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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볶는 마을
커피향미를 찾아서 5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커피나무였다’는 상상

커피는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후퇴란 모른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나라에서 커피의 소비량이 다시 줄어든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인류를 빠져들게 만드는 커피. 이러한 커피의 유혹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는 머나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가야 한다. 인류가 처음으로 커피를 만난 시점으로 가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커피의 기원설에는 대체로 에티오피아 전사, 염소지기 칼디, 이슬람학자 셰이크 오마르, 마호메트 등이 등장하는데, 점점 ‘에덴동산’과 ‘시바의 여왕’이 회자되고 있다. 이 중 에덴동산의 기원설이 가장 오래된 이야기이다. 에티오피아, 예멘,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유명한 커피 산지는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 개신교, 그리스 정교, 이슬람교는 모두 구약성서를 믿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인지 산지에서 ‘에덴동산의 커피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이 기원설은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세상 만물이 모두 만들어졌으므로, 커피나무도 태초의 에덴동산에 있었다”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커피나무는 에덴동산의 어디에 있었을까? 창세기가 적혀있는 구약성서의 어디에도 커피나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에덴동산 커피기원설이 왜 거론되는 것일까? 그것은 ‘선악과’ 때문이다.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인 커피를 따먹고 있는 아담과 이브 (그림/유사랑)

창세기는 에덴동산 한 가운데에 ‘생명나무(tree of life)’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가 있었다고 전한다. 여기서 생명나무의 열매는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음에 따라, 먹을 수 없게 된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인데, 아담과 이브가 먹지 못하게 됨에 따라 인류는 영원히 살 수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됐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커피와 관련해 우리의 관심사는 생명나무 옆에 심겨져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이다. ‘선악과’ 또는 ‘지식의 나무’로 일컬어지는 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아담과 이브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알게 된다. 정신적으로 각성을 했다는 말이다. 나무의 열매 가운데 인간이 먹음으로 해서 ‘깨어 정신을 차리게 하는’ 각성효과를 유발하는 열매는 커피, 카카오, 과라나 나무 등 몇 종류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사과는 각성효과를 유발하지 않는다. ‘에덴동산 기원설’의 핵심은 이브와 아담이 뱀의 유혹에 빠져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원인이 된 선악과가 바로 커피나무였다는 주장인 것이다.

에덴의 동산은 여러 이야기를 낳았다. 남자들에게 불룩 튀어나온 목젖이 있다. 이를 영어로 ‘아담스 애플(Adam's apple)’ 또는 ‘아담의 사과’라고 말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이브가 준 사과를 먹다가 목구멍에 걸려 생겼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선악과를 사과나무로 단정한 뒤 나온 이야기인 것으로 보인다.

또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 이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말 때문에 남자의 갈비뼈는 한 개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는데, 인간은 남녀 모두 좌우 12쌍 24개의 갈비뼈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로 ‘옆’ 또는 ‘곡선’이라는 단어를 갈비뼈라고 오역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현대 종교학자들은 창세기에서 갈비뼈로 잘못 번역된 이 단어를 ‘DNA’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아담의 DNA를 토대로 이브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아담을 완전히 두 쪽 내서 그 중 한쪽을 이브로 만들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선악과의 실체에 대해

커피산지에서 에덴동산 기원설을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자못 진지하다. 이 기원설은 단지 구약성경을 믿는 재배자들만의 신앙심이 만들어낸 것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여행가인 스튜어트 리 앨런(Stewart Lee Allen)이 1999년 펴낸 《악마의 잔(The Devil’s Cup)》에서 선악과는 커피열매였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선악과의 실체를 두고 논란이 이는 것은 구약성서 어디에도 선악과를 사과나무라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창세기는 기원전 1446년~1406년 모세에 의해 쓰인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따라서 창세기는 ‘모세 5경(Five books of Moses)의 제1경’이라고도 불리는데, 모세는 여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와 ‘선악과’로 표기했지, 사과라는 단어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선악과가 ‘사과’라고 구체적으로 표기된 것은 창세기가 쓰인 지 3000년이나 지난 뒤였다. 영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존 밀턴(John Milton)이 1667년 펴낸 대서사시 《실락원(Paradise Lost)》에서 창세기의 선악과는 비로소 ‘사과’라고 명기된다. 밀턴 이전까지 선악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나무였다. 그가 선악과를 사과라고 적은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이 아담과 이브를 다루는 작품에서 선악과를 사과로 그렸다.

