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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벼리커뮤니케이션
발행인 손인수
에디터 오형석 조경숙 김정현
디자인 이동휘 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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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0.11 | Vol.12
월간 카페人  /  제11호  /  내 마음의 카페
내 마음의 카페
[밤 9시의 커피] 카페 쿠바노와 체 게바라

혁명은 커피 향을 타고, 벤세레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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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정한 혁명가를 이끄는 것은 위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이런 자질이 없는 혁명가는 생각할 수 없다."

 _ 체 게바라(Che Guevara)

 

진하다. 달콤하다. 알싸하다. 정신이 바짝 든다. 카페인이 몸 아래로 흘러가지 않고 뇌를 스치는 것 같다. 과장하자면, 카리브 해의 바람을 탄 파도가 심장을 덮친다. 이쯤 되면 ‘쿠바의 뜨거운 심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카페 쿠바노(Cafe cubano)’, 혁명은 이런 맛과 향을 가진 것일까.

카페 쿠바노는 말하자면 ‘쿠바식 에스프레소’다. <밤 9시의 커피>가 가을과 겨울을 관통하는 계절의 특정한 날들에 준비하는 커피다. 카리브 해의 해풍을 품은 진한 에스프레소에 설탕, 쿠바를 상징하는 두 물질이 만난 이 메뉴는 10월 9일부터 밤 9시의 커피에 등장하는데 커피를 마시기 위해 손꼽아 그날을 기다리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일부러 0시를 기다리기도 한다. 누구보다 빨리 카페 쿠바노를 마시려고.

그런데 왜 10월 9일이냐고? 간단하다. 체 게바라(Che Guevara). 1967년 이날, 혁명가였던 그가 피를 뿜었다. 혁명보다 진하고 뜨거운 그 피는 커피가 됐다. 권력에 취하기를 거부한 체 게바라는 ‘다시, 혁명’을 외치며 볼리비아 정글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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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혁명의 진짜 피는 그렇게 권력과 힘을 경계한다는 것을 체는 몸소 보여줬다. 그러나 그의 혁명은 두 번의 매혹을 용납하지 않았나보다. 물론 사회주의 혁명을 두려웠던 나라(의 정보국)가 체 게바라를 가만 놔두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그리하여 카페 쿠바노에 <밤 9시의 커피>가 붙인 이름은 ‘벤세레모스(venceremos)’.

불온한 희망, 혁명은 커피 향을 타고…

나무를 세공하는 노동자, 즉 목수인 경인 씨는 10월 9일 0시를 잊지 않고 문을 연다. 그리고 환한 얼굴로 벤세레모스라고 외친다. 탄탄한 몸에 낮고 굵은 목소리를 지닌 그의 등장과 함께 울려 퍼지는 벤세레모스라는 ‘주술’을 듣자면, 언젠가 우리도 승리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스페인어인 벤세레모스는 ‘우리는 승리하리라’ 라는 뜻이다).

그가 왔다. 나는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벤세레모스(카페 쿠바노)’를 내리는 시간이니까. 혁명을 품은 벤세레모스. 우리는 그렇게 이 땅의 로망을 술이 아닌 커피로 푼다. 그와 나는 그렇게 동지다. 이루지 못할지라도, 영원히 품고만 있을지라도 꿈 하나 정도는 가져야하지 않겠나. 

신기하게 또 한 명의 혁명 동지도 있다. 꽃집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하는 서인 씨. 작년부터 목수와 커피노동자의 자정 혁명 회합에 동참하고 있다. 그녀가 올해는 감자 꽃을 들고 왔다. 체 게바라가 죽기 전, 감자밭을 바라봤다나 뭐라나. 믿거나 말거나.

세 잔의 벤세레모스를 내렸다. 그녀가 향을 맡더니 취한 듯 말을 꺼낸다.
“10월, 참 좋은 계절이에요. 그런데 전 10월을 ‘詩月’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혁명이 스러진 계절이잖아요. 작정하고 붙잡지 않으면 쉬이 놓치고 마는 계절처럼 혁명도 마찬가지고요. 체 게바라는 시라고 생각해요. 가능성만 영원히 봉인한 채 상상으로만 가능한 시 말이에요.”

