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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時) 갈피
[클로징 포엠]

곰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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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행은 언제나 바람이 함께 했었지
혼자 울고 있는 바람이 있다는 것도 몰랐지만 
나는 가장 낮고 깊은 곳으로 찾아들었지

 

흐르는 대로 흘러가 보고 싶었지만 
내가 가지 못하는 곳은
햇살들과 싱그러운 바람들이 먼저 우뚝 서 있어
나는 시린 눈 한 번 비벼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고야 말았지 그렇지만,

 

무엇이든 밟고 올라선 자들만이 세상에 빛나며
모두들 봄이 왔다고 아우성칠 때
나는 더 작고 더 부서진 마음을 매만져주기 위하여
더 먼 여행을 서둘러야했지
햇살이 내 눈을 찌를수록 
외톨이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더 외로운 이들의 눈을 감겨주기도 했지

 

이 세상 어디에는
단단히 뭉쳐보기도 전에 
푸르게 파편으로 깨어지는 삶이 있지
낮을수록 평등한 사랑을 위해
당신의 가장 아프고 구석진 밑바닥을 위해
나는 바람과 함께 떠나가지 
그 바람도 상처투성이여서 
그렇게라도 사랑은,
존재의 흔적은 남는 거지

시 | 오형석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공동시집으로 《백악이 기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