이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주장이 있는데, 기원후 2세기경 성경이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는 견해이다. 유대인 성경번역가인 아킬라 폰티쿠스(Aquila Ponticus)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구약 제24권 ‘아가서’ 중에서 ‘솔로몬왕의 노래’를 번역하면서 선악과를 의미하는 부분을 사과나무라고 명기했다. ‘나쁜’이란 의미의 형용사 ‘말루스(Malus)’에 어원을 둔 ‘Malum’이라는 단어가 문제였는데, 말룸은 ‘악’을 뜻하면서도 ‘사과’를 뜻하기도 하고 배의 돛대를 일컫기도 한다. 이런 탓에 선악과를 ‘사과’로 오해했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 때문에 밀턴이 실락원을 출간하기 전인 16세기에 그려진 그림에도 드물지만 선악과가 사과로 묘사되기도 한다.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가 1507년에 그린 <아담과 이브>에 선악과로 보이는 과일이 사과로 그려진다.

커피애호가들의 이유 있는 주장

사실 성경이나 종교 관련서에 묘사된 선악과를 보면, 그 성격이 사과보다는 커피 열매와 잘 들어맞는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창세기에 “선악과는 이를 먹는 자는 눈이 밝아지고,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알게 된다”고 적혀있다. 따라서 선악과나무는 ‘지식의 나무’로, 그 열매는 ‘지혜의 열매’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대목은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각성효과(Awakening effect)를 연상케 한다. 사과를 먹고 눈이 맑아지고 지혜가 생겼다는 말보다는, 커피를 먹고 정신이 깨어나고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도록 뇌가 각성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또 있다. 다소 과학적인 접근인데, 에덴동산에 선악과나무는 한 그루밖에 없었는데, 열매를 맺은 것을 보면 자가수분을 하는 나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과나무는 자가수분을 못하기 때문에 선악과는 사과나무로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인스턴트커피로 많이 쓰이는 로부스타 품종은 타가수분을 하지만, 고도가 높은 곳에서 자라 향미가 좋은 아라비카 품종은 자가수분을 한다. 이런 점에서 선악과나무는 사과나무보다는 커피나무라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고 카피애호가들은 입을 모은다.

스토리텔링의 힘

인류는 카페인의 존재를 모른 채 수 천 년간 커피열매를 먹으며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에너지를 솟구치게 하는 기이한 신체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도대체 커피의 무엇이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와 에너지를 솟구치게 하는지, 왜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지를 옛날에는 잘 몰랐다. 성서에 적힌 선과 악을 구별하는 선악과의 기능은 혹시 카페인이 발휘하는 ‘지적계몽(知的啓蒙)’을 은유한 것은 아닐까?

선악과가 사과나무였는지, 커피나무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이것이 맞고 틀리는 진실게임이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풍성하게 만들고, 이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이 더 가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단군신화가 떠오른다. 사실 구약성경을 ‘이스라엘의 건국신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단군신화는 기원전 2333년 있었던 일에 관한 것으로, 역사적으로는 고조선 사회를 이해하는데 소중한 자료다. 에덴동산은 이 보다 훨씬 더 오래된 이야기다. 기록도 단군신화는 고려 충렬왕 때 보각국사 일연(1206~1289)이 쓴 삼국유사에 나오는 것으로 그 시기가 13세기 말이다. 반면 모세가 창세기를 쓴 것은 기원전 15세기이니, 단군신화는 성경보다 2800년이나 최근의 것이다.

기록된 시기만 가지고 신화냐 실존이냐를 따진다면 단군신화는 창세기보다 훨씬 생생한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구약을 믿는 사람들에게 에덴동산은 지구에 실재했던 역사이나 단군의 이야기는 신비스러운 이야기에 머물고 있다. 스토리텔링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커피애호가들이 부쩍 늘어난 어느 날 선악과가 커피나무로 기록될지 모를 일이다.

글 | 박영순
사진 | 커피비평가협회(CCA, www.ccacoffee.co.kr)
박영순 님은 21년간 신문기자로서 와인, 위스키, 사케, 차, 맥주, 커피 등 식음료를 취재하면서 향미에 몰입했습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에서 향미 관련한 자격증 30여종을 비롯해 미국요리대학(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플레이버 마스터를 취득한 뒤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과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년 <커피인문학>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