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지상의 쉼표
노총각 친구의 은밀한 고백

당신이 나의 첫사랑?

무제

“요즘은 검색만 잘 할 줄 알아도 잠깐 사이에 누구 뒷조사 같은 걸 금방 할 수 있다며?”
“누굴 뒷조사하려고?”
“내 첫사랑!”

잊을 만하면 술자리에서 한 번씩 듣게 되는 대학친구의 첫사랑 타령입니다. 친구는 단 한 번만이라도 곱게 늙은 첫사랑의 사진을 보고 싶답니다. 누군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십년 전 헤어진 첫사랑 여인의 사진을 찾아보았더라는 소리를 들을 후부터 친구는 술기운을 빌어 가끔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곤 합니다.

“근데 그걸 확인해 뭘 어쩌려고?”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어. 뭘 어쩌자는 게 아니라 그녀 또한 지나온 내 삶의 흔적이니까 이쯤에서 한 번쯤 확인해보고 싶은 거겠지.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아서라, 친구야.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때가 좋은 거야. 그 잔혹한 세월이 네 첫사랑이라고 피해 갔으려고? 네 뱃살부터 한번 돌아봐. 거기 자네가 걸어온 신산한 세월이 허리띠 안에서 출렁거리고 있잖아. 자기 삶의 흔적이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뭘 그래!”
“…쿡쿡쿡, 그렇겠지?”

친구는 그쯤에서 술 한 잔을 따라 달게 마십니다. 그리고 나선 목소리를 낮춰 이렇게 얘기하죠.
“살다보면 말이야, 꼭 한 번은 우연히 마주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지하철 안에서 혹을 길을 걷다가, 아니면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무심코 옆자리를 쳐다보면 이십 년 전 그 사람이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 생각 말이야. 그럴 때 서로가 실망한 얼굴로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 사람 참 멋지게 나이 들었구나, 그동안 각자 참 열심히 살아왔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 말이야.”

“어랍쇼? ‘순애보’의 진짜 주인공이 여기 계셨네. 이젠 아무 상관없는 남남끼리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아니 들어봐. 그래도 이십 년 만에 만난 첫 사랑이 늙고 추레하면 그 아름다웠던 추억이 얼마나 비참해지겠어. 난 언젠가 한번은 꼭 맞닥트릴 것 같은 그 ‘만남’을 대비해 늘 깨끗한 옷을 입고 구두도 반질반질하게 닦아 신어. 그런 차림으로 지하철을 타고 길을 걷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왠지 모르게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오늘도 퇴근 후 술이나 한 잔 마시자는 친구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오늘 하루도 친구가 첫사랑과의 그 우연한 ‘만남’에 대비해 얼마나 깨끗한 옷을 입고,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자, 그럼 저는 이만 친구 만나러 갑니다.

글 | 김한석
김한석 님은 수도권에서 생활용품 유통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가장입니다. 영화와 커피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자칭, 타칭 ‘로맨티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