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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시네마] 영화 <미션>

커피나무로 뒤덮인 슬픈 인디오의 땅, 브라질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Pedro Alvares Cabral) 동상
1500년 3월 유럽인으로 브라질에 첫발을 디딘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Pedro Alvares Cabral) 동상

포르투갈어 사용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는 의외로 포르투갈이 아니라 남아메리카의 브라질이다. 남한 면적의 85배, 남미 대륙의 50%에 이르는 850만㎡의 광활한 영토를 가진 브라질은 포르투갈에 비해 스무배나 많은 2억 명의 인구가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북위 5°에서 남위 24° 사이에 걸쳐있는 브라질 영토는 단순히 넓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해발 250m 미만의 저지대인 북부 아마존강 유역과 1,000∼2,700m의 산악지대인 남부 브라질고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야와 얕은 구릉으로 이뤄져 농작물의 생육에 알맞는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이런 남미의 대국 브라질이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된 것은 이곳이 포르투갈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고 이후 300여 년에 걸친 식민지 기간 동안 모국으로부터 적지 않은 내지인들이 이주해 온 까닭이다.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이끈 광대한 식민지, 브라질

1492년 스페인 탐험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하는 인도항로를 개척한 후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뺏길 위기에 놓인 포르투갈 국왕 주앙 2세는 1500년 3월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Pedro Alvares Cabral)에게 희망봉 뱃길을 이용한 인도와의 교역을 명령한다. 이때 카브랄 선단의 길잡이로 나선 이가 이븐 마디즈(Ibn Majid)라는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뱃사람이다.

그는 3년 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나가는 항로를 개척할 때 도움을 준 수로(水路) 안내인으로 카브랄에게도 당시로는 획기적인 항법을 제안한다. 즉 무풍지대인 시에라리온 앞바다를 일직선으로 남하하는 대신 대서양 중앙인 서남쪽을 향해 반원을 그리며 돌아갈 것을 주문한 것이다. 아프리카 서안 출신의 뱃사람인 마디즈는 적도를 지나면 남동쪽으로 부는 대서양의 무역풍을 타고 일정보다 앞서 희망봉에 도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단이 대서양 한가운데로 나오자 생각보다 빠르게 흐르는 적도해류에 밀려 그해 4월, 일행은 지금껏 보지 못한 미지의 땅에 도착한다. 카브랄은 이곳이 바다 한가운데 솟아있는 섬이라고 생각해 ‘성스런 십자가의 땅’이란 뜻의 베라크루즈(Vera Cruz)란 이름을 붙여 본국에 보고한 뒤 뱃길을 재촉했다. 몇 년 뒤 이곳이 신대륙이라는 것이 확인된 후 포르투갈은 1494년 스페인과 체결해 두었던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라 경도 46° 동쪽에 속한 이 비옥한 땅의 소유권을 인정받게 된다.

1530년 이후 본격적으로 이주를 시작한 포르투갈인들은 이곳에 유럽에서 염색제로 사용하는 파우 브라질(Pau Brasil) 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는 뜻에서 ‘브라질’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주민들은 당시 유럽에서 수요가 많은 사탕수수 재배와 파오 브라질 수출로 부를 축적해 나갔고, 개간지가 늘어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아프리카 서안에서 많은 수의 흑인노예를 데려와 강제 노역을 시켰다. 이런 수난은 발견 당시 약 300만 명에 이르던 인디오 토착민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그때껏 부족, 씨족 단위의 원시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던 인디오를 마구잡이로 포획해 사탕수수농장의 일꾼으로 부렸다. 정복민들에게 인디오는 사냥에서 생포한 짐승이나 마찬가지였으며, 로마 교황청조차 인디오를 ‘사람의 형상을 닮았지만 영혼은 없는 동물’로 간주했기 때문에 이런 노예사냥은 ‘선교’라는 미명하에 남아메리카 도처에서 자행되었다.

