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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人2020.07 | Vo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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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손인수
에디터 오형석 조경숙 김정현
디자인 이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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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0.07 | Vol.8
월간 카페人  /  제4호  /  내 마음의 카페
내 마음의 카페
부치지 못한 편지

사랑은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교차로는 성찰의 순간입니다.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잠깐 동안 문득 당신의 뒷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은 신호의 점멸만을 바라봅니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우리는 어디로부터 건너가고 어디에서인가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입니다. 신호등의 점멸 시간이 사람들의 공간을 바꾸는 기준이 되듯, 제 사랑에도 시간과 공간이 늘 함께 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무제

지나온 공간은 언제나 시간과 함께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그리움이란 말은 시간과 공간의 축에 당신을 얹어놓는 일이라고 말이죠. 그리움은 하나의 단순한 명사가 아닙니다. 그리움이란 말에는 완전하지만 안타까운 하나의 문장이 들어있습니다. 당신을 만나고, 그 만남을 이어가며 걸었던 여러 공간을 떠올려봅니다. 혜화동의 어느 골목길과 종로 2가의 뒷골목, 서해바다에서 일몰을 바라보던 모래언덕과 섬진강의 발원지를 찾아가던 산 속의 오솔길이 모두 시간으로 바뀌어 제 기억으로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길들과 공간은 사실은 시간의 기억을 떠받치는 구조물들이며 기둥입니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에는 언제나 거리의 흔적이 냄새처럼 배어있는 것이겠지요.

참 가난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당신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충분히 행복하게 못해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당신을 멀리 두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날이었습니다. 학비를 준비하기에도 모자랐고, 방값을 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당신 옆을 서성이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습니다.

능력보다는 용기가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솔직한 거겠지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가진 게 없이 태어나 가진 게 없는 상태로 세상에 던져져,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이 악물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위로는 너무 많은 세상이 있었고, 그 곳으로 진입하기 위해 땀을 닦을 시간보다는 땀을 더 많이 흘리는 시간만이 필요했던 날들이었습니다.

원망이나 후회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너무 많이 있었고, 살아야 할 시간이 언제나 눈앞에 한가득이었기 때문입니다. 잠이 들 때 돌이켜보는 하루보다 눈을 뜰 때 생각하는 하루는 언제나 버거울 만치 크고 넓기만 했습니다. 그때는 글 한 편 쓰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저에게 큰 힘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숙제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돈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느 날 당신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마음씀씀이를 왜 몰랐겠습니까마는, 저의 자존감이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날 참 많이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종로의 어디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제가 힘든 것만큼 행복해보였고, 스스럼없는 그들의 말투는 작아진 제 자신감만큼 때문인지 더욱 크게 들렸습니다. 그날 일기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더군요.

어쩐 일인지 오늘은 이 골목이 세상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붉은 철계단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옥탑방을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잔설이 쌓여 있는 전봇대 아래
중심에서 떠밀려 온 햇살이 사람들의 발걸음에 차이고 있었다.
건너가 보지 못한 길 누구나 갖고 있으므로
차라리 뒤로 걷는 법을 배우기로 한다.
골목에서 몇 발짝만 뒤로 걷다보면 왜 생각들이 앞으로만, 한쪽으로만 쏠렸는지, 몽롱한 정신에 금세 피가 돌았다. 정신이 아주 맑아졌다.

생각이 생각을 떠미는 동안
12월이 좁은 보폭으로 나무들의 속 깊은 마음 받아 떠나는 게 보였다.
그렇게 나도 건너가고 싶은 길이 있었다.
언제쯤이나 건너갈 수 있을까, 건너갈 수는 있긴 한 걸까?
감기 때문에 먹은 알약 같은 바람만 분다.

아니다, 아니다 속이고 싶은 하루이다.
돌아보면
끝내 받아들이지 못해 내 안에 매듭으로 남은 몇 마디도 있다.
왜 순수하게 사람의 위로를 받아들이지 못할까?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오늘은 세상 끝까지 오르고 싶다.
계절의 끝물을 끝내 넘기지 못하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듯 가까이 다가설수록 멀리 달아나는, 삶에는 그런 길이 있음을 확신한다.
사람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 것.
그럴 시간이 있으면 더욱 열심히 살 것! 공부할 것! 일을 할 것!
그게 최선이다.
다른 이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옛 일기를 다시 꺼내 읽다가 당신을 생각합니다. 그날 당신의 위로가 제게 큰 힘이 되었듯이, 오늘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하며 당신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이제 와서 쓰는 글은 너무 늦은 답이 되겠지만, 그래서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되겠지만, 이 편지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변명입니다. 당신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의 말입니다.

안녕! 당신

나는 내가 만든 넉넉한 그늘 안으로 그대들, 당신과 아이가 따갑고 쇠창살 같은 삶을 살아내다 편히 몸을 눕히러 들어오길 바랍니다. 지금도, 미래에도.
그런데 그 준비가 너무 늦어서, 그래서, 핑계 같지만 당신에게, 많이 미안해요. 한데 말입니다. 가끔 나도 누군가 만들어놓은 그늘에 편히 몸 누이고 싶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단 말입니다. 내가 일하다 전화해서 괜히 우는 소리 하고 맥 풀려 할 때 있지요? 그게 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서일 겁니다. 그러니 그때는 그러려니 해둬요.

안 그래야지,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당신도 힘들 텐데, 내가 그러면 당신은 누구한테 위로받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그럴 때가 있어요. 마치 낮잠 자고 일어났더니 소나기가 한 번 쓸고 간 뒤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는 것을 안 뒤의 허망함이 밀려오듯 말이죠. 많이 노력해야겠지요.

넉넉히 배려해주지 않는 사람이랑 결혼해서 사느라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외로울까? 자기만 잘난 놈인 줄 알고 사는 남자랑 같이 사는 여자의 정체성은 얼마나 무너지고 상처받았을까? 그런 생각하면서 아이랑 당신이랑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봅니다. 당신도 우리 가족사진 한번 봐요. 거기 우리 가족의 과거와 현재와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있을 거예요. 아이한테도 한번 보여줘요. 우리 가족의 지도가 얼마나 크고 정결하고 넉넉한 지를!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당신은 무슨 한풀이하듯 자고 있고, 아이는 토끼인형의 꼬리를 부여진 채 무슨 꿈을 꾸는지 씨익, 웃고 있네요.

고맙고, 사랑해요.

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