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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人2020.09 | Vol.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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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손인수
에디터 오형석 조경숙 김정현
디자인 이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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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0.09 | Vol.10
월간 카페人  /  제5호  /  지상의 쉼표
지상의 쉼표
드로잉에세이

비움과 채움

“우리 집엔 짐이 너무 많아, 다 버리고 가요!”
이사 계획이 잡히면서 가족들이 가장 먼저 할 일로 짐 줄이기를 꼽았다. 물건이 많은 건 사실. 게으른데다 물건 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내 성격 탓이 크다. 필요에 따라 물건들을 수시로 구입하는데 버리는 것이 없으니 짐이 쌓이는 건 당연할 터. 그래 이번 기회에 짐을 한번 줄여보자 마음먹는다. 이부자리 하나, 책상 하나가 전부인 선승의 방을 꿈꾸기도 했거니와 요즘은 심플라이프가 대세라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거실 책장에 꽂힌 책들이다. 오래 전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자리를 지키는 역할을 할 뿐, 들춰보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다. 결혼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책장 정리는 딱 두 번 뿐이었다. 한번은 결혼하면서 남편과 내가 가지고 있던 책들도 결혼한 셈이라 같은 책이 여러 권이었다. 중복된 책, 너무 낡거나 허접한 책들을 정리했다.

한동안 널널하던 책장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림책부터 동화책, 만화책, 도감 등 종류도 다양해졌다. 몇 년 전, 지인이 복지관에 작은 도서관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읽었던 도감이며 그림책들을 실어 보냈다. 그때도 아이들이 좋아해 수도 없이 읽었던 그림책은 차마 보낼 수가 없어 책꽂이에 그대로 꽂아두었다.

큰아이가 어렸을 때 그림책을 유독 좋아했다. 잠자리에 누워 엄마와 그림책 읽기는 일상이었다. 물론 아이가 골라오고 내가 읽어주는 것으로 역할 구분은 확실했다. 딱 세 권만 읽고 자기로 약속했지만 아이는 한 권만 더, 한 권만 더 하면서 낮은 책꽂이에 있는 그림책들을 뽑아오곤 했다. 어느새 읽은 그림책이 십여 권이 넘었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피곤에 지친 난 책을 읽어주다 눈이 스르르 감기며 가수면 상태에 빠져들곤 했다. 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웅얼웅얼하기에 이른다. 그럴 때면 아이는 “엄마! 그게 아니잖아. 여기서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해야지.” 글씨는 몰라도 수십 번 읽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엄마가 딴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아이는 엄마를 흔들어 깨우곤 했다.

“빨리 자라. 책 많이 읽었잖아.”
“한 권만 더 읽어주시면 안돼요?”

아이는 엄마가 얼른 잠에서 깨어나 재미있게 읽어주길 기다리곤 했다. 각각의 그림책에 그 당시의 상황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공룡그림책을 보며 발음도 어려운 공룡이름을 줄줄 외우고 다니던 때가 있었고, 나도 모르는 곤충 이름들을 읊곤 했다.
글자를 깨우친 후 아이는 동생이 태어나자 책을 읽어주곤 했다. 큰 아이가 먼저 그만 읽는 경우는 없었다. 책보다는 장난감을 좋아했던 작은 아이는 형이 몇 권 읽어주면 장난감을 가지고 놀 생각으로 후다닥 일어나 도망가기 바빴다.

이불위에 누워 아이와 함께 수도 없이 읽었던 책들, 그 손때 묻고 추억이 서린 책들을 버리기 쉽지 않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와 함께 뒹굴며 책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책장 앞에 서서 그 시간들을 추억하며 책을 쓰다듬고 정리 바구니에 담았다. 아직도 많이 읽히는 책은 기증용으로 따로 챙겼다. 누군가에게 또 다른 추억이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그림 | 조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