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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벼리커뮤니케이션
발행인 손인수
에디터 오형석 조경숙 김정현
디자인 이동휘 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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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1.03 | Vol.13
월간 카페人  /  제13호  /  내 마음의 카페
내 마음의 카페
[인문학카페] 이스털린의 역설과 '관계재(財)'

소득만큼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일 하다 어찌어찌해서 저녁때를 놓쳐버린 기억은 누구나 있겠지요? 일을 마무리 해놓고 허겁지겁 밥을 먹다보면 금세 포만감이 밀려옵니다. 너무 배가 고프면 조금의 식사량으로도 허기가 곧장 채워질 때가 있죠. 첫 숟가락을 뜰 때 그 만족감과 행복감은 몇 숟가락 가지 않습니다. 처음의 맛과 포만감은 유지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의 음식이 위를 채우면 그만 먹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밥만 그렇겠습니까?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의 그 신선하면서도 설렘이 동반되는 순간의 욕구가 가장 크고 절실한 법입니다. 어느 대기업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답니다. 가장 만나고 싶은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고요. 남녀를 떠나 이런 대답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생전 처음 만나는 매력적인 이성이라고요.

경제학에서는 이런 일들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으로 설명합니다. 한계효용이라는 말이 어려운 개념은 아닙니다. 배고플 때 먹는 빵 하나는 하나의 한계효용을 가지고, 두 개를 먹으면 두 개의 한계효용이 생깁니다. 당연히 빵을 처음 먹을 때 한계효용이 제일 크고 만족도가 높죠. 먹는 빵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배는 부르고, 따라서 빵의 한계효용은 어느 순간이 되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무한리필의 식당이나 뷔페가 성행하는 것도 사람은 누구나 한계효용의 체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포만감이 채워지면 더 이상 음식으로 인해 행복해지지는 않게 되는 것이죠.

소득의 고정관념을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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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는 소득활동에도 적용이 됩니다. 생활이 안정된 사람들은 일정 이상의 소득이 발생해도 그것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죠.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한 갑은 연 소득이 5천만 원입니다. 을은 8천만 원입니다. 병은 1억이 넘고 정은 1억천만 원이라고 합니다. 그 사회의 평균소득은 연 3천만 원입니다.

이 모임에서 대화 주제는 먹고 사는 문제는 아닐 겁니다. 기본 생활이 보장되는 최소소득은 모두 벌기 때문에 생계비가 대화 주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갑은 평균보다 높은 소득지만 이 모임에서 상대적 결핍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결핍이 절대적인 소득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지요. 물론, 이 경우는 최저생계비를 벗어난 사람들끼리의 얘기입니다. 기본 소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결핍은 우선적으로 소득에서 발생합니다.

행복경제학이라는 경제학 분야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 : 1926 ~)이 1974년에 주장한 개념입니다. 소득이 증가해도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는 소득이 증가하여 소비할 수 있는 재화가 늘어나면 인간이 보다 행복해진다고 전제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스털린의 이론은 이런 전제의 타당성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과연 소득이 높다고 해서 늘어난 소득만큼 행복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스털린은 다양한 사회조사와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 흥미있는 결론을 이끌어 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입니다.

그의 연구를 요약하면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답게 그는 아주 실증적이고 면밀한 분석 기준을 적용했는데요. 우선 특정 시점의 한 나라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럴 경우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는 예상대로 높게 나타납니다. 평균소득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소득 상위집단이 소득 하위집단보다 더 행복하다는 결론이 나온 거죠.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이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풀어 말하면, 2017년 한국을 대상으로 해도, 미국을 대상으로 해도, 인도네시아를 대상으로 해도 결과는 같다는 겁니다. 일단 많이 벌어야 행복하다는 거죠.

두 번째로 적용한 기준은 조금 다릅니다. 특정 시점의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조사를 하면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 경우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가 매우 낮게 나타납니다. 잘사는 나라가 못사는 나라보다 더 행복하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는 거죠. 2017년 겨울을 기준으로 소득 상위국가인 미국과 빈국인 부탄을 비교해서 조사하면 부탄의 국민들이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거죠. 이스털린의 연구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결과 때문이었습니다.

세 번째 조사 역시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이번에는 한 나라를 대상으로 조사하되, 시간을 달리해서 몇 십 년 사이의 변화를 살핍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나라를 들여다보면, 평균 소득의 증가가 행복 지수를 향상시키지는 않더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입니다. 한국의 경우 1971년의 최저소득을 올릴 때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후, 경제가 성장해 소득수준이 월등히 높아진 2017년의 행복지수를 조사해보면 과거에 비해 늘어난 소득만큼 행복지수가 올라가지는 않더라는 것이죠. 이처럼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경제학이 일반적으로 전제해왔던 상황과 반대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스털린의 연구를 역설(paradox)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1946년부터 빈곤국과 부유한 국가,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국가 등 30개 국가를 모델로 삼아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연구했지요. 그 결과, 소득이 어느 일정 수준을 지나면 행복도가 그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이스털린은 논문을 통해 비누아투, 방글라데시와 같은 가난한 국가에서 오히려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 행복지수가 낮다는 연구결과도 내놓았습니다. 경제학에서 사람들의 심리가 중요한 연구대상이 된다는 것을 밝혀낸 셈이죠.

