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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징 포엠]

계단

무제

Ⓒ 김수길

계단

오르기만 한다면 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어느 해 눈송이들이

휘청거리는 뒷사람도 좀 돌아보라며

축축한 한숨을 쉬며 말을 걸어올 때도

남들보다 먼저 오르기만 하면

될 거라고 믿었다

네 살 된 딸아이와 살얼음 낀 계단을 오르다

아빠, 왜 혼자 가는 거야, 같이 가야지,

손짓을 하며 팔을 뻗는다

그래, 같이 가야지, 함께 가야하는거지

아이의 장갑에 묻은 눈을 터는 동안

찬바람이 내 등을 맵차게 때렸다

아직 아빠의 손도 꼬옥 쥐지 못하는 아이의 손이

겨울 오후 짧기만 한 내 그림자를 부여잡는다

혼자만 다다르면 삶은 정말로 끝이 나리라

계단을 오르며 나는 보았다

나란히 찍힌 사람들의 발자국

한 고비씩만 넘어설 수 있다면

계단은

삶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제단(祭壇)이란 것을,

아이들의 계단엔

서로의 그림자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시 | 오형석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공동시집으로 <백악이 기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