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카페人  
카페의 서재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사람 사이의 거리

2008_09_01.JPG

인간은 누구나 외부인의 근접을 불편해하며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려는 성향이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이를 개인적 공간(Personal Space)이라 정의했다. 대하는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편하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는 <근접학>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4가지 형태로 나누어 설명한다. 45cm 이내의 ‘친밀함의 거리’, 45~120cm의 ‘개인적인 거리’, 120~360cm의 ‘사회적인 거리’, 360cm 이상인 ‘공적인 거리’가 그것이다. 그중 친밀함의 거리는 부모와 자식, 연인 간의 스킨십이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친밀함의 거리이건, 개인적인 거리이건, 사회적인 거리이건 원치 않게 그 거리가 깨질 때, 특히 친밀하지 않은 사이에서 그 거리가 좁혀질 때 우리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버스나 전철 객실에서 모르는 사람이 옆자리에 앉을 때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거나 피하려는 게 바로 개인적인 거리를 지키려는 무의식적 행위라 보면 되겠다. 
사실은 물리적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두는 거리에 따라 움직이는 미묘한 감정이 작용하였기 때문일 게다. 즉, 근접 거리는 친소관계에 따라 편하게도 불편하게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내 인간관계의 폭이 점점 협소해지고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느낌이 든다.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개인적 성향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관계의 폭을 넓혀 이것저것 신경 쓰며 살 필요 있겠느냐는 방어적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리라. 

폭넓은 인간관계가 성공의 척도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나는 그 틀마저 더 좁히려 하고 있으니 사회적 인간으로는 함량 미달이구나 싶다. 설사 그렇더라도 굳이 세상의 틀에 나를 맞추고 싶지는 않다. 다만, 좋건 싫건 관계 속에서 살 수밖에 없으므로 개인적 공간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게 균형 있는 삶의 유효한 방편이겠다는 생각은 한다.

- <카페의 서재> 제1권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중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구입하기

글 | 정충화
정충화 님은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식물해설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눈에 척척 식물, 나무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언제든 산과 들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들이 있어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