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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테라스
[커피시네마] 영화 <쿨 러닝>

유쾌한 남자들의 무한질주, 그리고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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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인지 아닌지 좀처럼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흔히 ‘영화 같은 얘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우리는 종종 영화보다 더 극적이거나 감동적인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이를테면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던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의 실화가 그런 경우다.

당시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 자메이카는 사상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에 남자 4인승 봅슬레이 팀을 출전시켜 대회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올림픽이 메달보다 참가하는데 더 큰 의미를 둔다고는 해도 엄연히 기록을 따져 금, 은, 동메달을 시상하는 스포츠 종목에서 참가 자체만으로 이렇듯 큰 이슈가 된 건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들의 올림픽 출전과정 때문이었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을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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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는 눈은 고사하고 일 년 내내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북위 18° 15'의 해양성 열대기후를 갖고 있는 나라다. 연중 가장 추운 1~3월 겨울 기온조차 21℃ 이상인 그곳에는 당연히 스키장이나 아이스링크 등 동계 스포츠에 대한 인프라가 있을 리 없다. 해외여행이라도 다닐 수 있는 부유층이 아니라면 자메이카 사람들 대다수는 평생 동안 눈이나 얼음판을 디뎌볼 기회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거기다 이 봅슬레이라는 게 다른 겨울 스포츠에 비해 유난히 값비싼 장비와 시설을 필요로 하는 귀족 운동으로 악명이 높다. 봅슬레이(bobsleigh)는 2인 혹은 4인이 금속으로 만든 썰매를 타고 눈과 얼음으로 다져진 인공 트랙을 달려 내려온 기록을 계측해 순위를 가리는 종목이다. 경사진 1,200~1,300m 길이의 트랙을 내려올 때의 평균 속도가 시속 135km나 되고, 곡선구간을 빠져나오는 순간에는 최고 155km까지 속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여차하는 사이에 썰매가 전복되거나 튕겨나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래서 봅슬레이는 먼저 콘크리트로 만든 트랙 위에 냉각파이를 깔아 눈과 얼음을 단단히 다지고, 적당한 감속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중간에 기울기가 있는 곡선과 원형 등을 넣어 구불구불하게 만든 코스 위에서 경기를 펼친다.

봅슬레이는 이 감속구간에서 가속도를 잃지 않고 빠져나오는 것이 관건이다. 비좁은 썰매 안에서 선수들이 좌우로 몸을 기울이거나 조종간에 연결된 로프를 당겨 방향을 조정하는 것도 중력에 맞서 속력을 보전하려는 몸부림이다. 0.1초의 기록 단축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질주하는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이 인공 트랙은 항상 일정한 빙질이 유지되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데 사실 여기 들어가는 인건비, 관리비가 생각 외로 엄청난 부담이 된다. 이 때문에 봅슬레이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를 다투는 북유럽에도 사계절 내내 훈련할 수 있는 전용 트랙을 갖춘 나라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귀족스포츠에 도전한 가난한 남자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탄소섬유 재질로 만들어지는 2인승 썰매 한 대의 가격은 최하 1억 2천만 원이 넘고 4인승 썰매의 가격은 2억 원에 육박한다.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유선형으로 설계, 제작되는 썰매는 BMW, 맥라렌, 페라리 등의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참여해 각축을 벌이는 현대과학의 집결체이다. 특수소재와 최신 기술이 집약된 장비이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러너(runner)라고 부르는 썰매 날의 가격도 개당 2,000만~3,000만 원 수준이다. 러너는 날씨나 빙질에 따라 그때그때 현장에서 교체해야 하는데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 기온에 따라 최적화돼 있는 50여 개의 러너를 보유한다. 탄소섬유 썰매와 굵기가 다른 러너 몇 개를 장만하는 것만으로도 봅슬레이 선수들에게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자본의 압박이 생기는 것이다.

이 때문에 봅슬레이 트랙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2년의 일이며,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에도 1950년대까지는 일부 유럽 상류층의 여흥 수준에 머물러 있던 운동이었다.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대회 때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해온 우리나라 역시 봅슬레이 종목에 출전하기 시작한 건 불과 4년 전인 밴쿠버 대회 때부터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고 많은 돈이 필요한 동계 종목에 가난한 열대의 나라 자메이카가 겁도 없이 출사표를 내밀었던 것이다. 단거리 육상선수들을 불러 모아 급조된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이 가진 거라곤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과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낡은 썰매 한 대가 전부였다.

대회전까지 정식 트랙이라고는 구경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올림픽 무대에 선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의 성적은 예상했던 대로 참담했다. 그런데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의 눈앞에 ‘정말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마지막 레이스에서 썰매 고장으로 멈춰버린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원들이 부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끝내 고장 난 썰매를 어깨에 메고 결승선을 통과해 들어왔던 것이다.

감동의 실화, 1993년 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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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한 장면.

이 감동적인 스토리는 1993년 미국의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존 터틀타웁 감독에 의해 <쿨 러닝(Cool Runnings, 1993)>이란 영화로 제작되어 세계적인 흥행 성공을 거뒀다. 영화의 줄거리 역시 당시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극중 100m 육상선수인 데리스 배녹은 88년 서울올림픽 출전을 꿈꾸는 재능 있는 스프린터다. 하지만 대표 선수 선발전에 나간 데리스는 동료인 주니어가 넘어지는 바람에 역시 우승 후보였던 율과 함께 탈락하고 만다. 실의에 빠져 있던 데리스는 우연히 단거리 선수의 스타트 능력이 봅슬레이 종목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곳에 정착해 살고 있던 왕년의 금메달리스트 아이브에게 코치가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데리스의 간곡한 청에 코치직을 수락한 아이브는 데리스의 친구인 상카를 더해 자메이카 최초의 봅슬레이 팀을 구성한다. 얼음 대신 지상에서 스타트 훈련을 하고, 썰매 대신 욕조에 앉아 조정 훈련을 마친 이들은 동계올림픽 참가를 목표로 캘거리행 장도에 오른다.

