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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볶는 마을
커피향미를 찾아서 10

루왁커피는 그리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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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왁커피가 고가 논란과 함께 동물학대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루왁커피는 진정 손가락질을 당해야만 할 대상인가? 존재하는 것은, 비록 미물(微物)일지라도 가치가 있다는데…. 그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 꽃이 된 것처럼, 루왁커피도 우리에게 반드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그것은 그리움이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깊고 깊은 야생의 한 구석에서 살며시 맺은 커피열매를 사향고양이를 통해 맛보고 싶어 하는 원초적 그리움이다.

‘동물 커피’ 전성시대

코피루왁(kopi luwak)과 시벳(Civet)커피는 모두 긴꼬리 사향고양이가 소화를 시키지 못한 커피씨앗을 정제해 만든 커피를 일컫는 말이다. 인도네시아어로 ‘코피’는 ‘커피’, ‘루왁’은 ‘긴꼬리 사향고양이(영어로는 시벳)’를 의미한다. 예전엔 동물의 소화기관을 거쳐 발효되는 커피라 하면 단연 코피루왁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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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랑 화백이 에스프레소를 물감으로 사용해 그린 긴꼬리사향고양이

희소성 탓에 돈이 된다고 하니, 베트남은 족제비(Weasel) 배설물에서 골라낸 ‘위즐커피’와 다람쥐에게 커피열매를 먹이고 받아낸 ‘다람쥐똥커피’를 내놓았다. 예멘에는 ‘원숭이 똥 커피’가, 필리핀에서는 토종 사향고양이가 만들어내는 알라미드(Alamid) 커피가 있다. 여기에 태국과 인도에서는 코끼리까지 가세하면서 ‘루왁커피’ 대량생산시대를 열 태세다. 코끼리가 한 번에 배설하는 양이 200kg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론적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야생 코피루왁을 채집하는 농민들이 반년동안 열심히 산속을 뒤지며 모아야 할 분량을 단숨에 해결하는 규모다. 에티오피아의 염소커피, 베트남의 당나귀커피, 서인도제도의 박쥐커피까지 있다는 전언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18세기 인도네시아 식민지 수탈의 결과물?

도대체 누가, 언제부터, 왜 루왁커피를 찾아 먹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그 시작이 인도네시아라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어 보인다. 시기는 적어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하며 자바 섬에 커피나무를 경작케 한 1696년 이후다. 이 무렵 유럽은 커피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이슬람의 커피에 세례를 주며 음용을 허용(1605년)한 지 근 1세기가 지난 시점으로, 유럽에서는 물량이 달릴 정도로 커피의 인기가 치솟고 있었다. 

1669년은 유럽의 모든 나라를 거쳐 미국에도 보스턴과 뉴욕에 잇따라 커피전문점이 상륙한 해이기도 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마침내 커피시장이 열리는 상황에서, 장사에 능한 네덜란드로서는 인도네시아에 커피 밭을 만들어 단단히 한 밑천을 잡아보겠다는 심산이었겠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로부터 십 수 년 뒤 런던에만 커피하우스가 2천여 개에 달했고, 1723년에는 카리브해 연안 마르티니크 섬에도 커피 밭이 생겨났다. 이는 4~5년 뒤 브라질, 콜롬비아 등 중남미 커피대국을 등장케 한 도화선이었다. 

커피 붐을 내다 본 네덜란드로서는 신이 났다. 커피를 더 달라는 유럽 국가들의 아우성에 인도네시아 커피를 한 톨 남김없이 톡톡 털어 담아내도 부족했다. 수확하자마자 전량 유럽으로 실어 나르기 바쁜 지경이다보니 커피를 재배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로서는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당시 이미 커피에 매료된 상황에서 커피생두조차 구경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커피를 맛볼 유일한 길이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이었던 것이다.

사향고양이는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인기척이 있으면 아예 모습을 감춘다. 더욱이 야행성이어서 그 동물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처음엔 어떤 동물의 배설물인지 모르고, 커피 생두를 찾다가 고육책으로 말라비틀어진 배설물로 커피에 대한 한을 풀었으리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루왁커피의 향미가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자신들이 키워낸 커피를 마실 때와는 비교가 되는 그윽하고 우아한 맛과 향이 우러났다.
세월이 흘러 재배한 커피가 남아돌 정도가 됐어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루왁의 풍미에 매료돼 산속을 누볐다. 이렇게 한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루왁이 뱃속에서 커피체리의 과육을 자연스레 제거해준 덕분에 힘들게 가공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편리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코피루왁에 ‘게으름의 커피’라는 별칭이 붙었다.

