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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時) 갈피
[클로징 포엠]

손톱을 깎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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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산소를 다녀온 후 
때가 너무 없어 관리사무소에 예약을 하고 
거실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앉았다
손톱을 깎으려 들여다보니
내 손톱에서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살면서 만져본 가족들의 상처들
때론 할퀴고도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어 
반달이 떠오를 때까지 장판을 꾹꾹 누르며 
속으로 속으로 새기며 속손톱을 물고 잠들던 날도
내 손톱에서는 나무가 자라고 있었을 거야
어쩌면 강가에 살던 어린 시절, 
하류에 빠뜨렸던 낡은 운동화를 줍기 위해 
뛰어가며 흘린 눈물이 나무가 되었을지도 몰라
엄마의 봉분을 젖가슴인줄 알고 만져보던 
글자도 모르던 어릴 때나
허기만 가득 차 있던 도시락을 학교에 두고 온 날 
아버지가 탄 구급차의 마지막 검붉은 바퀴 자국도 
내 손톱에서는 나무로 자랐을지도 모르지
처음 나무가 자라난 건, 그러니까, 키가 훌쩍 자라 
더 이상 그 좁은 가족과 살 수 없다는 걸 안 때인지도 몰라
그때 내가 써놓은 이력서에는 
왜 세상의 아픈 생각으로만 가득했을까

시간이 번져서 썩어가는 것도 
완전히 사라지는 소멸의 힘을 얻듯
이제는 번질 줄 알아야 하리라, 번진다는 건
둥글어진다는 것, 경계가 사라져
슬픔도 이젠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어루만지고 싶었으나 차마 보듬지 못했던 것들
나이테가 모든 걸 기억하며 
저마다의 상처를 안으로 삭여 
마침내 둥글어지듯이, 아버지의 산소에 때가 피어나듯이
들여다본 손톱에서는 각성의 나무가 둥글게 자라고 있다

시 | 오형석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공동시집으로 《백악이 기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