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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人2020.10 | Vo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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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손인수
에디터 오형석 조경숙 김정현
디자인 이동휘 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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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0.10 | Vol.11
월간 카페人  /  제9호  /  내 마음의 카페
내 마음의 카페
[부치지 못한 편지]

떠나려는 사람과 남으려는 사람

떠나고 싶은 자 / 떠나게 하고 /

잠들고 싶은 자 / 잠들게 하고 /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 침묵할 것

// 중략 //

실눈으로 볼 것 /

떠나고 싶은 자 / 홀로 떠나는 모습을 /

잠들고 싶은 자 / 홀로 잠드는 모습을

//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 그대 등 뒤에 있다

_ 강은교,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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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난 가을 제게 보냈던 편지에 적혀 있던 시입니다. 현명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얘기하면서 당신은 이 시가 던져주는 울림을 제게 느껴보라고 말했었죠. 저는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절제된 시의 구절들이 매력적이기는 했지만 시가 말하고자 하는 ‘침묵과 체념’의 모습은 제가 생각하던 사랑의 모습과 조응하지 않았습니다. 명령조의 엄숙한 말투가 복잡한 사랑의 의미를 밝혀주는 것 같은 막연한 느낌뿐이었습니다. 그냥 근사하고 멋있는 말들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죠.

집착을 버릴 것, 있는 그대로 둘 것

시간이 지나 이 시를 읽어봅니다. 떠나고 싶어하는 자와 잠들고 싶어하는 자를 있는 그대로 두라고 충고합니다. 사랑이 꼬이는 건 언제나 한 순간에서부터이죠. 그건 바로 욕심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대하는 감정이 어느 선을 넘어서는 순간, 사람은 상대에게 욕심을 내곤하죠. 모든 다툼의 화근이 되고 맙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관심이라고 표현하며 상대를 간섭하고 구속하려고 합니다. 그런 간섭에 지치기 시작하는 사람은 부담을 느끼기도 하겠죠. 그렇게 이어지는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더 크게 깨우친 사람은 이런 집착의 사랑을 넘어설 수 있겠죠. 제가 더 크게 깨우쳤다고 말하는 것은 오로지 저의 아쉬움과 반성에서 비롯한 생각입니다. 미처 몰랐습니다. 성숙하다고 느낄 만할 때면 언제나 시간은 지나가 버립니다. 왜 그때는 그걸 몰랐을까요. 제가 조금만 더 너그럽고 성숙했다면 당신은 절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시가 말하듯, 저는 당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욕망하기 전에 ‘실눈’을 뜨고 이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럼 저도 깨달을 수 있었겠지요. 더 큰 하늘이 그대 등 뒤가 아니라 사실은 제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제 기억에 그 해 가을은 언제나 우울할 수밖에 없지요. 어느 날부터 당신은 떠나려는 사람이 되고 있었습니다. 떠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아주 우연한 순간이었습니다. 헤어짐에 대해 당신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저는 알아차리고 말았습니다. 퇴근길이었죠. 당신은 구두 끝만 보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젠 마중 안 나왔으면 좋겠어. 나 때문에 시간 너무 뺏기는 건 싫어. 그러니 꼭 그렇게 해줘. 서로 여유로울 때 시간 만들어 보자.”

사람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일반화의 오류만큼이나 많은 일들을 그렇게 보게 되지요. 흔히 사람들은 자기의 행동이나 생각을 자기식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어떤 상황을 맞이할 때 자신이 틀렸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올바르다는 것에 생각을 고정시킵니다. 그럴 증명하려고 자신의 행동 패턴을 바꾸려는 경향이 생기기도 합니다. 자기애의 표현이겠지만 논리의 영역이 아닌 이상 사람은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고집도 강해지고 심지어 아집덩어리 인간이 되는 거지요.

