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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이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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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0.09 | Vol.10
월간 카페人  /  제5호  /  모두의 테라스
모두의 테라스
[커피시네마] 영화 <콜롬비아나(Colombiana)>

폭력의 현대사, 그러나 커피는 ‘마일드’ 했다

“킬러가 되고 싶어요.”
아홉 살 소녀는 앞으로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 삼촌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소녀는 얼마 전 자신의 눈앞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한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제 냉혹하게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 시카고 뒷골목의 고리대금업자인 삼촌의 얼굴에 일순 짙은 당혹감이 스쳐가지만 부모를 잃고 콜롬비아에서 혈혈단신 자신을 찾아온 조카의 슬픈 눈망울을 외면할 수 없는 그는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영화 <콜롬비아나(Colombiana)>는 갱단에 의해 부모를 잃은 소녀가 킬러가 되어 15년 후 원수들에게 차례차례 피의 복수를 감행하는 과정을 그린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영화이다. 어린 소녀가 킬러가 되어 가족을 죽인 살인자들을 응징한다는 점에서 <니키타(Nikita, 1990)>나 <레옹(Leon, 1994)> 같은 여성킬러 영화의 기시감이 짙게 느껴지는 <콜롬비아나>는 실제로 이 두 영화를 통해 여배우 원톱 액션영화의 전형을 만들어냈던 뤽 베송이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다.

킬러가 되어 복수에 나선 콜롬비아 소녀

뤽 베송의 ‘소녀킬러 완결편’으로도 불리는 <콜롬비아나>는 사실 이십여 년 동안 꾸준히 속편 제작이 거론되어 온 작품이다. ‘레옹’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직후부터 뤽 베송은 만약 여주인공 마틸다가 그 당시 복수에 성공하지 못한 채 성인으로 자랐다면, 이란 가정 하에 꾸준히 속편 제작을 타진해 왔다. 하지만 웬일인지 영화 제작 소식은 언제나 해를 넘겨 이 미완의 프로젝트 역시 팬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히고 있던 참이다.

콜롬비아 토종꽃인 ‘카탈리아’는 소녀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제작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은 2008년 <테이큰(Taken)>을 통해 천재성을 입증한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마크 케이먼이 가세하면서부터다. 여기에 <트랜스포터3. 라스트미션(Transporteur3)>으로 액션 연출에 탁월한 감각을 입증한 올리비에 메가톤이 감독으로 합류하면서 <콜롬비아나>는 드디어 할리우드 영화계의 드림팀이 모두 참여하는 초대형 액션 프로젝트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이 세 명의 드림팀이 완성한 <콜롬비아나>는 킬링타임용 오락영화의 미덕을 고루 갖춘 액션 블록버스터로 손색이 없다. 야마카시를 이용한 건물 추격전, 좁은 욕실에서 벌어지는 맨손 격투 등 이 영화는 관객의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키는 화려한 볼거리로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특히 경찰서 안에 수감된 표적을 암살하기 위해 환기구를 통해 접근하는 시퀀스에서 보여준 카탈리아의 절제된 액션은 안젤리나 졸리나 밀라 요보비치 등 기존 액션영화의 여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여주인공 카탈리아 역을 맡은 조 샐다나(Zoe Saldana)는 영화 속에서 불행한 가족사를 가슴에 묻고 사는 냉혹한 킬러로 등장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강인함과 섹시미를 한껏 뽐낸다. <아바타(Avata, 2009)>에서 외계행성 토착민인 네이티리로 열연하기도 했던 그녀는 사실상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혼자 이끌어 가는 중심인물이다. 킬러가 되기를 바라는 9살 소녀가 아무래도 비현실적이라면 극의 긴장감과 현실감을 불어넣는 건 촬영 6개월 전부터 수영과 사격 훈련으로 여전사의 몸을 만든 그녀의 공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네이티리’로 열연했던 여주인공 조 샐다나.

콜롬비아의 불안한 정국, 치안 공백

일부 평론가들의 지적처럼 ‘영화를 보고나면 주인공 카탈리아의 몸매만 기억에 남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헐리우드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여주인공의 섹시함이 강조되지 않는 블록버스터는 사실상 존재하기 힘들다. 오히려 관객들은 적의 소굴로 침입하는 카탈리아의 가녀린 실루엣에서 자꾸만 영화 초반에 벌어진 소녀의 불행한 가족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제작자들은 장차 냉혹한 킬러가 될 어린 소녀의 국적을 왜 하필 중남미의 콜롬비아로 설정했을까. 그것은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처럼 콜롬비아 역시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안한 치안 상황 등으로 카탈리아의 가족들이 맞닥뜨린 어이없는 불행을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은 한낮의 도심에서 벌어지는 총격전과 마약 밀거래 현장,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갱단의 모습과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불안한 눈동자를 쉴사이 없이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도시의 산비탈까지 빼곡히 들어서 있는 낡은 가옥들과 거리에 나뒹구는 시신들은 극의 배경인 1992년 현재 콜롬비아의 불안한 치안과 이곳 사람들의 암울한 현실을 간명하게 드러낸다. 가족을 위해 갱단의 일원으로 살아온 카탈리아의 아버지가 단지 조직을 떠나려 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이유도 그곳이 바로 콜롬비아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에 짧게 등장하는 이 공간적 배경은 사실 하나의 ‘맥거핀(MacGuffin ; 줄거리에는 사실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은연중 어떤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거나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영화기법)’에 불과하다. 관객들은 갱단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되는 그 현장이 콜롬비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별다른 저항감 없이 영화의 스토리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들 대다수는 콜롬비아라는 이름에서 90년대 후반까지도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충돌로 오랜 치안 공백을 경험한 이 나라의 불행한 현대사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복수의 현장에 자신의 이름이기도 한 ‘카탈리아꽃’의 흔적을 남기며 살인자들을 유인하는 여자킬러 영화에 강인하고 화끈한 성격의 콜롬비아 여자들을 지칭하는 ‘<콜롬비아나>’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분명해진다.