영화 <미션> 포스터
영화 <미션> 포스터

과라니족 대학살, 브라질 이주 역사의 이면

1750년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세 나라의 접경지역인 ‘산 미겔 수도원’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이뤄진 식민지 영토의 맞교환 결정으로 우루과이강 동부에서 예수회(Jesuit) 신부들의 보호 아래 농업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과라니족이 이 땅의 새주인이 된 포르투갈의 침략에 맞서다 무참하게 학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1984년 <킬링 필드>로 아카데미작품상을 수상한 롤랑 조페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인 <미션, The Mission>은 식민지 개척기의 치부인 이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시대극으로 1986년 칸영화제(Cannes Film Festival) 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전세계 영화팬들의 가슴에 큰 감동과 울림을 남긴 이 영화의 진면목은 단순히 순교자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는 종교영화를 넘어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는 데 있다. 사제들은 정의롭지 않은 교황청의 결정 앞에서 순간 순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할 뿐 아니라 신을 대리하는 국가와 법에 맞서 인디오 편에 서기도 한다.

끝까지 비폭력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나 과라니족의 생존을 위해 칼을 들고 싸움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는 노예사냥꾼 출신 로드리고(로버트 드니로) 신부나 그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사명’은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두 사제는 결국 각자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한다. 전투에 나서는 자신에게 신의 축복을 내려달라는 로드리고의 부탁에 단호히 고개를 젓던 가브리엘 신부의 다음과 같은 대사는 종교의 본질에 대해 고뇌하는 구도자의 딜레마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아니오. 만약 그대의 선택이 옳다면 하나님이 축복해주실 것이오. 그대가 틀렸다면 나의 축복은 소용이 없을 것이오. 그러니 나는 당신을 축복해줄 수 없소. 무력까지도 옳은 것이라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오.”

포르투갈 군인들의 살육이 이어지는 영화 종반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두 신부의 모습 위로 총포 소리에 섞여 나지막히 울려퍼지던 엔리오 모리꼬네의 ‘Gavriel's Oboe’는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테마음악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1998년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해 많은 사랑을 받은 이 O.S.T는 원래 단촐한 오보에 연주곡이었지만 3년 동안 줄기차게 엔리오 모리꼬네를 설득한 끝에 세기의 성악곡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커피나무 재배와 함께 시작된 브라질의 영광

<미션>의 공간적 배경인 우루과이강과 파라나강의 사이의 ‘산 미겔 보호구역’은 현재 브라질의 커피 산지로 유명한 파라나 인접지역이다.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이 시기는 과라니족 학살이 일어나기 직전인 1727년 브라질에 들어온 커피묘목이 북부에서 시험 재배되고 있던 무렵이었다. 기아나의 프랑스 총독 부인이 정부인 브라질 장교 팔레타를 위해 꽃다발 속에 감춰 밀반출한 커피나무는 시험재배를 거쳐 단기간에 브라질 전체로 퍼져나갔고 1765년에는 처음으로 브라질산 커피가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수출될 만큼 중요한 작물로 자리잡는다. 유럽의 커피 수요가 급속도로 늘어나자 18세기 말부터 농장주들 사이에서는 사탕수수를 갈아엎고 그곳에 대규모 커피농장인 ‘파젠다(Fazenda)'를 일구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브라질 커피 산지 지도
브라질 커피 산지 지도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1822년 이후에도 커피 수출은 여전히 브라질의 국가 재정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된 뒤에도 흑인, 인디오 노예들이 커피농원 일꾼으로 눌러앉은 덕분에 19∼20세기 초까지 브라질은 전세계 커피생산량의 40%∼50%를 점유하며 안정적으로 신생독립국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커피가 이처럼 단기간에 브라질의 주요 생산물로 자리잡을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보다 천혜의 자연조건과 넓은 재배지 덕분이다. 커피나무는 열대성 기후에 강수량이 풍부한 해발 1,000∼3,000m의 고지대에서 잘 자라고 북위 25°∼남위 25° 사이의 커피벨트 중에서도 남북위 23° 27′가 최적지로 꼽힌다. 남북으로 넓고 길게 뻗은 브라질은 이런 점에서 커피재배에 최고의 자연조건을 갖춘 셈이다.

