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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카페
[드로잉 에세이]

‘그리기’로 다시 보는 영화

“엄마, 그 소설이 그렇게 재미있어요?”
“그냥. 읽을 만 해.”
“그런데, 왜 또 읽어요?” 

응? 아, 그래서 그렇게 낯익었구나. 책을 읽는 내내 어디선가 본 장면인데… 이 소설이 영화로 나왔었나? 이 장면도 분명히 봤는데….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읽던 참이었다. 읽지도 않은 아들은 제목만 보고 기억을 하는데 정작 재미있게 읽은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은 소설책이다. 처음 접하는 책인지, 이미 읽은 책인지 모르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인문교양 서적이야 한두 번 더 본들 무슨 상관이랴. 그렇다 해도 소설을 두 번 읽는 경우는 없었는데….  

그나마 책은 좀 나은 편이다. 영화는 특히 더 심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데다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부터는 영화보기가 일상이 되었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보곤 한다. 그렇게 많이 보다보니 새로운 영화인가 싶어 도입부를 보다가 문득 깨닫곤 한다. 앗, 이 영화도 본 거네? 

흔하게 접하니 영화에 대한 간절함이 사라져버렸다. 예전엔 애타게 개봉날을 기다리기도 하고, 한적하게 보기 위해 조조 상영시간에 달려가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양한 채널로 쉽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영화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귀하게도,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곱씹을 시간도 없이 새로운 영화를 찾곤 한다. 또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소개된 영화를 실제로 봤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2018년 개봉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 보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게 해줬다. 보는 내내 음악이 온몸에 스며드는 경험을 했다. 여러 번 봤는데도 아쉬움이 남았다. 영화에 대한 여운이 사그라들지 않아 한참 포스터를 들여다보다 불쑥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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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삽입된 그룹 퀸의 노래들을 무한 반복해 들으며 포스터를 보고 따라 그렸다. 그리는 동안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동을 조금은 연장할 수 있었다. 포스터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재연한 장면이다. 그 무대에 올라가기 까지 겪은 파란만장한 일들을 알기에 그 장면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볼 때마다 울컥했다.  

그때 이후 마음에 새기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때 포스터를 그려본다. 영화 보는 시간만큼 투자해야 겨우 포스터 한 장을 그릴 수 있다. 제목을 표기하지 않으면 무엇을 그렸는지도 모를 실력이지만 포스터를 그리는 동안 그 영화에 대해 되새기며 행복에 젖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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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포스터에는 영화가 오롯이 담겨있다. 영화를 아우르는 한 컷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세계의 유수한 상들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포스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나라에서 발표한 포스터도 여러 종류이지만 해외의 포스터도 다양하다. 각 나라가 이 작품을 보는 시각과 관점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영화 <기생충>을 한 번 더 보고 포스터를 그려볼 참이다. 여러 나라에서 발표한 포스터 중 가장 끌리는 것으로 선택해서 그려봐야겠다. 나중에는 따라 그리는 포스터가 아니라 내가 느낀 대로 그려보고 싶다. 사진으로, 메모로 남기듯 드로잉으로 남겨보련다. 세상에 하나뿐인 포스터를.

글 | 조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