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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여행] 밀라노 대성당

‘여왕의 왕관’이 주는 마음의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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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대리석, 무수한 조각상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외벽, 화려하면서도 순수해 보이는 건물 외관, 차가운 돌기둥과 뾰족한 철탑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따뜻하고 단순한 디자인, 처녀성(virgin)을 지니고 있지만 누구보다 성숙하고 강인할 것 같은 이미지.’
 

밀라노 두오모(Duomo di Milano) 성당을 설명하는 데는 이런 모순된 언어의 사용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을 또 다른 말로 정의하자면 ‘여왕의 왕관’ 같다고나 할까. 건물 앞에 서자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그 와중에 기품과 전통을 품고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왕의 왕관이 떠올랐다.

이 왕관에 어울리는 여왕은 길고 검은 생머리에 새하얀 얼굴, 꽃을 좋아하며 펜싱을 즐길 줄 아는, 칼과 꽃이 모두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여왕은 또한 결혼을 하지 않고 왕위에 올랐으며 호기심이 많고 예술을 좋아할 것이다. 늘 군중들이 우러러보는 화려한 삶으로 비춰지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외로움과 두려움도 있을 것 같다.

밀라노 두오모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Basilica di San Pietro) 대성당과 스페인의 세비야(Seville Cathedral) 대성당 다음으로 큰 가톨릭 대성당으로 그 크기가 축구장의 1.5배 넓이나 된다. 다섯 개의 출입구가 입구에서 제단까지 이어지고 실내는 4만 명이 들어갈 수 있으며 전 세계 성당 중 가장 많은 3,159개의 조각상이 벽에 있고, 이 중 2,245개가 건물 외벽에 있다. 그 조각상들이 빛을 받아 건물은 온통 화려한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신께 더 가까이 닿기 위해 만든 것이 성당의 존재 이유라지만, 이건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성당의 첨탑을 오르며 마치 고귀한 성처럼 지어 놓은 두오모가 아름다운 궁전처럼 느껴졌다. 밀라노 두오모는 600년 동안 많은 건축사와 설계사의 다양한 건축 양식이 섞여서 완성되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두오모를 짓고 완성했던지 간에 그저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성당의 내부는 어마어마한 스테인리스 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모노톤의 절제된 외벽과 달리 내부는 원색의 무늬로 뒤덮인 넓은 창들로 빛이 통과하며 화려한 색상을 뽐냈다. 빛과 색으로도 사람을 이렇게 압도할 수 있다니! 성당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두오모의 강인함이 느껴졌다. 나폴레옹이 밀라노를 프랑스령으로 점령하고 이곳 두오모에서 철의 대관식을 올리면서 얼마나 뿌듯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조용히 성당 의자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일상에 대한 상념으로 들끓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문득 잊고 듣던 노래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You’re in the arms of the angel. May you find some comfort here(당신은 천사의 품 안에 있어요. 그 안에서 안식을 찾기를). _ Sarah Mclachlan, <Angel>

밀라노 두오모는 내 슬픔도, 잘못도, 걱정도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잘할 수 있다고, 행복할 수 있다고, 그리고 용기를 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늦은 오후, 창문을 통과한 따뜻하고 찬란한 빛이 나에게 이제 그만 울어도 된다고 그렇게 토닥여주었다.

그림/글. 배은정
배은정 님은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입니다. 사진보다 그림으로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