시간을 거스를 순 없을 테니 언젠간, 늙어가더라도 낡아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거겠지만, 불현듯 당신이 떠오를 때면, 저는 그놈의 확증편향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저를 몰아세우고는 합니다. 모든 게 다 제가 옳았다고 강변하던 습관이 저를 이렇게 혼자 두게 만들었습니다. 상황을 벗어나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될 때, 비로소 제가 보이더군요. 그림자 같던 당신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을 때,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더 늦게 전에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저 스스로를 좀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시계로서의 제 역할을 해냅니다. 멈춰선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을 오전과 오후 두 번은 반드시 그 시간을 지나치기 마련입니다. 사랑의 시간은 지나갔을지언정 한 번 더 맞이하게 되는 사랑의 때가 찾아온다면, 더 이상 바보 같은 아집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떠나는 그대가 남겨놓은 것들이 시간을 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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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밥을 사먹으러 식당에 들어가 혼자서 수저를 놓을 때 문득 당신이 생각납니다. 물컵에 수저를 꼭 먼저 씻어 쓰던 당신이 생각나 천천히 그렇게 따라해 보곤 합니다. 바람이 너무 불어 옷깃을 세울 때 당신이 제 옷매무새를 만져주던 모습이 기억나 불어오는 바람보다 더 차갑게 생각을 꼭 여미곤합니다.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면 당신의 버릇이 제게도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걸 느낍니다. 당신은 책을 선물할 때면 꼭 빈 종이 몇 장을 책갈피처럼 끼워서 건네주었지요. 메모할 공간과 생각을 적을 종이를 끼워 넣어주던 당신의 배려는, 지금 생각해보면 한없이 큰 마음의 여백이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면 당신은 언제나 정갈하게 손을 씻고 옷을 가능한 단정히 입으려 애를 썼습니다. 그래야 책의 내용이 잘 읽힌다고 했었지요. 지나치게 격식을 따지는 당신을 그때는 조롱했었지만, 지금의 저는 그때의 당신보다 더 당신 같은 모습으로 책을 읽습니다.

우리가 자주 만나던 카페에서 당신은 늘 같은 자리에 앉기를 바랐죠. 당신이 먼저 와 저를 기다리고 있을 때면 제가 없어도 그 배경으로 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참 좋다던 당신은 이제 그 자리에 없습니다. 배경을 사람으로 바꿔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창가보다 구석의 한켠을 늘 지키고 있던 당신의 실루엣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실루엣보다 더 가늘고 가녀린 사람이었지만 당신의 흔적은 거대하기만 합니다. 어디서부터 생각을 지우고 어디서부터 생각을 메꿔나가야 할 지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당신은 떠났지만 당신의 기억은 오히려 눈부시게 남아 저를 어지럽게 합니다. 제 기억 속에 당신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의 사람입니다. 당신은 떠나려는 사람이고 저는 그 사랑에 남으려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배경을 바꾸려 하고, 한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배경을 끝까지 부여잡고 있습니다.

‘사랑법’의 핵심은 존중입니다

왜 떠나려는지 물었을 때, 당신은 며칠 간 답이 없었습니다. 그 때 당신이 보낸 편지에 적어준 시를 저는 외우고 있습니다. 사랑법이라는 모순되는 말들도 이제는 꼬치꼬치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사랑에 법이 어디있다는 거냐며 제목 자체도 마음에 안 들어 했죠. 이제는 설핏 느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이런 말들이 왜 사랑법인지는 모릅니다. 다만, 떠나고 싶은 자 뒤에 남는 자의 침묵이나, 잠들고 싶은 자 옆에 지켜보고 있는 자의 시간이 얼마나 사람을 성찰하게 하고, 아프게 하고, 글썽이게 하고, 후회하게 하고, 스스로를 멸시하게 하고, 대책 없는 허황함에 몸서리를 치게 하는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침묵 끝에 얻은 말도 있습니다. 존중입니다. 떠나려는 사람과 남으려는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했던 말이 존중이었습니다. 그 사이를 가깝게 해주는 말도 존중이었을 테지만, 당신은 실루엣도 남기지 않고 떠났고, 그 남은 자리를 차가운 바람만 불고 있습니다. 저는 이 쓸쓸한 날에 부는 찬바람을 존중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글 | 오형석(카페인 에디터)