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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현재와 과거를 잇는 외나무다리

무섬마을의 ‘오래된 미래’

[부치지 못한 편지] 무섬마을의 ‘오래된 미래’.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기억하시는지요. 이 책을 제게 건네면서 당신은 말했습니다.
“미래가 오래되었다는 표현은 참 섬뜩하면서도 시적이야. 말과 말 사이의 거리가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거리만큼이나 포에틱하잖아?” 

당신이 전해준 책을 읽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인도 북부에 위치한 라다크를 통해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또렷한 책이었죠. 라다크가 서구 문명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도 인상적이었지만 생태학적 관점에서 전통의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어 많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라다크는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입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이해가 됩니다. 한껏 호기심이 일어나 인터넷에서 라다크의 풍경을 찾아봤던 기억도 납니다. 특히 책의 제목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지요. ‘오래된 미래’는 역설적인 말이지만 강한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인류 문명이 나가야 할 미래는 결국 오래된 전통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고 작가는 일관되게 말했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지, 간결하지만 진솔한 메시지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무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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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시 떠올린 것은 12월 중순의 어느 여행지였습니다.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위치한 50여 가구가 채 되지 않는 고즈넉한 곳이지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인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합니다. 마을은 물길이 돌아나가는 안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이 마을의 삼 면을 휘돕니다. 그 물길의 흔적들이 만든 모래톱을 대들보 삼아 마을은 꽃잎이 퍼지듯 자리 잡고 있지요. 100년이 훌쩍 넘은 고택들이 조선 후기 전통 건축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합니다.  

불현듯이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마을의 중앙부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 꽤 긴 강폭을 지닌 물길이 구부러지며 휘돕니다.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강물은 찬바람을 쓸어 담으며 기지개를 켜듯 모래사장을 펼쳐놓습니다. 조선 후기부터 물길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시간을 차곡차곡 쌓으며 이 공간을 넓혀 왔겠지요. 마을의 안팎은 우리 선조들의 삶의 모습들로 꽉 차 있습니다. 한창 지붕의 이엉을 잇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오래된 우리의 생활들이 보입니다. 감을 말리는 처마에는 햇살이 마치 자기 집을 찾듯이 번지수를 확인하며 스며들고 있습니다.  

풍경은 사람을 담기도 합니다.

오래된 마을에는 나름의 질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람과 햇살에도 오래 전부터 제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산새들은 산새들대로, 고양이들은 고양이들대로 지나다니는 길이 흔적처럼 구분돼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여러 생각 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이 질서입니다. 사람들이 터를 잡은 공간을 중심으로 자연은 일정한 일상을 약속이나 한 것처럼 건네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신은 그걸 풍경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지요. 그 말에 전적으로 수긍합니다. 무섬마을의 야트막한 담장과 과하지 않는 지붕의 높이는 사람들 생각의 풍경이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유지하며 살았던 우리의 삶이 고즈넉한 집들 속에 스며있습니다. 5km 정도만 벗어나면 나타나는 영주 시내의 현대식 건물은 과거와 달라진 우리의 현재의 풍경이며 미래의 어느 한 순간이겠죠.  

외나무다리를 건너갑니다.

30cm쯤 되는 폭에 못질하나 없이 매끈한 나무의 속살을 드러내고 강물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마을의 명물입니다. 숱한 사람들이 건넜을 다리는 지나쳤던 발걸음 수만큼이나 많은 기억과 사연을 품고 있겠지요. 대략 150cm쯤 되는 높이의 다리는 강물을 직선으로 잇지 않고 타원의 바깥 테두리처럼 둥글게 휘어져 강물의 흐름을 더욱 부풀려 보이게 합니다. 강심이 깊은 곳을 피해 조금이라도 얕은 물굽이를 찾으려 했던 마을 사람들의 고심이 보입니다.  

다리에는 사람들의 배려가 이어져 있습니다.

강폭을 고려하고 범람의 높이를 따지며 나무들을 이어나갔을 겁니다. 높이와 폭은 아이가 건너가거나 아낙이 건널 때를 생각했겠지요. 그 때문인지 다리는 더 길어지고 휘어졌겠지만 그 휘어짐으로 인해 사람들의 무서움도 조금 덜 했을 겁니다. 이 다리에는 모서리가 없습니다. 다리의 모든 궤적이 둥그스름하고 모난 부분이 없습니다. 이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심성이 그러했을 테고 그들의 말씨는 덩달아 둥글어졌을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이어주었을 겁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다리의 끝에 도착합니다.  

100여 걸음.

그 걸음걸이 숫자만큼 다리는 옛날과 현대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100여 걸음 밖에는 현대화된 삶의 양식이 있고, 100여 걸음으로 다리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우리의 옛 삶의 양식이 화석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와 보는 무섬마을은 100년 전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삶이 어떻게 바뀌어갈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제게 무섬마을은 오래된 미래입니다.

다리는 하나이면서 여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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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외나무다리는 그 길이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물이 불어나면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1980년대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마을 입구의 수도교가 생기기 이전까지 이 다리는 마을이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합니다. 시집올 때 꽃가마 타고 이 외나무다리를 들어선 한 여인은 상여에 몸을 싣고서야 이 마을에서 나갔겠지요. 마을에서 삶을 보낸 그 여인의 평생은 다리에서 시작해 다리에서 끝났을 겁니다. 어쩌면 혼인이라는 하나의 인연을 붙들고 온 여인은 이 마을에 참 많은 사연을 남겨두고 세월의 강을 건넜을지도 모릅니다. 물길이 한 곳에서 시작해 수많은 지류를 만들며 세상으로 펴져갔듯이 말이죠.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인 삶의 발자국들. 시간을 거슬러가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다리를 다시 건넙니다.  

공간을 잇는 다리는 시간을 이어주기도 합니다.

이번 여행길에서 제가 본 건 공간이 품고 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몇 백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을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모두 지켜보았을 겁니다.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고향에 대한 애착심은 단순히 오래 살았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지요. 중심지와 떨어져 고립되어 보이는 마을은 몇 가지 특색으로 역사라는 시간과 이어져 있더군요. 유교적 전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데올로기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역력한 마을이었습니다.
이 마을이라고 해서 전쟁의 상처를 비껴갈 수는 없었지요. 좌우익의 대립이 있었지만 주민들의 사상적 선택에는 서로가 존중하는 분위기였다고 하네요. 그 살벌했던 전쟁의 순간에도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외부에서 들어온 사상의 혼란은 내면적으로 더 강렬한 전통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 편의 시가 되는 풍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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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가 이곳이었던 조지훈 시인은 무섬마을을 배경으로 시를 남겼습니다. 임과 이별한 여인의 애틋함과 그리움이 시에 담겨있습니다. 시의 제목이 이별이 아니고 별리라고 붙인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모두 같은 의미의 단어입니다만 느낌은 분명 다릅니다. 무섬마을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마을 안에서 보는 다리와 마을을 건너서 바라본 다리의 의미가 달라 보이듯이 이곳은 현재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이곳에 와본다면 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보시길 바랍니다. 앞과 뒤, 과거와 미래, 닫힘과 열림이라는 경계를 경험하실 것입니다.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
나즉히 흰 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 당홍 치마 자락에

말없는 슬픔이 쌓여 오느니 ―.  

십 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에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메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連峰)을 바라보나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
자주 고름에 소리 없이 맺히는 이슬 방울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鴛鴦枕)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고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가지
꺾어서 채찍 삼고 가옵신 임아 …….

_ 조지훈, <별리(別離)>

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