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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테라스
[커피시네마]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케냐 커피농장의 슬픈 러브스토리

잘 익은 커피 열매
한 커피농장의 생두건조장

세계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면 아프리카의 국경선 일부가 마치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일직선인 이유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품어보았을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처럼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것도 아니고,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중 하나인 구대륙에서 한 나라의 영토 경계선이 반듯한 일직선에 가깝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더욱이 지도상의 짧은 직선이 실은 수천 km의 축약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근대 국가의 형성기에 인접국과의 경계선이 대부분 산맥이나 강을 기준으로 나뉘어졌다는 인문학적 지식마저 무용지물이 된다.

영화 아웃오브아프리카

한 유럽 여인의 커피농장 흥망사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대륙의 슬픈 역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인 아프리카는 16세기 무렵 네덜란드 선원들에 의해 이곳이 하나의 독립된 대륙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부터 수세기 동안 유럽 열강들의 끊임없는 수탈과 착취가 반복되어온 곳이다. 특히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기운이 팽배해진 19세기에는 아프리카의 자원을 선점하기 위해 독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거의 모든 유럽 제국들이 앞 다퉈 식민지 개척에 뛰어들었다.

1884년 유럽 열강들은 서로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베를린에 모여 ‘콩고분지조약’을 체결하면서 아프리카인들의 문화와 민족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경도, 위도를 기준으로 국경선을 그어 버린다. 수천 년 동안 부족, 민족 단위의 삶을 영위해온 아프리카인들은 이 과정에서 같은 민족이 서로 다른 나라로 갈라지기도 하고, 어제까지 피 흘리며 싸우던 부족들이 하나의 국가로 묶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지금도 아프리카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내전과 분쟁은 이런 서구 열강의 횡포가 낳은 비극의 산물인 것이다.

1986년 제58회 아카데미작품상 수상작인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는 이런 식민지 시대의 케냐를 무대로 펼쳐지는 한 백인 여성의 아름답고 슬픈 러브스토리를 담아낸 수작이다. 할리우드의 거장인 시드니 폴락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촬영상, 각색상 등 총 7개 부분을 석권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관객들의 절대적인 지지에 힘입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돈 많은 덴마크 여성 카렌(메릴 스트립)은 믿었던 연인에게 배신당한 충격으로 그의 동생이자 오랜 친구인 브릭센 남작에게 청혼을 할 만큼 충동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가난뱅이에 이기적인 성격의 브릭센은 결혼 준비를 핑계로 그녀의 농장이 있는 케냐로 먼저 떠나는데, 뒤늦게 카렌이 현지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제멋대로 그녀 소유의 땅에 커피나무를 심기로 결정한 뒤다. 커피 농사 경험이 전혀 없다는 걸 불안해하는 카렌에게 이제 그녀의 남편이 된 브릭센은 “커피나무는 그저 심기만 하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로 자신의 결정을 밀어붙인다.

앞으로 몇 년이 걸려야 첫 수확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를 커피 묘목을 심으면서 카렌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40만 평이나 되는 광활한 땅에 묘목을 심기 위해서는 원주민인 키쿠유족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경험 많은 추장마저 “이런 고지대에서는 커피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말로 의욕을 꺾을 뿐이고, 농토에 물을 대기 위해 제방을 쌓으라는 지시에 일꾼들은 모든 사람의 공동 소유인 강물을 함부로 가둘 수는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언제나 밖으로 나돌기만 하는 남편 브릭센 때문에 커피농장 일을 직접 감독하게 된 카렌에게 가장 힘든 것은 식민지 개척기의 정복민이 느꼈을 법한 외로움과 문화적 이질감이다. 문명화된 유럽의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카렌에게 아프리카는 여전히 모든 것이 불결하고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초원에 나갔던 카렌은 사자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하게 되고 사파리관광 가이드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이후 그들은 책과 이야기를 매개로 우정을 나눈다.

케냐고원을 중심으로 커피재배 발달

케냐에서 본격적으로 커피농사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 에티오피아를 통해 들어온 프랑스인 선교사들에 의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이보다 수십 년 전에 남예맨을 통해 커피가 처음 전해졌다는 기록도 있지만, 이때는 그저 케냐를 방문한 유럽 정복민들의 사치품 중 하나로 여겼을 뿐 그 누구도 이곳이 훗날 지금과 같은 세계적 커피 산지로 유명해질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케냐는 남한 면적의 6배에 이르는 국토의 대부분이 적도를 중심으로 한 남북위 5° 사이에 걸쳐 있고 인도양과 접한 국토 동남부는 열대 기후 특유의 고온다습한 지역이다. 하지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평균 1,000~2,000m 사이의 고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지는데 오늘날 이곳은 비옥한 토양과 강수량, 기온 등 커피를 재배하기에 더 없이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천혜의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케냐 커피의 중심지로 유명한 화이트 하이랜드(White Highland) 역시 해발 1,675m에 위치한 수도 나이로비에서 5,199m 높이의 케냐산(Mt, Kenya)으로 이어지는 케냐고원 일대를 뜻하는데, 이곳은 연평균 강수량이 700∼1,200mm 정도로 농작물 재배에 적합한데다 평균 기온이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처럼 선선하기 때문에 케냐 국민의 80%가 밀집되어 있는 커피산업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케냐에는 이밖에도 우간다 접경지역인 엘곤산(Mt. Elgon), 나쿠루(Nakuru), 카시이(Kasii) 등 주로 국토 남서부의 고원지역을 따라 세계적 품질의 커피 생산지가 발달되어 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케냐고원에서 커피 농사가 시작되기 전인 191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초반, 케냐인의 22%를 차지하고 있는 키쿠유족 원주민들이 카렌에게 고지대에서의 커피 농사를 만류하는 것은 정복민에 대한 배타적 감정뿐 아니라 오랜 세월 그 땅을 경작하고 살아온 농부로써 건넨 진심어린 충고이기도 하다. 고집불통의 카렌이 모두가 반신반의하는 커피 농사를 위해 거친 황무지 위에 묘목을 심는 모습은 케냐 커피산업 초창기를 상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모두의 우려를 씻어내듯 몇 년 후 카렌의 커피나무에는 빨간 커피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한다. 카렌과 원주민 일꾼들은 지금껏 불모지였던 ‘니공언덕’에서 첫 수확한 커피 열매의 껍질을 벗겨내고, 이물질을 걸러내기 위해 흐르는 물에 깨끗이 세척하고, 다시 이를 뜨거운 태양볕에 말리는 일련의 노동을 함께 하며 조금씩 서로를 향한 마음의 문을 열어 간다. 하지만 그 즈음, 결혼 전부터 외도를 일삼아 온 남편 브릭센으로 인해 매독에 걸리게 된 카렌에게 내려진 불임 선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으로 다가온다.

