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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징 포엠]

얼룩을 닦으며

무제

Ⓒ 김수길

얼룩을 닦으며

내 떠나온 집에서 미처 씻어내지 못한
그러한 것들이
나에게는 얼룩으로 남아있네
지울수록 깊어지는
그 푸른 일렁임에 대해
나는 한 번도 노래로 옮기지 못했으나
더는 부르지 못할 이유로 벽지에 새기던 이름이라든가
울음밖에 없던 술잔을 비울 때
함께 울어주던 귀뚜라미의 목메임과
귓속까지 따라와
나를 후회하게 만들던 바람의 심장이라든가
뭉쳐지지 않던 일기장의 녹슨 상처라든가 하는 것들이
내 마음에는 얼룩으로 남아있네
어느 날은 몸이 아프고
손을 씻으려 넣어본 물에서
물방울들이 상처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며
나는 또 한번 울음을 터뜨렸네
두고 온 것들이 어디서부턴가 얼룩이 되어
그 집은 멀어져서 더욱 가깝게 하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이
살면서 잘못 박아놓은 못들에 갇혀
내 아직 떠나오지 못한 집에서
차마 씻어내지 못한
그러한 것들이
나에게는 얼룩으로 남아있네

시 | 오형석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공동시집으로 <백악이 기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