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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볶는 마을
[커피테이스터] 커피향미를 찾아서 14

우리를 사유로 이끄는 커피란?

‘커피를 와인처럼 즐기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커피를 ‘카페인 충전용’쯤으로 간주하지 말고 맛을 음미하고 품질을 평가하자는 운동이 커피애호가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에르나 크누젠 여사가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의 개념을 처음으로 설파하고, 90년대 중반 이를 실천하는 카페들이 생기면서 커피가 와인과 같은 문화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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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이루는 원자들이 아주 먼 옛날 인류의 한 부분이었을 수 있다. 커피테이스터들은 자연의 일부로서 커피와 인간은 맛을 통해 교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객관적 품질 따지는 커피마니아 증가세

이런 가치를 핵심으로 하는 이른바 ‘제3의 물결’이 커피업계에서 일어난 지 어느덧 사반세기. 그러나 커피문화가 와인문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희망적인 것은 맛과 산지, 품종을 따지고 가리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카페를 방문하는 소비자 속성 연구에서 커피 품질이 접근성이나 편리성, 가격에 앞서 카페를 선택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들도 스페셜티 커피를 중점적으로 판매하는 매장을 별도로 만들어 좋은 커피를 제공한다는 이미지를 높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소비자들도 맛을 따지기 시작했다. 아직 대세를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커피의 신맛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커피의 출처를 추적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1970년대 와인업계에서도 있었다.

프랑스와인이 지배하던 와인시장에 미국와인들이 등장해 맛 평가에서 압도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은, ‘파리의 심판’이라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와인의 품질을 객관적으로 따져 마시는 문화가 형성됐다. 전통을 자랑하는 와인들이 맛 평가에서 뒤져 소비자들의 질타를 받은 반면 미국,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 등 신생 와인 생산국들도 선입견 없이 품질로 평가를 받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한마디로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와인으로 대접을 받는 시대가 저물고 철저히 가성비를 따져 소비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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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별 로스팅 상태. 로스팅을 통해 커피 맛이 새롭게 생긴다는 사실을 색변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색다른 맛이라는 표현처럼 맛과 색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선입견을 뺀’ 커피품질 평가 5대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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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에 담긴 커피는 아로마, 산미, 향미, 바디, 뒷맛 등 5대 지표를 통해 품질을 추정할 수 있다. 유리잔에 담으면 색을 통해 맛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도 있다.

커피 소비자 입장에서 가성비를 따지기 위해서는 커피의 맛을 스스로 평가해 품질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향미를 통해 커피의 품질을 가늠하는데 통상 아로마(Aroma), 산미(Acidity), 무게감(Body), 향미(Flavor), 여운(Aftertaste) 등 5대 지표가 활용된다. 스페셜티커피협회(SCA)나 커피리뷰닷컴, 스위트마리아, 커피비평가협회 등 전문가단체들이 향미 평가를 위해 공통적으로 차용하는 지표들이다. 커피를 탐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5대 지표를 이해하는 것은 어느새 교양수준이 됐다. 이젠 한 걸음 나아가 구체적으로 맛이 주는 느낌을 묘사하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품질이 좋은 커피가 늘어나면서 회자되는 게 단맛과 신맛이다. ‘쓴 게 커피’라는 그릇된 믿음이 커피는 단맛과 신맛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말로 바뀌고 있다. 커피의 신맛과 단맛이 어떻게 돼야 좋은 것인지는 과일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식음료의 품질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축이 되는 것이 단맛이다. 같은 과일이라도 단맛이 있는 쪽이 당도뿐 아니라 향기도 더욱 풍성하게 느껴진다. 단맛이 없는 자몽은 찌르듯 자극적이다. 단맛을 찾기 힘든 망고는 못내 허무하다. 애당초 단맛이 모자란 사과는 고독하다. 커피의 맛도 마찬가지이다. 단맛이 부족한 상태에서 드러나는 산미는 관능적으로 좋을 수 없다. 좋은 커피를 마시고 블루베리, 파인애플, 키위, 자몽, 패션프루츠 등 과일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단맛이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산미를 무시해선 안 된다. 산미는 관능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커피에 산미가 있어야 싱그러움이 느껴지고, 기분을 밝게 한다. 산미는 동식물에서 유래하는 유기산과 미네랄에서 비롯된 무기산이 유발하는 맛이다.

그렇다고 모든 산이 신맛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커피에 들어있는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과 퀸산(Quinic Acid)은 쓴맛을 부여한다. 글루탐산(Glutamic Acid)과 아스파라긴산(Asparaginic acid)은 감칠맛을 내는 성분이다. 커피에 발랄함을 주는 신맛의 원인 성분을 함유량이 많은 순으로 적어보면, 대체적으로 구연산-초산-젖산-사과산-인산 등의 순이다. 커피의 향미 판별을 어렵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구연산의 함량이 많다고 귤 맛이, 사과산의 함량이 많다고 반드시 사과 맛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커피의 산미가 특정 과일을 유발하는 데에는 산 성분보다는 수많은 향기성분들이 작용하는 바가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귤 느낌이 나는 것이 더 좋다” “블루베리나 키위 맛이 나야 더 깨끗한 커피다” “살구나 복숭아 맛이 나야 고급커피다”는 식의 인식은 옳지 않다. 어떤 과일의 맛을 내야 좋은 커피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을 가지고 다툴 일은 아니다. 커피의 쓴맛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커피에는 분명 쓴맛을 내는 성분이 있다. 퀸산(Quinic acid), 트리고넬린(Trigonelline), 카페인(Caffeine), 펩타이드(Cyclic Peptide) 등은 미각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해 뇌를 향해 쓴맛으로 느끼라는 신호를 보낸다. 쓴맛은 뇌를 불쾌하게 만들어 즉시 뱉어내도록 근육을 움직이게 한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더니 쓴맛만 강하게 느껴져 표정이 일그러질 정도라면 당장 뱉어내는 게 정상이다.

