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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해설가의 인생이모작 힐링 에세이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고령화 사회에 인생이모작은 보통명사가 되었습니다.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정년은 짧아졌습니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넋두리하며 많은 중장년층이 준비 없는 노후에 대해 걱정합니다.

시인이자 식물해설가로 온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식물과 친구하기’를 주제로 들꽃, 식물을 알려온 정충화 작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준비 없이 맞게 될 불안정한 노년기에 대한 걱정은 날로 무게를 더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무소유의 삶이 좋은 거’라는 고담준론으로 포장하진 않습니다. “내 소유의 재산이라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쓸쓸했다”며 “밥은 외면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현실”이라고 밥벌이의 고달픔을 토로합니다. “요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처지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내가 처한 상황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과 오십보백보다.”

그러나 그가 좀 특별했던 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노년 대비 프로젝트’는 50대 초반 직장일로 가족과 떨어져 충주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홀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때때로 엄습하는 쓸쓸함에 낙담하다가도 산과 들로 꽃과 풀을 만나러 길을 나섰습니다. 걸으며 만나는 ‘식물 벗’들은 성찰이라는 선물을 건넸습니다.

“이만큼 살았으면 어느 정도는 분별심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옳다. 그런데 나는 아직 사람이 덜돼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곧잘 나의 빈한한 처지와 옹색한 환경을 한탄하게 된다. 타인과 단순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가치가 분명 있을 텐데 그런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무제

‘소확행’으로 품격 있는 나이듦에 대하여

작가의 성찰은 생활 곳곳에 스며듭니다. 분별심 대신 ‘균형’을 생각하게 된 것도 위 어금니가 쪼개져 며칠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이도 아래 위, 좌우가 균형 있게 협업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고 신체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생생히 체험”하며 사회, 국가로 균형의 시선을 확장합니다.

작가는 “내가 누리는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여행, 걷기, 식물과의 만남, 벗과의 술, 책 읽기를 들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품격 있는 삶의 훌륭한 방편이라 강조합니다. 품격 있는 나이듦에 대한 철학인 셈이죠.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고 한 모금의 차, 한 잔의 술, 한 곡의 노래, 한 줄의 글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결국 삶의 품격은 외부가 아닌 자기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삶이 물질의 종속변수만은 아니라는 사실, 삶의 만족도는 물질적 풍요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위로가 되는 아침이다.”

그가 식물을 벗 삼다 식물해설가가 된 것도 이런 소확행의 결과가 아닐까요. 그래서 살아온 예순 하나의 인생이 덧없지 않습니다.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 즉 덕후와 직업을 합친 ‘덕업일치’라는 말에 잘 어울립니다. 인생 후반부를 앞두고 중반부를 마무리하면서 내놓은 그의 출사표가 당당합니다.

“나의 현실은 여러모로 열악하지만, 삶이 크게 불행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자식들 다 컸겠다, 남은 날들 읽을 책 충분히 쌓아뒀겠다, 몇 발짝만 움직이면 좋아하는 식물 볼 수 있겠다, 가까이에 좋은 사람들 있으니 그것으로도 과분하다. 이 정신적, 정서적 자산을 뒷배 삼아 이제 내 후반부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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