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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여행] 모네의 정원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

나는 모네에 미쳤다. 나의 화가, 나의 그림, 모네의 ‘수련 연작.’

푸르른 정원, 흐르는 풀잎들, 하늘빛 호수와 그 위에서 춤추는 파스텔 빛 연 꽃들, 캔버스를 가득 채운 싱그러움과 따뜻함, 그리고 사랑, 사랑…. 나에게 모네의 ‘수련’은 설렘과 사랑이다.

인상주의 대표화가이자 풍경화가인 모네는 마지막 생애를 지베르니(Giverny)에서 가족과 함께 보냈다. 모네의 수련은 ‘지베르니’ 정원에서 탄생한 걸작이다. 파리에서 기차로 42분 떨어진 한적한 시골마을. 역에서 내려 꼬마기차를 타고 10분 남짓 가다 보면 드넓은 지평선을 따라 노오란 유채꽃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5월의 봄, 내가 생각하는 모네의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들이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피어나는 곳. 그곳이 그리워 모네의 정원을 10년 만에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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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수련>


교환학생시절 유럽에 머물면서 모네에 미쳐, 졸업하고 큐레이터가 되겠다고 설친 적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게 만든 곳이 바로 이 모네의 정원이었다.
처음 모네의 정원에 들어섰을 때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쩜, 이렇게 그림 같은 정원이 있을까.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모네의 그림 속 정원이, 그 파스텔톤 꽃들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노랗고 빨갛고 파랗고, 어쩜 이런 파스텔 꽃이 진짜 있었다니. 백내장으로 색을 구분할 수 없는 순간까지 이 정원에서 꽃과 나무와 호수를 그린 모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이렇게 예쁘니 내 손에, 눈에, 캔버스에 남기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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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번에는 그런 모네의 마음에 따라가 보기로 했다. 일본식 다리가 보이는 호숫가에 앉아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의 번짐 효과를 내기 위해 일부러 펜 대신 연필을 들었다. 파스텔 꽃빛을 표현하진 못했지만 흐르는 버드나무와 춤추는 연잎들은 내 눈에, 손에 담아 올 수 있었다.

호숫가를 돌던 미국인 노부부가 나의 그림을 보고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갔다. 아름다운 곳을 보면 좋아하는 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에게 ‘모네의 정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었다. 동화 속, 그림 같은 이곳에 오면 사랑도, 행복도 깊어질 것만 같다.

다음에 파리를 오게 되면, 여전히 베르사유 궁전도, 샹젤리제 거리도 가지 않고 나는 또 지베르니행 기차를 탈 것이다. 세 번째 모네의 정원은 꼭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길 빌어 본다.

그림/글 | 배은정
배은정 님은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입니다. 사진보다 그림으로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