미친! 혁명과 체 게바라, 시를 엮는 이 재주는 도대체 뭔가. 그러고선 그녀가 싱긋 웃으며 커피 잔을 든다. 서로 잔을 부딪치면서 그녀는 이렇게 외친다. 벤세레모스! 우리 두 사람도 그 말을 따라하며 커피 잔을 부딪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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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쿠바노. <밤9시의 커피>는 이를 ‘벤세레모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이게 전부다. 커피를 내리면서 시를 떠올리는 일, 혁명이 미국의 총탄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하는 일. 체 게바라의 죽음은 이듬해 68혁명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밤9시의 커피>에는 그런 시적 상상이 함께 담긴다. 그는 편지 끝부분에 늘 이렇게 썼다.

 

"조국이 아니라면 죽음을,(Patria o muerte)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Venceremos)"

_ 사령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Comendero Ernesto Che Guevara)

 

“아마도 그 승리라는 것, 체 게바라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을 알았던 건 아닐까요? 그는 그럼에도 그렇게 뱉으며 끝까지 싸웠을 거예요. 패배를 향한 숭고 같은 거죠. 서인 씨 말대로 체 게바라는 그래서 시가 맞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 숭고한 시를 읊조리는 낭독자 같은 존재고. (하하)"

경인 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비관적 절망의 시적 정의를 담아 벤세레모스를 내린 것 아니겠나. 혁명의 피 같은 커피를.
사실 특별한 이날의 <밤 9시의 커피> 메뉴인 벤세레모스는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잡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가 1970년 인민연합 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 캠페인 송으로 사용됐다. 아옌데는 그러나 1973년 미국 정부의 꼭두각시 피노체트가 일으킨 쿠데타로 9월 11일 목숨을 잃었다. 승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벤세레모스 커피에 늘 혁명의 피가 묻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의 詩月은 진하다, 달콤하다, 알싸하다.

“이런 詩月에 여기에 오면 커피와 혁명과 시가 있어서 좋아요. 참 아름다운 계절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작년에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못 물어보고 1년을 참았어요. 아저씨는 어떻게 이런 커피를 선보일 생각을 했어요? 뭔가 분명 있는 것 같아. 그쵸, 경인 씨?”
“그래요, 나도 궁금했는데 꾹 참았네. 언젠가는 얘기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죠.”
“하하. 듣고 놀리기 없기에요.”
그렇게 말을 꺼냈다. 가을, 10월과 詩月.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 이전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만난 적은 없었다. 그 이후로도 매년 가을은 아름다웠고 다시는 오지 않을 유일한 가을을 매년 만났지만 그 가을 역시도 단 한 번이었다.

가능성은 영원히 봉인된 채 상상으로만 가능한 당신이라는 시가 됐다. 그해 詩月, 당신이 왔고, 커피가 왔고, 시가 왔고, 혁명이 갔다. 벤세레모스를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이렇게 동지들이 생긴 것에 대한 기쁨도 말했다.

그리고 영화 DVD를 꺼냈다. <밤9시의 커피>는 어느덧 심야영화관이 됐다. 뭐냐고 묻는데, 말해주지 않고 보라고만 하고는 영화를 틀었다. <체(CHE)>. 2008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만든 러닝타임 270분에 달하는 야심작. 그러나 혁명 한 번 못해 본 한국에는 끝내 개봉하지 못하고 DVD로 직행한 <체>. 영화를 보면서 벤세레모스를 내렸고, 우리는 쿠바와 체 게바라와 혁명노동자들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혁명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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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날 벤세레모스를 만든 커피는 ‘크리스탈마운틴’. 체 게바라가 매일 스무 잔씩 마셨다는 쿠바의 대표 커피다. 자메이카 바로 위에 자리한 쿠바. 북위 20∼23.5° 사이의 열대성기후를 지닌 쿠바는 1748년부터 커피를 심었다. 콜럼부스는 쿠바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본적이 없다”며 호들갑을 떨었다지.