‘콜롬비아나’는 강인한 콜롬비아 여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산비탈 일궈 커피농사 짓는 강인한 사람들

콜롬비아 여성들이 오늘날 그처럼 억센 기질을 갖게 된 것은 불행했던 그들의 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G.G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도 언급되는 것처럼 폭력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현대사는 지금도 이곳 사람들의 현실을 옥죄는 멍에로 남아 있다.
콜롬비아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도 정부군과 좌익반군, 우익 준군사조직 등이 오랫동안 무장 투쟁을 벌였고 특히 1990년대 들어서는 코카인 거래를 둘러싸고 갱단의 횡포가 극에 달해 세계최고의 살인율을 기록했던 우범국가다. 2000년대 들어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은 많은 준군사조직이 해산되었지만 콜롬비아 국민들, 특히 여자들에게 이곳은 여전히 육아와 경제활동에 그리 녹록한 환경이 아니다.

남한 면적의 11배가 넘는 콜롬비아는 농작물의 재배에 적합한 경작지는 채 5%를 넘지 않는다. 남위 4°~북위 13° 사이에 걸쳐 있는 국토의 많은 지역이 안데스의 높은 산악지대나 습지, 영구목초지로 이뤄져 주민들은 주로 서늘한 고원지대에 거주하며 이곳에서 커피와 옥수수 등의 농작물을 경작한다. 이 가운데서도 커피는 콜롬비아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작물로 첫손에 꼽힌다.

마일드(mild) 커피의 대명사로 불리는 콜롬비아는 현재 전세계 커피 생산량의 10%를 차지하는 주요 생산국이다. 커피나무에 전염병이 생길 것을 우려해 콜롬비아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에 대해 소독을 실시할 만큼 국가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커피산업은 현재 민간조직인 ‘국가커피조합(NFC)’의 주도로 국가 차원의 품질개량, 마케팅이 이뤄지는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커피재배 농가들은 수확한 커피를 NFC나 개인 수출업자 중 택일하여 판매할 수 있는데 NFC가 주로 유럽으로 수출하는데 비해 개인 수출업자들은 ‘레인떼그로 카페테로(reintegro cafetero)’란 커피보존세를 지불한 뒤 주로 미국 수출을 선호한다. 콜롬비아는 특히 남미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에 접해 있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수송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전세계 애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커피 산지

콜롬비아 내륙은 세 개의 커다란 산맥이 지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안데스산맥 줄기의 가파른 고원지대에서 양질의 커피가 자란다. 같은 지역이라 해도 고도에 따라 수확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거의 일년 내내 커피를 수확하는 것도 콜롬비아 커피산업의 특징이다.

콜롬비아 커피의 주요 산지는 중부와 동부 코르딜레라스 지역에 넓게 분포해 있으며 중부의 메델린(Medellin), 아르메니아(Armenia), 마니잘레스(Manizales)가 특히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3대 커피농장으로 불린다. 커피 딜러들 사이에서는 이들 세 농장의 앞글자를 딴 ‘MAM’이란 말이 수출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최상급의 커피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일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콜롬비아 원두는 재배지에 따라 조금씩 맛의 차이가 있다. ‘메델린 커피’가, 진하고 풍부한 향은 물론 부드러운 신맛이 가미되어 전체적으로 감칠맛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데 비해 ‘아르메니아 커피는’ 메텔린 커피와 흡사하지만 신맛이 약간 덜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유명 산지인 중북부의 ‘부카라망가(Bucaramanga) 커피’는 메델린보다 향이 강하고 신맛은 적은 반면 약간의 쓴맛이 특징이다.

수도인 보고타(Bogota) 인근에서 생산된 커피는 강한 신맛과 풍부한 향이 자랑이지만 메델린이나 아르메니아 커피에 비해 전체적인 감칠맛은 덜한 편이다. 콜롬비아 커피가 유명한 것은 이처럼 평균 이상의 진한 향과 부드러운 맛 덕분이다. 그래서 커피애호가들의 수집 품목에는 거의 예외없이 습식가공한 콜롬비아산 아라비카 원두가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콜롬비아 원두는 흔히 크기에 따라 수프리모(Supremo)와 엑셀소(Excelso) 두 가지로 구분하며 원두의 크기가 균일한 수프리모는 다른 커피와 블렌딩하지 않고 그 자체를 즐기는 스트레이트용 커피로 인기가 높다. 이에 비해 콜롬비아 커피의 등급 표준인 엑셀소는 상대적으로 원두의 크기가 작지만 수프리모보다 부드럽고 산도가 높아 역시 커피애호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글 | 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