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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에세이]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온라인 카페

아파트 반상회 신 풍속도

[드로잉에세이]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온라인 카페.

“쪽파 드실 분 계신가요? 친정에서 뽑아서 다듬어온 쪽파가 너무 많네요. 세 분께 드릴 수 있습니다. 문고리 나눔합니다~”
우리 아파트 온라인 카페 ‘나눔드림&후기’란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곧장 댓글들이 달리고 개인 톡으로 집 호수를 주고받은 후 제목 앞에 ‘완료’라는 단어가 입력되면서 이번 나눔은 끝난다. 

카페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물건 나눔 글들이 올라온다. 우리집에서는 불필요해진 물건이 다른 집에서는 요긴하게 사용된다. 간간이 좋은 물건을 공동구매하자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어느 놀이터 의자 위에 안경이 놓여있다거나 어느 동 앞에 보도블록이 깨져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의 글들도 보인다.
근처 새로 오픈한 식당이며 가게들의 이용후기는 은근 기다려지는 정보다. ‘심심하신 분들을 위해’ 음악 링크가, 퇴근길 아파트 주변 교통상황도 실시간으로 등장한다. 몇 동 몇 라인인데 현재 집 안으로 담배 냄새가 많이 올라온다며 자제를 부탁한다는 글도 올라온다. 입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조용하면서 왁자한 반상회가 매일 열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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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도 나누고 정보도 공유하고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컴퓨터 관련 문의가 심심찮게 올라오곤 했다. 세대수가 많아서인지 어떤 질문이든 각 분야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것 같다. “우리 카페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네요.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어느 입주자가 올린 글처럼 어떤 문제든 해결이 된다. 진행 과정을 보는 것이 신기하고 즐겁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란 영화처럼 이 우리 동네에서는 누구라도 홍반장이 된다.
또 “제가 좋아하는 맛집인데 가는 길에 사올까요? 필요하신 분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이 집 후기가 궁금하신 분은 상호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줄 서야 먹을 수 있다는 떡을, 된장찌개를, 조개 등등을 배송비 걱정 없이 필요한 양만큼 편히 받기도 한다. 모르고 있던 유명한 맛집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렸을 적 골목에서 함께 구매하고 나누던 그 풍경이 아파트 단지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먹거리 정보뿐만이 아니다. ‘입주민 수다방’에 지난해 초등학교 입학은 했으나 코로나로 등교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엄마와 자녀가 너무 힘든 상황에 처했다며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아이 학습 지도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짜증만 늘었다는 것이다. 아이 얼굴 보는 것도,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속상하다는 글이었다. 곧이어 답글들이 올라왔다. 초등 5학년을 키우고 있는 엄마라는 이는 그 시기를 거쳐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조언이 꽤나 현실적이다. 여러 사람이 조금씩 위로의 말과 경험들을 풀어냈다. 이렇듯 이 가상의 공간은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나도 텃밭에서 야채가 한창 쑥쑥 클 때 식구들이 먹고도 남는 쌈채소를 몇 번 나누고, 교자상이 필요하다는 주민에게 구입한 지 아주 오래되었지만 몇 번 사용하지 않은 교자상을 빌려주기도 하며 소극적으로 동참한다. 하루에 한두 번은 접속해서 다른 사람의 사는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카페 오픈 1년이 넘어가며 이제는 자주 등장하는 사람의 대화 너머 그 사람의 성격이 파악되기도 한다. 예전 동네 골목 같은 왁자함은 없지만 가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이 연상되기도 하다. 가상의 공간에서 정봉이 엄마를, 선우 엄마를, 덕선이 엄마를 만난다. 놀랍도록 비슷한 캐릭터들이 있어 그들의 얼굴을 맘대로 상상하며 웃음 짓는다.  

입주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으므로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물건을 주고받으면서도 얼굴을 모른다. 닉네임이 ‘몇 동, ㅇㅇ’라 만나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지만 생활하면서 작은 불편은 감수하게 되고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가상의 공간에서 웃음 짓게 하는 이웃일 수 있기에. 

성냥 곽처럼 똑같은 창문을 가진 집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수만큼 사는 이야기가 넘친다는 게 재미있다. 여전히 익명의 사회이지만 느끼는 온도는 다르다. 적당한 익명성과 적당한 교류가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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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세대가 넘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다 보니 문제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발망치, 주차문제, 흡연, 재활용 상태에 대한 불만 등 사람 숫자만큼의 문제들이 매일매일 발생한다. 하지만 층간소음 문제가 이슈가 됐을 때는 층간소음방지매트 공동구매 논의가 활발하고 흡연에 대해서는 또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으며 해결책을 찾아간다. 여전히 불만도 많고 문제점도 많지만 그렇게 하나씩 해결하며 같이 살아간다. 해결된다기보다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맞으리라. 

퇴근길 집 근처에 도착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주거 형태가 어떻든 우리 집이니까, 우리 동네니까, 우리 이웃이니까.

그림, 글 | 조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