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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볶는 마을
[커피칸타타] 미국에서 탄생한 인스턴트커피

휘휘 젓고 간편하게 훅~ 아메리카노!

커피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커피의 역사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짚어본다면 양적으로 커피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자, 질적으로 메뉴와 마시는 스타일 등 유행을 선도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커피의 역사에서 미국은 단순한 소비국이 아닙니다. 그 유명한 ‘인스턴트커피’를 발명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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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人인스턴트커피라고 하면 ‘즉석에서 간편하게 만들어 마시는 커피’라는 말인데, 원두커피와는 어떻게 다른지 알기 쉽게 알려주세요.

원두커피는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마셔온 방식입니다. 커피 생두를 볶고 가루를 내 뜨거운 물로 성분을 우려내는 것이지요. 에스프레소처럼 압력을 가해 짜내듯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커피 원두는 물에 녹지 않는 성분이 70%가 넘습니다. 10g중에 7g이 찌꺼기로 나오는 것입니다. 걸러내지 않으면 마실 수 없습니다. 

카페人마시는 것보다 버려지는 게 많네요. 근데 인스턴트커피는 찌꺼기 없이 다 마시잖아요.

바로 핵심을 찔러 주셨습니다. 인스턴트커피는 찌꺼기를 나오지 않게 한 커피입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추출된 한 잔의 커피는 모두 찌꺼기가 걸러진 것이죠, 물에 녹는 성분만 담겨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열을 가해 물을 전부 날려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카페人가루만 남겠지요. 그 가루는 모두 물에 녹을 테고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스턴트커피입니다. 원두커피에서 물을 날려 보내고 남은 커피가루. 그 가루는 물에 녹는 성분이고. 따라서 물만 부으면 단숨에 녹게 되니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이지요.

카페人그럼 모두 인스턴트커피로 만들어 마시면 간편하고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편한 만큼 대가를 치러야겠지요. 향미가 떨어집니다. 커피를 추출할 때 향미가 날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커피는 추출하자마자 바로 드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스턴트커피는 여기에서 한 술 더 떠 추출된 커피를 가열해 물을 날려 보내다보니 사실상 커피 본연의 매력을 찾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그래서 인스턴트커피는 ‘두 번 죽은 커피’라고도 불리고, 이 때문에 크림이나 우유, 설탕을 가미해 마시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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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범미국박람회에서 첫선…조지 워싱턴이 발명?

카페人인스턴트커피는 언제 만들어졌나요?

분말 형태의 인스턴트커피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01년 뉴욕에서 열린 범미국박람회였습니다. 일본계 미국인 과학자인 사토리 가토가 앞서 물에 잘 녹는 차를 만든 아이디어를 커피에 적용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는 인스턴트커피의 주인이 되진 못했습니다. 그가 특허를 내지 않은 사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과 이름이 같은 조지 워싱턴이 특허를 따 내고, ‘조지 워싱턴 커피’라고 이름을 붙여 1910년 처음으로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했습니다.

카페人인스턴트커피가 탄생한 게 커피의 역사에 비해서는 얼마 되지 않았네요.

그렇습니다. 기록만 놓고 볼 때, 커피가 기원후 850년경 음용되기 시작했는데요. 인류는 1000여 년간 원두커피를 마신 후에야 인스턴트커피를 깨우치게 된 것이지요. 그래도 여러분이 즐겨 마시는 아메리카노보다는 역사가 깊습니다. 아메리카노의 원료가 되는 에스프레소는 1948년쯤에야 탄생하거든요.

카페人그렇게 오랫동안 원두커피를 마시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인스턴트커피가 등장한 이유가 뭘까요?

보다 빠르게, 보다 편하게 즐기자는 것이 비단 커피에서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겠지요. 세상이 빨리 돌아가고, 각박하고 고단해지니 카페인의 힘을 조달하려는 욕구, 그것도 빨리 빨리 마셔야 하는 욕구가 커졌겠습니다. 그런데 많고 많은 나라들 중에 왜 미국이었을까에 관해선 재미있는 관점이 있습니다. 바로 ‘전쟁’ 때문이지요.