우리의 DNA는 그렇게 진화해왔다. 좋은 커피라면 쓴맛으로 우리를 괴롭힐 리 없다. 재스민-장미-라벤더를 연상케 하는 그윽한 꽃향, 잘 익은 오렌지-포도-살구-복숭아-베리의 과육을 베어 문 듯한 기분 좋은 산미, 캐러멜-사탕수수-꿀-시럽과 같은 달콤함 등이 쓴맛을 보듬어 주는 덕분이다. 쓴맛은 때론 시나몬-정향-바닐라-아니스 등 향신료들과 어우러져 고급 커피만이 자아낼 수 있는 깊이감(Depth)과 복합미(Complexity)로 승화한다. 다만 커피에서 쓴맛은 존재감(Existence)이어야 하지 정체성(Identity)으로 두드러져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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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맛을 보는 것으로 품질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반복되는 지각을 통해 인간이 정보를 만들어 내는 정신활동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맛은 ‘생각의 도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분법을 벗어난 커피음용법…‘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다음으로 감각과 지각을 통해 품질을 구별할 수 있다면 감성에 주목해도 좋겠다. “커피란 신체에 작용하는 것인지, 정신에 작용하는 것인지”를 화두로 삼아 사유하는 것이다. 커피가 정신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증명된다. 카페인이 심리적인 영향을 끼쳐 우울증과 자살을 예방하고, 집중력을 높여 업무능력 향상에도 긍정적이라는 보고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거꾸로 커피의 과도한 섭취는 불안, 두근거림, 신경질을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를 종합하면, 질문의 답은 “커피는 신체와 정신에 모두 작용한다”가 되겠다. 하지만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 17세기 데카르트의 심신(心身)이원론을 토대로 인간이 각각 독립적인 정신과 물질(신체)로 이루어졌다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원론적 전통을 계승한 심신이원론은 그러나 한 세대 뒤쯤 나타난 스피노자의 도전을 받았다. 스피노자에게 인간은 사유(정신)의 측면과 연장(신체)의 측면을 모두 가진 존재이고, 심신은 서로 동등하면서도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커피는 어떻게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가?”로 질문을 바꿔야 공평하다. 복잡한 철학적 사유를 단순화해 답을 찾아간다면, 커피의 특정 성분이 신체를 건강하게 만듦으로써 정신이 맑아지고 행복해진다는 메커니즘을 들 수 있다.

카페인이 중추신경의 시냅스에 물리적으로 작용해 전기신호를 만들어 냄으로써 에너지가 넘치는 기분을 유발한다는 식이다.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설명으로 들리지만, 철학자들은 대체로 심신의 관계에서 이와는 반대쪽에서 설명을 시도한다. 커피가 정신에 먼저 영향을 줘서 신체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관점이다. 플라톤은 관념적이며 이성적인 인간의 정신을 감각적이고 가변적인 신체보다 우월한 위치에 두었다. 데카르트 역시 사유(정신)가 신체(연장)에 대해 우월하다고 봤다. 위에 있는 정신이 신체에 영향을 주는 것이지, 아래에 있는 신체가 정신을 이끌 수는 없다는 게 이들의 관점이다. 신체와 정신이 동등하다는 스피노자의 심신일원론에도 정신이 신체를 이끈다는 견해가 들어 있다. 커피의 본성을 올바르게 누리기 위해선 음용법에 수정이 필요하다. 커피를 마실 때 달다, 쓰다, 시다는 등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바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커피 향미가 나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지를 인내심을 갖고 따라가야 한다. 

한 잔에 담긴 커피는 내 몸으로 들어와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나의 관능이 되고 나의 일부가 된다. 그것은 감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쓰고 떫고 시고, 자극적인 커피는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만든다. 좋은 커피는 ‘나를 생각으로 이끌 수 있는지(to make me think)’에 달려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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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향미를 평가할 때 선입견을 갖지 말고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바를 담담하게 평가해야 한다. 커피테이스터들이 향미를 통해 커피의 품질을 가늠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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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미전문가가 커피열매의 향기를 통해 품질을 가늠하고 있다. 향을 통해 커피의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글 | 박영순
사진 | 커피비평가협회(CCA, www.ccacoffee.co.kr)
박영순 님은 21년간 신문기자로서 와인, 위스키, 사케, 차, 맥주, 커피 등 식음료를 취재하면서 향미에 몰입했습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에서 향미 관련한 자격증 30여종을 비롯해 미국요리대학(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플레이버 마스터를 취득한 뒤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과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년 <커피인문학>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