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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서재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소확행’ 안분지족의 비결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안분지족(安分知足),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것을 뜻한다. 안분지족하며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잘 살건 못 살건, 삶이 만족스럽건 아니건, 현재의 삶이 지닌 한계를 그대로 인정해야 하고, 무엇보다 욕망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아무리 인격이 고매하더라도 생활이 곤궁하면 사람도 궁상맞고 찌질해지게 마련이다.

삶의 환경과 객관적 질을 향상시켜 안분지족할 수 없다면 결국 답은 한 가지밖에 없다. 물질이 아닌 정신적 가치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게 바로 ‘소확행(小確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 언급돼 널리 알려진 이 용어는 어느덧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듯하다. 생활 속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개념인 ‘소확행’은 일단 안분지족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리지 않으면 누리기 어렵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자기 가까이에 있으며, 크고 화려한 데 있는 게 아니라 작고 소박한 것들을 통해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 요체다. 자신이 지닌 것, 그 안에서 작더라도 확실한 행복을 찾겠다는 개념이니 성취하기도 쉽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더 좋고, 더 크고, 더 많이 누리기를 갈망한다. 소확행은 바로 그런 부분들을 포기해야 누릴 수 있다. 물질적 풍요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난 뒤 접근해야 비로소 보이는 비밀의 문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소확행을 추구하는 계층은 젊은 세대에 국한된 듯하다. 중장년세대는 아직도 물질적 풍요에서 행복을 찾으려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려 애쓰는 건 참으로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숱한 현실적 제약 때문에 취업과 결혼, 출산문제 등 삶에서 응당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을 포기한 채 작은 데서나마 행복을 찾으려 하는 그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안분지족과 소확행은 단순성의 미학을 추구하는 경향인 미니멀리즘(minimalism)과도 맥락이 닿는다. 본질적인 부분을 탐구하려는 예술사조인 미니멀리즘은 이제 예술 분야를 벗어나 현대인의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체의 장식적인 요소를 피하고 실용성을 추구하는 게 미니멀리즘의 요체이니 안분지족이나 소확행과는 등가의 개념인 셈이다. 미니멀리즘적 삶 안에서 소확행을 구현하고, 안분지족하는 삶이야말로 내가 추구할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 <카페의 서재> 제1권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중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책 소개 살펴보기

글 | 정충화
정충화 님은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식물해설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눈에 척척 식물, 나무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언제든 산과 들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정년을 준비하며 썼던 글들을 모아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