가을걷이 끝낸 자리에 햇살 들어차는 순간을 아침이라 부르자

밤나무를 오르는 산개미 잠시 땀 식히며 텃밭을 바라볼 때 그대가 말갛게 하품하는 모습이 한낮이라 부르자

평상에 내려앉은 고추잠자리 노란 장판에 그림자 빙빙 돌리며 눈길 넌지시 흘리고 있던 순간, 뭔가 곰곰이 생각하던 그대 눈동자를 오후라 부르자

멀리 있던 노을, 새콤한 사과향 같은 바람으로 두런두런 장독 항아리를 덮으며 다가올 때 군침돌던 허기와 노을이 흐르며 떨어지던 사과 발자국 그 사이를 저녁이라 부르자

보조개 닮은 초저녁 별이 등목해주던 그대 하얀 손가락 거품 물고 매끈하게 빠져나가던 간지러움을 밤이라 부르자

그렇게 불러놓고

우리 살던 그 집 마당

그 시간을 위해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남겨두자

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