이 일을 계기로 남편과의 별거를 결심한 카렌에게 유일한 위안은 숲을 이룰 만큼 잘 자라난 농장의 커피나무들과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데니스와의 짧은 만남뿐이다. 하지만 데니스는 결혼을 통해 ‘자기만의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카렌에게 “사람이란 어떤 것도 진짜로 소유할 수는 없다”는 말로 거절의 뜻을 전한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데니스에게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불러오는 구속일 뿐이다.

상심한 카렌에게 더욱 절망적인 일들이 닥친다. 어느 해보다 풍성한 수확 덕분에 밤낮으로 바쁘게 돌아가던 로스터의 불씨가 창고로 번져 그 동안 수확해 두었던 원두가 모두 잿더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전 남편 브릭센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주었던 카렌은 이제 은행의 차압을 피할 수 없다.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위로하러 온 데니스에게 담담히 말한다.

“채우지 않고 살아가는 게 좋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그리고 가장 힘든 순간에도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나와 함께 춤추지 않겠어요?”

깊은 밥, 데니스의 품에 안겨 춤을 추는 카렌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낯빛이다. 한때는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모두 잃었지만 이제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보낸 이 순간을 기억하는 한 어떤 절망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후 그녀를 배웅하기로 약속했던 데니스는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생을 마감하고, 쓸쓸히 덴마크로 돌아온 카렌은 이윽고 행복했던 아프리카의 추억을 떠올리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딜러에게 신뢰감 주는 케냐의 커피관리 시스템

1937년 덴마크의 여류작가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의 자전소설을 영화화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실제로 1914년부터 1931년까지 케냐의 나이로비 근처에서 커피농장을 경영했던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는 흑인들에 대한 은근한 인종차별적 묘사나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하는 정복민의 시각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훗날 그녀는 두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큼 문학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그녀가 케냐에 정착하던 무렵 막 시작되었던 커피재배 역시 오늘날에는 케냐의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2008년 기준 약 57,000톤의 커피를 생산하는 케냐에서는 지금도 커피나무의 뿌리를 뽑거나 훼손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을 만큼 철저한 국가적 관리가 이뤄진다. 현재 케냐의 커피 농가는 마을 단위의 협동조합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부 산하기관인 케냐커피이사회(CBK; Coffee Board of Kenya)를 통해 품종 개발이나 경작기술 지도 등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되고 있다.

주로 고지대의 작은 농장에서 생산된 커피는 수확 후 마을 공동세척장을 거쳐 협동조합으로 운반되고, 이후 나이로비에서 매주 열리는 경매를 통해 세계 각지로 수출된다. 케냐커피수출입협회(KCTA; Kenya Coffee Traders Association)가 주관하는 이 경매는 라이센스를 가진 전문가들이 경매에 나올 원두를 미리 로스팅한 후 발표한 감정 결과만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판매자와 딜러 사이의 신뢰감 없이는 지속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케냐 정부는 샘플과 실제 구매품 사이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생산, 유통 전반에 대한 관리 시스템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잘 익은 커피 열매
잘 익은 커피 열매

케냐 커피는 생두의 크기에 따라 AA, A, AB, C 등 4등급으로 분류하는데 이것들은 다시 등급별로 세분화된다. 이중에서도 최상급 원두에는 ‘이스테이트 케냐(Estate Kenya)’라는 별도 등급이 붙여지며 최고 등급인 AA++ 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에 거래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는다. 진하게 로스팅할수록 향이 더 강해지는 케냐산 원두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커피향과 어우러지는 신맛, 와인맛, 과일맛 등의 조화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데 특히 깊고 진한 풍미와 특유의 신맛 덕분에 여름철 아이스메뉴에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다. 부드럽고 상쾌한 신맛이 나른한 여름철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의 정복자들이 제멋대로 그어놓고 간 국경선이 여전한 것처럼, 그들이 심어놓은 커피나무가 지금껏 이곳 사람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 되고 있는 아프리카의 현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떠올리게 한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서야 진정한 행복을 찾았던 카렌이 다시 돌아와 드넓게 펼쳐진 케냐고원의 커피나무숲을 바라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문득 궁금해진다.

글 | 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