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커피 볶는 마을
커피향미를 찾아서 1

커피원조 논쟁의 승자는?

잘 익은 커피 열매
잘 익은 커피 열매

커피가 선사하는 행복 중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커피의 향미가 뛰어날수록 그 자리에서 보다 풍성한 이야기가 피어난다. 커피에 입문할 즈음 가장 많이 떤 수다(?)는 ‘커피의 기원(Origin of Coffee)’에 관한 것이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 했던가? 기록되지 않으면 잘 돼야 전설 정도이고,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로 그치게 된다. 그렇다고 기록되는 역사가 반드시 진실이라고도 할 수 없다. 어떤 것은 꾸며낸 이야기일 수 있다. 더욱이 기록하는 자가 사건의 당사자라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테니….

예멘 ‘칼디’ 기원설과 에티오피아 기원설

칼디(Kaldi)가 등장하는 커피 기원설도 따지고 들어가면 허점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칼디라는 인물 덕분에 커피가 있는 자리는 더욱 풍성해진다. 칼디를 이야기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끼리 동질감과 유대감은 깊어진다. ‘스토리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여기서 커피 기원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싶다. 먼저 칼디를 ‘양’치기라고 해놓고는 커피체리를 먹고 춤추는 ‘염소’를 봤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다. 2~3세기 때라고 하면서 칼디가 이슬람 수도승에게 커피를 전하니 각성효과 덕분에 밤새 기도를 잘했다고 하는 것 역시 역사적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무함마드(Muhammad)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것이 610년이니, 7세기 초 전에는 이슬람 수도승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다른 이야기이지만 1896년 아관파천 때라고 하면서 고종황제에게 융 드립 커피를 제공하는 영화 <가비> 속의 한 장면은 커피애호가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커피를 필터링한다는 것은 이로부터 10여 년 뒤인 1908년 독일의 멜리타 여사가 처음으로 짜낸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랍의 적지 않은 역사학자가 자신들의 논문이나 저서에 칼디를 예멘의 목동이라고 적기도 했다.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커피가 ‘자랑스러운 이슬람의 문화’라는 논리를 완성하기 위해선 커피의 기원 역시 이슬람국가의 어느 곳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아라비카 커피 꽃과 열매
아라비카 커피 꽃과 열매. 커피 꽃은 흰색에 꽃잎이 다섯 장으로, 재스민과 오렌지 꽃과 생김이 비슷하다. 17세기까지 커피 꽃은 아라비안 재스민이라고 불렸다. 커피가 이슬람권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진실이란 세월이 드러내 주는 법. DNA 분석을 통해 커피나무의 기원이, 커피를 처음 경작한 예멘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고원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아랍인들의 이야기는 힘을 잃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티오피아 고원에서는 재래종 커피나무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커피의 기원지라고 말하려면 이처럼 원종(native variety)이 있어야 그럴싸하다.

에티오피아는 3천 년 전 이스라엘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 태어난 아들 메넬리크 1세가 초대 황제가 됐다는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국가이다. 지금도 크리스마스 때면 염소를 잡아 가족들과 함께 나누며 축하하는 풍습이 있다. 에티오피아가 외세의 지배를 받은 것은 16세기에 이슬람교도에 의한 14년, 20세기에 이탈리아에 의한 5년간뿐이다. 앞서 6세기쯤에는 당시 아비시니아(Abyssinia, 지금의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포함한 아라비아의 남부 지역을 공격했다. 아마도 이때 예멘으로 커피가 전파됐을 것이라는 게 에티오피아의 입장에서 본 커피의 역사이다.

“커피의 기원지는 에티오피아”

4대 커피 기원설 가운데 칼디, 오마르, 마호메트의 전설은 ‘커피의 각성효과’를 토대로 이슬람 측에서 만든 이야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각성효과가 아니라 ‘에너지 원천(energy source)으로서 커피’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이다.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기록이 아닌 구전인 탓에 생명력을 지니기엔 부족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한 인류의 첫 번째 기록은 로마대학의 언어학 교수이던 안토니 파우스트 나이로니(Antoine Faustus Nairon)가 1671년에 쓴 《잠들지 않는 수도원》이다. 이 책에 “이슬람 수도승이 칼디가 준 커피열매를 그 쓰임새를 몰라 불에 내던졌는데, 기분 좋은 향이 나자 볶인 콩을 갈아 따뜻한 물에 타서 먹었다”고 적혀 있다. 칼디 때 이미 커피 씨를 볶아 먹는 단계를 깨우쳤다는 말인데, 비약이 이 정도라면 대단한 이야기꾼임이 분명하다. 나이로니의 이야기는 1922년 커피의 기원을 심도 있게 추적한 윌리엄 유커스(William Ukers)의 『커피의 모든 것(All About Coffee)』에 인용되면서 정설처럼 굳어진다.