치솟는 가격으로 사육 ‘루왁커피’ 등장

루왁커피의 이런 면모가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에까지 널리 전해져 인기를 끌자 가격은 치솟았다. 그럼에도 갈수록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물량이 속속 바닥나자 사향고양이를 가두고 억지로 커피열매를 먹이며 배설물을 받아내는 참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육해 만든 코피루왁과 야생 코피루왁의 맛이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사람의 관능으로 이를 구별해 내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야생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장치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 정부나 커피전문가 단체들이 발급한다는 인증서일 수 있다는 희망도  접어두는 게 현명하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거래되는 코피루왁의 가격은 생두 1kg에 10만원~15만원이다. 한 도매상은 야생과 사육 코피루왁을 구별해 값을 알려달라는 요구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생두 상태만을 보고 야생인지, 사육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채집자들이 야생이라며 갖고 오지만 우리도 믿지 않고, 그들도 꼭 믿어달라는 눈치가 아닙니다. 야생이던 사육이던 같은 값을 쳐주니까. 서로 다툴 필요성도 없는 것이지요. 맛으로 분간이 안 되니 사가는 중개상들도 따지질 않지요.”

정부가 야생임을 보증하는 것은 믿을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런 증서는 원하면 당장이라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야생이냐 사육이냐에 대해선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화학협회가 “코피루왁은 구연산(citric acid)과 말산(malic acid)의 함량이 높고, 이노시톨과 피로글루탐산의 비율(Ratio of Inositol to Pyroglutamic Acid)이 높다”는 오사카대학의 연구결과를 전한 바 있다. 진짜 코피루왁인지는 숙련된 전문가나 아로마 감별장치(Aroma-Sniffing devices)를 통한 ‘관능분석’이 있는데, 이를 가늠하는 성분이 커피에 들어있는 1천여 가지의 화학성분 가운데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좀처럼 권위가 실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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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루왁커피(왼쪽)과 가둬 키운 긴꼬리사향고양이에서 받은 루왁커피(오른쪽)는 구성물이 다르다.

사양고양이의 눈물

김이중 씨가 ‘루왁커피와 인도네시아 커피의 성분 비교’라는 석사논문(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2012년 2월)을 통해 인도네시아 야생 루왁커피가 수확한 커피생두에서 보이는 카르노신(carnosine), 세린(serine), 알리닌(alanine)을 함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고 했다. 논문은 또 야생 루왁커피가 사육한 코피루왁커피에 비해 유리아미노산의 총량이 많은 반면 카페인은 적은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사향고양이를 가둬놓고 혹사시키고는 ‘야생의 자유로운 영혼들이 빚어낸 커피향미의 하모니’라고 속이는 뻔뻔한 상술이 통하지 않을 날도 멀지 않았다. 잡식성인 루왁은 이른바 디저트로 잘 익은 커피열매만을 가려내 먹는다. 따라서 배설되는 커피의 향미는, 루왁이 무엇을 먹고 커피열매를 후식으로 먹었느냐에 따라 그 뉘앙스가 달라진다. 따라서 코피루왁을 채집하는 곳이나 시기에 따라 향미의 향연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 자연의 맛과 멋이 창살 아래에서 이루어질 리 없다. 자유를 빼앗고 억지로 입을 벌려 먹이고 배설하게 해서 만드는 커피라면 ‘저주의 커피’이다. 과학의 힘이 아니라 문화의식으로 학대받는 사향고양이의 비명이 사라지길 기대한다.

글 | 박영순
사진 | 커피비평가협회(CCA, www.ccacoffee.co.kr)
박영순 님은 21년간 신문기자로서 와인, 위스키, 사케, 차, 맥주, 커피 등 식음료를 취재하면서 향미에 몰입했습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에서 향미 관련한 자격증 30여종을 비롯해 미국요리대학(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플레이버 마스터를 취득한 뒤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과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년 <커피인문학>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