크리스탈마운틴은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의 대용으로 쓰일 만큼 좋은 맛을 자랑한다. 감귤류의 부드러운 신맛과 카카오의 쓴맛, 입안에 오래 머무는 단맛이 조화를 이룬다. 벤세레모스(카페 쿠바노)의 진짜 맛은 그렇게 크리스탈마운틴이어야 가능하다.
물론 카페 쿠바노만 마시는 건 지겨울 수 있으니 ‘별책 부록’도 있다. 우유와 연유가 첨가된 ‘쿠바노 코르타도’. 라떼에 비해 우유 비율이 낮고 연유가 우유의 풍미를 살려주면서 에스프레소의 맛을 여전하게 즐길 수 있다. 단맛 역시 빠지지 않고.

언제부터 커피에 설탕을 넣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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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ffeeDetective, flicker

혁명은 달면서도 쓰다. 그러니 카페 쿠바노와 쿠바노 코르타도가 제격이다. 경인 씨와 서인 씨에게 물었다.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시기 시작한 건 언제일까요?

“커피에 설탕을 넣은 건 1715년경부터래요. 프랑스 루이15세가 커피 맛을 높이려고 설탕을 넣었다는 설이 있어요. 뭐 루이14세라는 말도 있어서 정확한 연도는 아리송하지만 18세기인 것 같아요. 물론 당시엔 정제당이 없을 때니 원당을 사용했겠죠. 커피에 설탕을 넣으면 쓴맛이 감소되고 단맛이 기운을 북돋는데 혁명은 커피와 설탕의 조합과 같은 맛 아닐까요?”

실은, 아무도 모른다. 언제 혁명을 겪어봤어야지. 그러니 우리는 이날 밤새도록 오지 않을 혁명에 대해, ‘사랑’처럼 오염되고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혁명이라는 단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으며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무수하게 많은 이야기별을 땄다.
2012년 10월 세상을 떠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를 꺼내 혁명을 공부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가을밤에 결의한 것은 홉스봄이 자서전의 마지막에 건넨 말과 통했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혁명은 당신의 하룻밤, 책 한 권, 글 한 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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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혁명의 새벽은 오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몰라도, 만나지도 못한 혁명에게 이별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혁명과 만날 날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것이 언젠가 올 혁명에 대한 예의다.

체 게바라는 ‘인간애’와 ‘자발적 노동’을 강조했다. 화폐와 욕망을 근간으로 삼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동기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보는 건 어떠냐고 의기투합하면서 맥주와 카페 쿠바노를 섞어서 ‘에스프레스 콘비라’를 들이켰다. 커피에 취하고 맥주에 취기를 느끼면서 혁명을 안주 삼았다.

우리는 겨울이 오면 1월 1일 다시 회합을 갖기로 했다. 쿠바의 혁명기념일. 홈스봄이 격하게 아꼈던 빌리 홀리데이의 재즈 선율이 BGM으로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詩월의 가을밤, 빌리데이의 선율이 온 몸을 감싼다. <The Man I Love> <I Cried for You> ….

“아 詩月, 좋다. 우리끼리 혁명의 계절이네요. 하하. 체 게바라도 없고 홉스봄도 없고, 이런 마당에 재즈라도 있어야죠. 빌리데이의 재즈가 혁명처럼 지독하고 진하고 슬프지만 이런 커피와 함께라면,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자자, 벤세레모스!”

그렇게 가을과 겨울, 혁명을 생각하기 좋은 날. 그리하여 우리는 니체의 이야기를 다시 곱씹는 것으로 짧은 혁명의 밤을 보냈다.

 

언젠가 이 세계에 변혁을 초래할 인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인간에게도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밤에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_ 프리드리히 니체

글 | 낭만(김이준수)
낭만 님은 사회적금융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스토리텔러입니다. ‘스스로 걷는 사람’으로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멋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을 현실화하고자 천천히 걷고 있습니다.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을 썼고, 《그림자아이가 울고 있다》의 스토리텔링을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