반면, 에티오피아 기원설에는 “커피나무의 열매를 다른 곡류와 함께 갈아 식량으로 먹었다”는 기록 외에 이렇다 할 재미가 없다. 그러다보니 칼디, 오마르, 심지어 지극히 종교적인 마호메트 기원설보다도 파급력이 떨어졌다.

커피에 대한 첫 기록은 사실 나이로니보다 700년 이상 앞선 서기 900년쯤 페르시아의 의사였던 라제스(Rhazes)에 의해서였다. 그는 커피를 ‘번컴(Bunchum)’이라고 적었는데, ‘따뜻하면서도 독한, 그러나 위장에 유익한 음료’라고 표현했다. 이어 서기 1000년경 무슬림 의사이자 철학자이던 아비세나(Avicenna)는 커피나무와 생두를 ‘분(Bunn)’, 그 음료를 ‘번컴’이라고 구별해 적으면서 약리효과도 기술했다.

라제스와 아비세나의 이 기록들은 커피의 기원지가 에티오피아임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지구상 어디를 뒤져도 커피를 ‘분나(Bunna)’, ‘부나(Buna)’, 분, 번컴이라고 부르는 곳은 에티오피아밖에 없다. 커피의 원산지로 꼽히는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에서도 커피를 부를 때 지금도 C나 K는 발음 조차하지 않는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잘했다면 커피는 오늘날 번컴으로 불렸을지 모른다.

커피 꽃
커피 꽃은 한 가지에 10~14군데 꽃송이처럼 몰려서 핀다. 한 묶음은 통상 꽃이 14~18송이가 핀다, 꽃이 핀 자리에 한 알의 커피열매가 맺힌다.

원조이면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배경

에티오피아 기원설의 요지는 이렇다.
“에티오피아의 갈라(Galla)족은 소를 키우며 사는 유목민이었다. 이동이 잦은 탓에 간편하게 가지고 다니는 먹을거리를 잘 만들던 이들은 커피열매를 먹으면 힘이 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점차 그 에너지라는 것이 씨앗에 농축돼 있다는 점을 알게 됐고, 딱딱한 생두를 먹기 좋게 빻아 산화하지 않도록 동물성기름과 섞어 골프공처럼 만들어 가지고 다니게 됐다. 유목민 특성 때문에 다른 종족과 충돌이 찾았는데, 이 과정에서 ‘커피 공’은 고지대에 살던 오로모족에게도 전파됐다. 커피의 원산지로 알려진 카파는 저지대였기 때문에, 기원설에는 갈라족의 역할이 필요하다. 어쨌든 커피는 오로모족에게 전해진 뒤 꽃을 피운다. 고지대에서 좋은 커피열매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 이들은 커피 에너지의 덕을 톡톡히 본다. 커피는 어느새 목숨을 건 전쟁 전에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 전투식량이 됐고, 따라서 성스런 의식도 생겨났다. 의식은 커피를 마시는 방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핵심 에너지원인 생두만을 골라 볶고, ‘딱, 딱’ 크랙이 발생할 때면 전사들이 커피의 성스런 혼을 흡입하는 의식도 치렀다. 그러면서 커피는 볶고 갈아 물에 끓여 마시는 음료로 진화하기에 이른다.”

이런 멋진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의 기원설은 이슬람 문화권의 메카를 방문하는 ‘하지(Haji)’라는 풍습에 무릎을 꿇고 만다. 오늘날로 치면 매년 300만 명의 무슬림 순례자들이 마호메트의 탄생지인 메카를 방문하는 것인데, 당시 ‘커피를 몸속에 넣고 죽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스토리가 만들어져 커피는 순식간에 전 세계 이슬람국가에 퍼졌고, 결국 커피는 이슬람의 문화가 됐다.

그리스도교 국가인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원조이면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역사적 사실은 일면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유통(전파)이 약하면 헛것”이라는 교훈을 준다.

글 | 박영순
사진 | 커피비평가협회(CCA, www.ccacoffee.co.kr)
박영순 님은 21년간 신문기자로서 와인, 위스키, 사케, 차, 맥주, 커피 등 식음료를 취재하면서 향미에 몰입했습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에서 향미 관련한 자격증 30여종을 비롯해 미국요리대학(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플레이버 마스터를 취득한 뒤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과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년 <커피인문학>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