‘카페인의 승리’

카페人전쟁과 인스턴트커피... 어떤 상관성이 있나요?

미국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남북전쟁을 치르는데, 링컨이 이끄는 북군이 전쟁에서 이겨 노예가 해방되잖아요. 그런데 북군이 전쟁에서 이긴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커피’가 꼽힙니다. 링컨은 커피가 공급되는 남부의 항구를 봉쇄해 남군 병사들은 커피를 못 마시게 하는 반면 북군 병사에게는 하루 평균 1.8리터나 되는 커피를 공급했습니다. 북군 병사 한 명당 제공된 커피가 1년에 16킬로그램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고요. 

카페人그럼 노예해방이 어쩌면 커피 덕분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북군에게 공급되는 그 커피들은 주로 브라질의 커피농장에서 수확된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붙잡혀 간 흑인 노예들이 채찍을 맞아가며 고된 노동 끝에 재배하고 수확한 것인데. 자신들의 삶을 옥죄였던 커피가, 결국 자신들의 삶을 해방시킨 것이 됐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게 또 있는데요. 혹시 미국독립전쟁 중에 북군병사들이 사용하던 소총에 특별한 장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세요?

카페人그게 커피와 관련이 있나요?

눈치 채셨군요. 바로 커피그라인더가 개머리판에 장착돼 있던 것입니다. 전쟁 중에 총을 쏘면서 커피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만들어 마셨으니, 아이디어는 좋겠습니다만 그 병사는 참으로 바빴을 것입니다. 또 위험하고요.
사실 아찔한 장면이지요. 총알이 날아가는 와중에 한가하게 커피원두를 갈아서 뜨거운 물로 추출해 마신다? 물론 모든 총에 장착된 것은 아니었지만. 전쟁이 끝난 뒤 미국에서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을 겁니다.

카페人인스턴트커피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 반응은 어땠나요? 

운명적으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조지 워싱턴과 이름이 같았던 인물이 인스턴트커피를 특허내고 대량 생산하게 되지요. 그런데 인스턴트커피가 발매 초기에는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바쁜 시간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미리 진하게 추출한 커피를 가지고 다니다가 물에 타 먹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져 미국이 참전하고, 인스턴트커피가 군 보급품이 되면서 조지 워싱턴 사는 돈방석에 앉습니다.

‘아메리카노’ 명칭의 유래

카페人1차 세계대전이 인스턴트커피 회사를 키웠군요. 2차 세계대전도 있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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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군인들(2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은 20년 정도 차이가 납니다. 전쟁에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병사들을 통해 인스턴트커피가 세계 곳곳에 퍼집니다. 또 전쟁에서 미군병사를 만난 유럽의 병사들은 그들이 가루에 물만 부어 휘휘 젓고는 간편하게 ‘훅’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아메리카노’라며 희한해 했습니다. 이런 사연에서 아메리카노라는 명칭이 유래됐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항간에는 에스프레소가 너무 진해 물을 타 마시는 것을 보고 유럽인들이 업신여기는 태도로 ‘아메리카노’라고 했다고 하는데요. 이는 다분히 문제가 있는 견해입니다. 1차,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에스프레소가 아직 탄생도 하지 않았거든요. 

카페人1차 세계대전의 교육효과가 있어서 2차 세계대전 때는 커피가 세계 모든 군인들의 필수품이 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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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때 미군에게 보급된 C 레이션(C Ration). 깡통에 인스턴트커피, 비스킷 등이 들어있다.

네, 그 사이 1930년대 대공황이 있었잖아요. 그때 브라질의 커피가 산더미처럼 쌓이면서, 증기기관차의 땔감으로 쓰일 정도로 세계적인 골칫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이를 네슬레가 사들여 인스턴트커피로 만들어 보관했는데요.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이 회사는 거대한 다국적 회사로 급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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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한 잡지에 실린 네스카페 인스턴트커피 광고

전쟁터 여기저기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달라는 아우성이 이어지자, 속속 인스턴트커피회사들이 생겨나지요. 바야흐로 인스턴트커피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다음호 계속)

글 | 커피비평가협회(www.ccacoff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