어렵게 구한 연습용 썰매와 다른 나라 선수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예선을 통과한 이들은 경기가 계속될수록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메달 후보로까지 부상한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기어이 우려했던 사고가 일어난다. 낡은 썰매 때문에 사고를 당한 봅슬레이 팀은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모두 일어나 썰매를 어깨에 메고 결승선을 통과해 들어온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감동이 더욱 생생히 되살아나는 것은 영화가 끝날 무렵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처리되는 후일담 때문이다.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 선수들은 영웅이 되어 그들의 나라로 돌아갔다. 4년 후에 그들은 다시 올림픽에 출전했다.’

실제로 자메이카는 92년 알베르빌, 94년 릴레함메르, 98년 나가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등에 다섯 번 연속 출전했고, 이번 소치올림픽에서도 12년 만에 다시 올림픽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비록 출전한 2인승 경기에서 30개 팀 중 29위에 머물고 말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의 도전은 언제나 성적 이상의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300여 년의 커피역사를 간직한 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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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 해변에서 모닝커피를 즐기는 사람들.
by Katy Warnerl, flicker (CC BY-SA)

단거리의 황제 우사인 볼트의 고국이자 레게(reggae) 음악의 발상지이기도 한 자메이카는 또한 ‘커피의 황제’라고 불리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Jamaica Blue Mountain)’을 비롯한 스페셜티 커피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콜롬버스에 의해 카리브해 연안의 서인도제도가 발견된 이래 16세기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자메이카는 1655년 영국식민지가 된 후로 1962년 8월 독립할 때까지 300여 년에 이르는 식민지의 역사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아메리카 식민지들처럼 초창기 정복민들의 농업 기지 역할을 하던 자메이카는 1728년부터 공식적으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해 18세기 들어 커피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현재도 커피는 설탕, 보크사이트, 관광산업에 이어 자메이카의 경제를 떠받치는 국가적 수입원이다.

열대우림이 뒤덮은 고지대 산악지역이 많은 자메이카는 기후가 서늘하고 안개가 많으며, 풍부한 강수량과 배수가 잘 되는 토양을 갖고 있어 커피 재배에는 이상적이다. 주요 산지는 포틀랜드(Portland), 세인트 토마스(St. Thomas), 세인트 앤드류(St. Andrews), 세인트 메리(St. Mary), 맨체스터(Manchester) 등이며 중남부에 위치한 맨체스터를 빼고는 거의 섬의 동쪽에 커피산지가 몰려 있다.

이 중에서도 동쪽 블루마운틴(Mt. Blue mountain) 기슭 해발 1,200m 이상 지역의 짙은 안개는 커피나무의 성장을 더디게 해 타 지역에 비해 생두의 밀도가 높고 맛이 우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이 커피를 ‘블루마운틴(Blue mountain)’이라고 부르는데 향이 풍부하고 신맛과 쓴맛이 조화를 이뤄 커피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커피의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자메이카에서 재배되는 품종은 거의 아라비카이며 매년 8월에서 9월 사이에 수확해 습식법(Wet Method)으로 가공한다. 2008년 기준 커피 생산량은 2만 4천 톤으로 세계 40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또한 카리브 연안의 여러 산지들이 최근 버번의 변이종으로 조밀도가 높은 카투라(Catura) 종으로 교체되고 있는 과정이지만 자메이카 커피의 대부분은 티피카(Tipica) 종이 대세를 유지하고 있다.

‘커피의 황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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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는 세계 최고의 커피로 알려진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1950년 자메이카커피 산업위원회(JCIB, Jamaica Coffee Industry Board)를 설립해 생산과 유통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특히 위원회는 블루마운틴 산맥의 해발 1,200m 이상에서 생산된 커피에만 ‘블루마운틴’이란 브랜드를 사용하도록 법령을 정했으며, 엄격한 품질관리를 위해 생산량을 적절히 조정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수출용 원두를 포대(bag)에 담는 것과 달리 나무상자에 넣어 수출하는 등 다른 나라 커피와의 차별성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블루마운틴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더욱 부각되어 진정한 커피애호가들의 수집품목으로 인정받고 있다.

자메이카의 커피 등급은 생두의 재배지 고도에 따라 크게 4등급으로 나뉘며, 블루마운틴은 생두의 크기에 따라 3등급으로 분류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며 블루마운틴 커피를 로스팅(Roasting)해 포장한 수출용 커피는 ‘자블럼(JBM, Jablum)’이라 불린다. 자블럼은 최고품질을 갖춘 고가의 커피이기 때문에 주로 일본으로 수출되며, 우리나라에서도 스트레이트 커피(Straight Coffee)로 마시기보다는 블렌딩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자메이카 커피는 비교적 알이 굵으며 표면이 매끈하고 색상이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높은 해발고도에서 진한 안개로 인해 천천히 자라난 자메이카산 원두는 대체로 향이 강한 편이라 진하게 추출해도 부드러운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다.

글 | 김정현(카페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