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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여행] 나의 코펜하겐

행복했던 1년, 뉘하운(Nyhavn)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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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1년간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다. 인생에 다시없을 행복한 시간이었다. 입시를 위해 밤잠 설쳤던 10대가 끝나자, 다시 학점관리를 위한 20대의 전쟁이 이어졌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하루도 쉴 틈이 없이 살았다. 교환학생은 한 번도 게으름 부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던 나에게 주는 휴가 같은 거였다. 매일 늦게까지 늦잠을 잤고 1년 내내 친구들과 유럽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덴마크는 저녁 5시가 되면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그래서 장을 보려면 그 전에 빨리 봐 놔야 한다. 덴마크 사람들은 모두 일찍 퇴근해 집에 가서 가족들과 저녁을 보낸다. 인건비에 대한 세금이 많이 붙기 때문에 외식비용이 꽤 많이 들기 때문이다. 외국인인 우리가 아르바이트를 해도 급여의 36%를 세금으로 가져간다. 그래서 학교를 갈 때도 대부분 샌드위치 같은 도시락을 챙겨갔다. 나는 매일 간장 참기름 김밥을 싸서 다녔고 대부분 외국인 친구들에게 뺏겨서 거의 먹지를 못했다. 그때 생각했다. 덴마크에서 김밥장사를 해야겠다고!

덴마크는 자전거의 나라이다. 차보다 자전거 개수가 더 많고 당연히 자동차 사고보다 자전거 사고가 더 많다. 차도는 하나지만 자전거 도로는 2차선으로 추월선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내겐 덴마크를 떠올릴 때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 2차선을 연인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가며 한 손으로는 핸들을, 한 손으로 애인의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 달리는 모습이다. 마치 엽서의 한 장면 같은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그런 그들을 따라 우리도 자전거를 타고 덴마크 이곳저곳을 달리곤 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여기 뉘하운(Nyhavn)이다.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깔의 낮은 건물이 마주보고 있는 작은 항구. 뉘하운은 과거의 덴마크를 만날 수 있는 낭만적인 곳이다. 옛 모습 그대로 건물의 외관을 유지하고 150년이 넘는 배들을 정박해 항구를 따라 카페테리아를 만들었다. 뉘하운 카페에 앉아 오랜 시간 동안 덴마크 사람처럼 여유를 느끼고 있으면 오랫동안 이 도시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인어공주를 지은 안데르센도 이 아름다운 작은 항구가 좋아 항구의 작은 집에 살았을 것이다. 이런 동화 같은 풍경을 매일 보면서 그는 <인어공주>, <성냥팔이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미운 오리새끼>, <눈의 여왕> 같은 동화를 지었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상상해 보았다. 이곳에 앉아서 스스로를 미운 오리새끼 같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써 내려 간 안데르센을 떠올려보았다. 만약, 지금 안데르센이 살아 있다면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  

낮에는 알록알록 예쁜 옷을 입은 소녀 같은 뉘하운은 해가 지면 아름다운 여인처럼 변했다. 노을이 하늘과 바다를 붉게 태우다 새까맣게 꺼지면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작별 인사하는 것 같았다. 내달려왔던 거리만큼 다시 돌아가야 할 길이 멀지만 뉘하운은 그만큼 코펜하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도 그 때의 따스한 햇살과 볼을 쓰다듬던 시원한 바람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매일 코펜하겐이 그립다. 20살 대학생이었던 그 시절이, 공부도 취업도 잠깐 잊고 지냈던 그 시간이, 나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친구들이,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모든 시간과 공간들이. 나는, 매일매일 나의 코펜하겐이 그립고 또 그립다.

 

그림/글. 배은정
배은정 님은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입니다. 사진보다 그림으로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