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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시네마] ‘발리우드’ 영화에 취하다, <굿모닝 맨하탄>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깨닫는 소통의 의미

지구상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나라는 어디일까. 이 질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미국’이라고 대답한다면 영화광이라 불리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점을 스스로 자인하는 셈이다. 헐리우드(Hollywood)라는 훌륭한 영화제작시스템을 갖춘 나라지만 제작 편수만 놓고 보면 미국은 고작 세계 3위에 그칠 뿐이다. 할리우드를 비롯해 미국에서 제작되는 영화는 연간 약 600여 편으로 우리나라의 연간 제작편수인 50~100편에 비해 대여섯 배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드는 곳은 놀랍게도 서아프리카의 빈국 나이지리아다.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이자 옛 수도인 라고스(Lagos)는 지금도 해마다 약 2,00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되는 명실상부한 영화산업의 메카이다. 나이지리아가 라고스의 영화산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해 약 2억 5천만 달러에 이르며, 라고스산 영화를 뜻하는 ‘놀리우드(Nollywood)’는 이제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이지리아 영화 전체를 통칭하는 보통명사로 쓰일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 대신 저비용 단기제작시스템으로 만드는 놀리우드 영화는 작품의 퀄리티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영화가 값싼 비디오카메라로 촬영되며, 편당 제작비 1만 달러 이하의 조악한 작품이라 영화 한 편이 출시되기까지 평균 열흘이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단시간에 제작된 영화는 극장이 아닌 홈비디오나 DVD로 출시되어 노점상을 통해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진정한 ‘시네마 천국’, 인도영화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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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극장용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세계 제일의 영화제작국은 어디일까. 정답은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아시아의 신흥공업국 인도이다. 인도는 지금도 매년 900~1,000여 편의 극장용 영화가 제작되며 자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97%에 달하는 세계적인 영화대국이다. 전 세계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25%가 인도 영화라는 통계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흔히 ‘발리우드(Bollywood)’라고 불리는데 인도 영화의 중심지인 봄베이(Bombay)와 헐리우드(Hollywood)의 합성어인 이 말은 이제 인도 영화산업을 통칭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영화에 대한 인도인들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1985년 유네스코 통계에 따르면 인도는 인구 1인당 연간 6.8회 영화를 관람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12억이 넘는 인도의 인구수를 감안한다면 관람객 수에 있어서는 나이지리아나 미국조차도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매년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미국 등 세계 100여 개 국가로 수출되는 발리우드 영화는 이제 국가적인 주요수출품인 동시에 자국 내에서만 하루 평균 1,000만 장의 입장권이 판매될 만큼 영향력 있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압도적인 수치를 자랑하는 자국영화 점유율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인도 사람들은 발리우드 영화에 대한 편애가 심한 편이다. 제 아무리 화제가 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 해도 인도에서는 개봉 기회를 잡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1999년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를 개봉할 때 상영 한 달 전부터 인도의 모든 언론매체를 동원해 대대적인 물량 광고전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개봉 2주 만에 상영관에서 쫓겨난 일은 인도 영화시장의 폐쇄성을 말해주는 재미있는 일화이다. 그만큼 인도는 그 자체가 거대한 영화제국이면서도 외국영화에는 더없이 배타적인 시장이다.

물론 발리우드 영화도 작품성보다는 오락적 기능에 충실한 편이며 전체적인 영화적 완성도 역시 그리 높지는 않다. 아직도 많은 영화가 ‘출생의 비밀’이나 ‘착한 미녀를 구해내는 영웅’ 등 신파적 스토리 구조 속에서 전개되며, 평균 3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도 외국인들에게는 악명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관객들의 몰입도는 뜨겁기만 하다. 악당들의 패악질이 계속되면 관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고, 시련을 극복한 주인공들이 해피엔딩을 맞는 마지막 장면에선 관객 모두가 하나가 되어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발리우드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 관객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건 거의 모든 작품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집단군무와 노래로 이뤄진 ‘뮤지컬’ 장면이다. 발리우드 영화는 스토리 전개와 상관없이 영화 한 편에 평균 두세 차례씩 집단군무와 노래가 등장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는데 일명 ‘마살라(Masala, 인도의 대표적인 향신료)’라고 불리는 이 엔터테이너적 요소는 발리우드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왜 인도 사람들은 ‘마살라’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마살라, 나아가 발리우드 영화에 대한 인도인들의 편애를 이해하려면 인도라는 나라의 특성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영어 때문에 일어나는 유쾌한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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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모닝 맨하탄> 포스터

인도는 국가에서 지정한 공용어만 14개이고, 전국에서 통용되는 언어만 해도 3,000여 종에 이르는 다언어국가다. 게다가 공용어 이외의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전체 국민의 25%에 이르기 때문에 발리우드 영화라 해도 자국 모두 관객들이 대사를 통해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온갖 언어로 자막을 입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럴 때 춤과 음악으로 버무린 ‘마살라’는 관객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극적 장치이며, 언어를 몰라도 이 엔터테이너적 구성을 통해 관객들은 조금 더 쉽게 영화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지금도 춤과 노래가 없는 외국영화를 좀처럼 환대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인도 중앙정부의 공용어는 힌디어이며, 부공용어로는 영어가 쓰인다. 즉 힌디어와 영어 모두가 정부에서 지정한 공용어이며 상용어인 셈이다. 인도에서 다른 언어와 영어를 병행해서 사용하는 비율은 전체 인구의 3~4% 정도에 불과하지만 공항, 호텔, 관청 등에서는 영어만으로도 전혀 불편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일반화돼 있다. 이 때문에 영어는 많은 인도인들에게 ‘지식인의 언어’로 받아들여진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처럼 인도에서도 돈과 명성 그리고 영어실력이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통용된다.