공유지의 비극, 합리적 인간은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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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 전제하는 인간은 합리적 존재입니다. 자신의 욕망에 맞추어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거지요. 오늘 저녁 식탁에 고기가 올라오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 자비를 베풀어서가 아니라 고기를 먹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망이 고기를 사게 했다는 겁니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여러 이론이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영국 산업혁명 초기에 실제 있었던 일로 인간의 이기심을 이야기할 때 인용되는 것 중에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란 게 있습니다. 생물학자 가렛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제시한 것입니다.

이 우화가 들려주는 것은 명료합니다. 주인이 따로 없는 공동 방목장에선 농부들이 경쟁적으로 더 많은 소를 끌고 나오는 것이 이득이므로 그 결과 방목장은 곧 황폐화되고 만다는 거지요. 주인이 따로 없는 땅에서 농부들은 서로의 이익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함으로써 결국 이 땅은 몹쓸 땅이 된다는 건데요. 공공지의 비극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목초지를 분할 소유하고 각자의 초지에 울타리를 치는 이른바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입니다. 결국 통제받지 않는 인간은 각자의 이기적 욕망을 채우려 하기 때문에 모두가 비극적 상황으로 끝날 수 있다는 상황을 경고하는 것이지요.

소득이 무한정 늘어난다고 해서 행복감이 무한정 늘어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전하는 메시지를 저는 공유지의 비극을 통해 이해하려고 합니다. 소득으로 상징되는 욕망을 모두 채운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니까요. 개인의 소득이 무한정 늘어난다고 할 때, 왜 그들은 행복감도 함께 느끼지 않는 것일까요? 행복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 소득이 차지하는 부분이 한계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현상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럴 때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과 이익을 나누면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는 호혜성입니다. 행복을 얘기할 때 이 개념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겁니다.

교류를 통해 누리게 되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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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털린의 역설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습니다. 그중 설득력 있게 제시된 것이 ‘관계재(財)’라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노동을 통한 보상인 소득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얻는 행복감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겁니다. 관계재는 타인과 함께 할 때 나타나는 특수한 재화입니다. 관계재는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관계, 그 자체가 목적인 재화입니다. 쉽게 말해 ‘관계’도 돈이라는 겁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우정도 혼자서는 만들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과 우정도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재화가 됩니다.

예를 들어 보죠. 여기 사회적 성공을 위해 일만 하며 살아온 남성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상당한 위치와 수입을 올리는 고소득자인 그가 어느 날 사랑에 빠집니다. 동시에 그는 고민에 빠집니다. 사랑을 선택하기 위해 하루 동안 데이트를 하게 되면 그가 그 시간만큼 벌어들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소득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가 만약 사랑을 선택해 소득을 포기한다면, 이는 고전 경제학이 전제하는 합리적 선택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하루의 행복한 데이트를 위해 하루 동안의 일을 포기한다고 해보죠. 그는 소득 대신 사랑이라는 관계재를 선택한 겁니다.

관계재의 기본 특성은 호혜성과 무상성입니다. 서로에게 혜택을 준다는 효혜성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무상성은 경제학의 전제에는 어긋납니다. 관계재의 특징이 무상성이라는 말은, 이 재화가 시장 가격도 없고 시장에서 거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계재의 생산과 소비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때의 시간은 소득을 포기해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는 거지요.

관계재는 사회적 교류를 통해 소득과는 다른 의미에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용한 재화가 됩니다. 또한 이 재화는 한정된 시간을 나누어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희소성을 지닌 경제재입니다. 사랑도 경제학적으로 풀어보니, 너무 비인간적인가요. 어쨌든 사랑은 기회비용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생산 활동입니다. 소득이 높아져도 사람들이 마냥 행복해지지만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사랑이나 우정이 왜 필요한 지를 유용하게 설명해줍니다.

너무 비인간적인 얘기가 이어졌다면 잠시 다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남녀 주인공을 맡아 공연한 영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배우만 보고 티켓을 끊고 본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반경제학적이라는 생각을 혼자 한 적이 있는데요. 혹시 설명했던 개념들이 어렵거나 복잡해서 뭔 말인지 몰랐다면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보시면 쉽게 이해가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테이어 레오니라는 여배우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패밀리맨(The Family Man, 2000)>이라는 영화입니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남자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간다는 내용인데요. ‘불투명한 미래보다, 같이 있는 게 멋진 거잖아’라고 말하는 테이어 레오니의 대사는 지금도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위기, 사회적경제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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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9~7월 1일 고용노동부, 서울시 주체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사회적경제 주간 행사(사진출처: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

자본주의의 위기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심각한 빈부격차와 소득의 재분배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의 불평등, 환경 파괴 등이 위기의 근본적 이유로 많이 언급되는 데요. 이런 상황에서 대안으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사회적경제입니다. 사회적경제의 핵심 개념은 사람 중심의 가치가 전면에 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윤의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인 시장경제와 달리 사람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제활동을 통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거지요.

사회적경제는 1800년대 초 유럽과 미국에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조합주의 등의 형태로 등장했습니다. 사회적 경제의 주체들로 언급되는 사회적 기업은 이윤보다는 사회적인 문제 해결을 우선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소외 계층의 경제활동 참여 등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우선 목적을 두고 있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자활기업,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로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많이 살기 어려운 시절입니다. 이론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아이디어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미국의 썬키스트나 유럽의 축구명문구단인 FC바로셀로나 같은 기업들이 모두 사회적 기업의 형태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할 지 고민이 되는 날입니다.

글 | 오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