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오늘의 카페
[클로징 포엠]

입춘(立春)

4.시길피_입춘.jpg

 

외롭다고 죄다 내려와

서로 말벗이나 하자며

백목련 가지 위로

허연 시름을 올려놓던 눈들이

모두 제 살 집 찾아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

투둑,

가지를 흔들며 빗방울로 떨어지는 순간,

그때부터

얼었던 겨울에 금이 가는 것이다

마른 나뭇가지에 뽀오얀 새순이

마침내 촉촉한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입동 이후 차가워진 가지 끝으로,

그래서 봄은 금간 얼굴을 자꾸 보듬고 쓰다듬어

떨어지고 헤어져 있던 것들을 붙여놓는다

그 소리에 놀란 우듬지의 새들이

활짝

기지개를 켜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이다

 

제 몸을 녹여대는 소리가

아지랑이 아지랑이

겨울이 사람들 사람들 틈을 갈라

모질게 못질해놓은 곳마다 허물고 다니느라

강은 허리에 물이 차고

언덕은 퍼렇게 멍이 들어도

그러나 봄은 어디에도 상처입지 않는다

닫혀 있던 숨결들을 틔우며

배냇저고리를 깔고 다니느라

봄은 땀방울 하나 흘릴 틈도 없다 그러는 사이

세상에는 꽃이 피고

아이들이 하나 둘 걸음마를 배워나가는 것이다

세상에는

봄이 와서야

외롭다고 웅크려있던 잔설들이

빗방울 동그랗게 우주를 말아들며

꽃잎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글.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