만약 그런 인도에서 영어를 모른다면 어떤 불편이 생기게 될까. 영화 <굿모닝 맨하탄(2012)>은 바로 이 영어 때문에 일어나는 해프닝을 다룬 발리우드산 코미디 영화이다. 발리우드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영화적 완성도가 높은 이 작품에도 영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샤시(스리데비役)’는 완벽한 미모에 가족에게 헌신적이며 요리에도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가정주부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딱 한 가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영어다. 사업적으로 성공한 남편과 철부지 아이들은 집에서도 곧잘 힌디어 대신 샤시가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그때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조금씩 소외감을 느낀다. 집에서라도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힌디어로 말해달라고 부탁해보아도 돌아오는 건 가족들의 무시와 조롱뿐이다.

그러던 그녀에게 혼자서 급히 미국으로 가야 할 일이 생긴다. 조카의 결혼준비를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족보다 한 달이나 앞서 미국에 도착한 샤시는 영어 때문에 뉴욕 맨하탄에서 이런저런 불편과 맞닥뜨린다. 말을 말아듣지 못해 빵가게 종업원에게마저 무시당한 샤시는 어느 순간 이번 기회에 영어를 배워보기로 결심한다. 

어렵게 찾아간 단기속성 영어학원에는 멕시코인, 타밀계 인도인, 파키스탄인, 아프리카계 흑인, 중국인, 프랑스인 등 미국에서 살기 위해 영어가 꼭 필요한 이들이 모여 향학열을 불태우는 중이다. 영어는 이들에게 생존의 도구이자 소통의 매개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부담감도 잠시, 영어에 대한 공포감을 견디게 해주는 마음 따뜻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샤시의 영어수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다.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친구들과 서툰 영어로 소통하며 샤시는 엄마도 아내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남은 시간은 4주.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려는 욕심으로 시작된 그녀의 영어울렁증은 과연 극복될 수 있을까? 샤시는 과연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영어수업을 마칠 수 있을까?

언어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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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모닝 맨하탄> 스틸컷

이 영화의 원제는 ‘잉글리쉬 빙글리쉬(English Vinglish)’로 영어에 얽힌 해프닝을 통해 주인공이 참된 자아를 찾고 소통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 코미디 영화이다. 지난해 2월 국내 개봉 당시에는 관객들의 무관심 속에 금방 내려지고 말았지만 이 낯선 인도 영화는 발리우드의 대외 경쟁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연출자인 인도의 여성 감독 가우리 산드는 자신과 어머니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해 이 영화의 스토리를 구상했는데 ‘영어망국론(英語亡國論)’이란 말이 나올 만큼 영어공부에 혈안이 돼 있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영화에 등장하는 샤시의 좌충우돌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감독은 영어 때문에 생기는 샤시의 해프닝을 단순한 웃음거리로만 치부하지 않고 다른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내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단지 지식의 폭을 넓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축적된 나의 문화와 주체를 깨달아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영어 실력이 늘어갈수록 세상을 이해하는 샤시의 눈도 깊고 넓어진다. 그건 단순히 몇 개의 영어 단어나 문법을 배워서가 아니라  그 언어를 매개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깨닫게 된 자신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미지의 언어는 어느새 그녀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도구가 된다. 드디어 맞게 된 조카의 결혼식 날, 그녀는 가족들 앞에서 더듬거리는 영어로 조카에게 이런 덕담을 건넨다.

“가족이란 서로 못하는 걸 무시하거나 비웃지 말고 도와야 하는 관계란다. 남편이 못하는 게 있으면 아내가 도우면 되고, 아내가 부족한 게 있으면 남편이 채워주면 된단다. 가족이란 그런 거야. 가족은 무시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돕는 존재인 거야.”

<굿모닝 맨하탄>은 인도 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개봉돼 발리우드 영화로는 보기 드문 환대를 받았다. 특히 인도 관객들은 국민여배우 스리데비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만으로도 무조건적인 환호를 보냈다. 이 영화는 <세퍼레이션(1997)> 이후 무려 15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녀의 복귀작이었다. 이 영화에는 이밖에도 인도의 유명배우인 아딜 후세인, 라지브 라빈드라나단 등 남자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굿모닝 맨하탄>은 오랜만에 만난 맛깔난 인도 영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언어를 매개로 나누는 ‘소통’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다. 물론 그 언어가 꼭, 영어일 필요는 없다.

글 | 이종원
인도의 커피산업

인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커피보다는 차를 즐겨 마시지만 중산층의 확대와 젊은이들의 도시진출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는 문화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인도의 국민1인당 연간 커피소비량은 현재 800g 정도지만 매년 약 85g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인도의 커피 생산량은 이미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인도의 커피생산은 총 34만 톤으로 전 세계 커피생산량의 4%를 차지하며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6위의 커피생산국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커피 생산은 대부분 일조량이 풍부한 인도 남부의 케랄라, 카르나타카, 타밀나두 주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가운데 카르나타카 주는 전체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산지로 한 해 약 25만여 톤의 커피가 생산된다. 케랄라 량의 20%를 담당하는데 이곳에서도 매년 7만 여 톤의 커피가 생산되며, 타밀나두에서 약 1만 여 톤의 커피가 수확된다. 나갈란드와 아쌈 등 동북지역에서도 커피가 생산되지만 전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에 불과하다.

인도 커피의 주요 수요처는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벨기에 등 유럽권이며 최근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도 인도 커피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마이소르 너겟 엑스트라 볼드(아라비카)’와 ‘카피로열(로부스타)’이 널리 알려진 인도산 고급커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