또한 커피재배는 노동집약형 산업이기 때문에 많은 일꾼을 보유한 브라질 농장주들에게 비교우위의 농작물이었다. 대신 브라질 커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지대에서 재배되고, 커피재배에 이상적인 화산암 토양이 아니기 때문에 단종 보다는 에스프레소 베이스 블렌딩 시 풍성한 크레마와 바디감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중급 커피로 평가절하된 것도 사실이다.

20세기 초까지 호황을 누리던 브라질의 커피산업은 1929년 세계경제공황의 여파로 원두가격이 급락하면서 국가적인 위기를 맞게 된다. 수요와 공급이 좌우하는 시장경제에서 무계획적인 증산의 한계를 절감한 브라질은 유명무실한 브라질커피협회(IBC)를 해산하고 이때부터 커피 농가별로 본격적인 품질 및 시설개선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1991년에는 국가 차원에서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 산업의 육성을 위해 브라질스페셜티커피협회(BSCA, Brazil Specialty Coffee Association)를 신설하였고, ‘컵 오브 엑셀런스(The Cup of Excellence)’ 대회를 창설, 주도해오면서 브라질 커피에 대한 시장의 인식도 점차 개선되고 있는 중이다. 노동집약형 산업인 커피재배는 브라질의 풍부한 노동력과 넓은 재배지가 뒷받침되면서 21세기 들어서도 매년 최다 생산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브라질 커피 산지 지도

세계1위 커피 수출국, 세계2위 커피 소비국

초창기 북부에서 시작된 브라질 커피의 주요 산지는 현재 주로 국토 동남부에 분포되어 있으며 비교적 낮은 고도에도 많은 커피 농장들이 산재해 있다. 이 중에서도 전체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미나스 제라이스(Minas Gerais))와 상파울루(San Paulo), 에스피리투 산토(Espirito Santo), 파라나(Parana), 세라도(Cerrado), 바히아(Bahia) 등이 대표적인 산지이며, 볼리비아 접경인 중서부 론도니아(Rondonia)에서도 많은 양의 커피가 생산된다. 무엇보다도 생산지의 기후 조건과 토양에 따라 다양한 품종, 품질의 커피가 생산되는 것과 열매를 따지 않고 나뭇가지채로 햇볕에 말렸다가 건조된 열매의 외피를 벗겨내는 자연건조방식이 선호되는 것도 브라질 커피의 특징이다.

재배 품종도 아라비카 뿐만 아니라 버본(Bourbon), 티피카(Typica), 카투라(Caturra), 카투아이(Catuai) 등의 아라비카 변종 및 교배종, 코닐론(Conilon)이라 부르는 로부스타 등으로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옐로우 버본(Yellow Bourbon), 버본 산토스(Bourbon Santos), 몬테알레그레(Montralegre), 카페 리오테(Cafe Riote) 등은 전세계 커피애호가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스페셜티 커피들이다.
하루 평균 7잔 이상의 카페징요(Cafezinho)를 마실 만큼 커피를 즐기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커피나무는 후손들이 남긴 축복의 유산이다.

한 브라질 커피농장에서 기계로 커피를 수확하고 있다.
한 브라질 커피농장에서 기계로 커피를 수확하고 있다.
카페징요를 마실 때 사용되는 데미타세 잔
카페징요를 마실 때 사용되는 데미타세 잔
 

※ 카페징요 : 냄비에 물과 설탕을 넣어 중간불에 끓이다가 잘게 분쇄한 커피가루를 넣고 고운 천이나 여과지에 걸러 에스프레소용 작은 잔(데미타세, Demitasse)에 따라 마시는 브라질의 전통적인 커피 메뉴. 설탕과 커피를 넣어 같이 끓이는 것은 아라비아식 시음 방식과 같지만 곱게 분쇄한 커피가루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유럽의 에스프레소와 비슷하다.

글 | 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