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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친구하기] 배롱나무

한여름 100일간 꽃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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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세를

단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백 일 동안이나

꽃등을 밝혀둘 수 있다니


저 붉은 燈 아래서

나도

사랑하는 여자와

찰싹 들러붙어

석 달 열흘만

피어 있고 싶다

_ 정충화, <배롱나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꽃이 제아무리 붉어야 열흘을 넘기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무색하게도 한여름 된더위 속에서 무려 백일 동안이나 붉은 꽃이 피는 나무가 있다.

낱 꽃들이 피고 지며 꽃차례에는 계속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백 일 동안이나/꽃등을 밝혀둘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와/찰싹 들러붙어/석 달 열흘만/피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여름 내내 곳곳의 공원과 길가마다 “석 달 열흘”간 붉은 “꽃등”이 휘황하게 내걸릴 것이다.

 

배롱나무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부처꽃’과의 ‘잎 지는 넓은 잎 중간 키’나무다. 적갈색 줄기가 비늘처럼 껍질이 벗겨져 매끄러우며 잔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잎은 두 장씩 어긋나게 달리며 표면에 윤이 난다. 7∼9월 가지 끝 원추꽃차례에 뽀글뽀글한 모양의 자잘한 꽃이 다닥다닥 핀다. 꽃빛은 붉거나 홍자색이며 흰 꽃이 피기도 한다. 추위에 다소 약하나 공원이나 도로변 조경수로도 많이 심는다.

목백일홍(木百日紅)이라고도 부르며 나무껍질을 긁으면 간지럼을 탄다 하여 일부 지역에서는 ‘간지럼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말린 꽃을 ‘자미화’라 부르며 약용한다.

글·사진 | 정충화
정충화 님은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식물해설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눈에 척척 식물, 나무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2008년 계간 《작가들》 신인 추천으로 등단해 시집 《누군가의 배후》(2013), 《봄 봐라, 봄》(2020), 시화집 《환몽(공저)》, 산문집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2019)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